리 사회는 못마땅한 벼락부자를 일컬어 흔히 졸부(猝富)라고 부른다. 자본주의의 구조적 성격상 모든 사람이 존경받는 부자나 깨끗한 부자인 청부(淸富)가 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부자가 되었어도 ‘졸부’ 소리를 들으면 듣는 본인은 물론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스트레스를 받는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도 정서적으로 여유가 없어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 졸부가 아닐까 생각해 보고 빨리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한다. 졸부가 줄어들어야 비로소 성숙한 자본주의 시대로 들어간다고 할 수 있다. 졸부의 의미를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사전을 찾아보면 이렇게 기술돼 있다.‘졸부(猝富): 벼락부자. 졸부증후군(猝富症候群): SWS, Sudden Wealth Syndrome, 1990년대 후반 실리콘 밸리에서 닷컴 기업을 이루었거나 나스닥에서 떼돈을 번 젊은 부자들이 갑자기 생긴 돈을 주체하지 못해 일탈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신조어.’한자의 졸(猝)자는 ‘갑자기, 창졸간에, 빨리’를 나타내는 말로서 어느 날 갑자기 재물을 모은 부자를 나타내지만, 이 말은 단순히 시간적으로 빠른 것만을 나타내지 않고 ‘하인·졸병’을 나타내는 한자인 졸(卒)과 ‘어설픔·서투름’을 나타내는 졸(拙)의 의미까지를 포함해 ‘정당하지 않은’ 또는 ‘돼먹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번 부끄러운 벼락부자라는 뜻까지 포함하고 있다.다양하게 나타나는 졸부의 사례를 몇 가지로 구별해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첫째, 근면·절약 등에 의하지 않고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갑자기 재물을 모은 사람.둘째, 재물은 많이 모았으나 교양이나 예의가 없어 부끄러운 행동을 하는 사람.셋째, 정직·겸손한 생각이 없이 없는 사람을 깔보고 사치와 허영에 들떠 과소비하는 사람.넷째, 이웃과 사회를 생각하지 않고 희생정신은 전혀 없이 개인적인 욕심에만 몰두하는 사람.복권 대박을 터뜨린 부자이를테면 부동산 투기나 복권 대박을 터뜨린 사람들. 부의 바탕이 근면·절약에 있지 않고 투기나 복권과 같은 행운에 있는 경우에는 돈의 가치를 올바르게 알지 못해 무분별한 소비 생활에 빠져들기 쉽다. 그래서 ‘복권 대박’은 ‘인생 쪽박’이란 말이 있다.캐나다 위니펙에 거주하는 한 사람은 복권 추첨에서 1000만 달러의 당첨금을 받았다. 그는 갑자기 거액을 손에 쥐었지만 무분별한 소비생활과 잇단 사업 실패, 그리고 술과 마약으로 인해 범죄의 길에 접어든 뒤 당첨금을 모두 탕진하고 어렵게 살다가 결국에는 자신의 부모 집 차고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고 한다.갑자기 부자가 돼 겪는 이와 비슷한 사례는 너무나 많다. 수많은 사회단체로부터 끊임없는 기부 요청에 시달리게 되는가 하면 친척들의 협박과 소송, 가족들 간의 갈등 등으로 고통을 당하는 것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물론 복권은 서민들이 꾸는 달콤한 꿈으로, 힘든 삶에 한 가닥의 가능성을 주어 희망을 갖게 하는 긍정적 측면도 없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열심히 일하지 않고 절약하지 않은 채 어느 날 갑자기 당첨되는 복권은 큰 재앙이 된다는 사실이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 올바른 생각을 가질 수 없다. 게으름은 비뚤어진 마음을 갖게 만든다. 긍정적인 행동이 따르지 않는 사고는 병균과 같다”고 한 헨리 포드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평소에 부지런히 일하고 알뜰하게 살면서 심심풀이로 복권을 산 사람이라면 혹시라도 당첨이 되더라도 이웃을 위해 흔쾌히 쓰겠다는 각오를 단단히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대박을 터뜨리고도 졸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개 같이 벌어 개 같이 쓰는 부자우리 속담에 ‘개 같이 벌어서 정승 같이 쓴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돈을 벌 때는 귀천을 가리지 않고 험한 일이라도 열심히 해서 알뜰하게 벌고, 쓸 때는 존경받는 정승처럼 고상하게 쓴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의 뜻이 근래 들어 왜곡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 남이 뭐라 하든지 폼 나게 쓰기만 하면 된다는 의미로 쓰여 문제다.졸부가 졸부 소리를 듣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와 같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축재 방법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직업은 다 그 존재 이유가 있어서 일 그 자체에는 귀천이 따로 없다. 그러나 어떤 일이건 그 일에는 지켜야 할 기본적 도리가 있다. 심지어는 도둑에게도 도리가 있다고 했다.아무리 좋은 목적이라도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서를 읽으려고 촛불을 훔치는 것도 죄다. 한때 우리는 개발 논리에 휩싸여 목적으로 수단을 압제하는 전체주의적 사고에 빠져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의 희생을 당연시했던 부끄러운 시기도 있었다.졸부 소리를 듣는 또 하나의 이유는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예의 없이 돈을 쓰는 태도 때문이다. 이런 부자일수록 ‘자본주의는 돈이 최고’라는 단순한 믿음을 무기로 하여 모든 일을 ‘돈으로’ 처리하려 한다. 고급 외제차를 타고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내고도 인간적인 일말의 반성도 없이 “얼마면 되느냐?”며 지갑을 만지는 부자가 이런 유형의 사람이다.어렵게 돈을 벌었더라도 최소한의 교양을 갖추고 남에게 예의로 대해야 한다. 혹시라도 개 같이 돈을 버느라 겨를이 없어 이 부분에 소홀했던 사람이라면 지금이라도 교양을 배우고 남을 배려하며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연습을 거쳐 한시바삐 졸부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명품에 묻혀 사치와 허영에 들뜬 부자어렵게 돈을 번 부자들이 어느 날 문득 거울 속에 있는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에 깜짝 놀라 아까운 세월이 더 가기 전에 “이제 나도 귀족처럼 살아보자”며 모임을 만들고 그간에 억눌러 왔던 허영심을 일깨워 끝없는 사치와 과시 경쟁에 들어간다.필요 이상 분에 넘치는 넓은 집과 고급 외제차는 기본에다, 루이비통 가방, 구찌 핸드백, 크리스찬 디올 구두, 아르마니와 프라다 드레스, 까르띠에, 버버리, 샤넬 등등의 명품에다 산해진미를 다투어 먹어대는 식탐.자본주의 사회에서 법을 어기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면 제 돈 가지고 명품을 사고 소비한다 해서 욕할 일을 아니다. 그러나 소위 명품을 구매하면서 가난한 이웃과 남을 깔보면서 차별화하며 자신의 어려웠던 과거를 보상하려는 사람, 우리는 이런 졸부를 경멸하지 않을 수 없다.정직이 없는 부는 부끄럽고 겸손이 없는 부는 천박하다. 새뮤얼 스마일스의 말처럼 “향락과 방종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향이고, 부귀는 그러한 유혹을 뿌리치기에 너무나 어렵게 한다. 그래서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향락을 비웃고 자기 만의 일에 뛰어들어 치열하게 살다 간 삶은 더욱 명예롭다.”그러므로 가난한 이웃을 생각하며 비록 자기가 번 돈을 쓸 때도 조심해서 쓰고, 부유하면서도 겸손하고 양보할 줄 안다면 진짜 멋있는 부자가 될 것이다.이웃과 사회를 모르는 부자언젠가 항구 가까이에서 큰 유람선이 난파해 침몰했고 수많은 승객들이 긴급히 출동한 구조대원에게 구조됐다. 그런데 승선 명부에 있는 승객 중 딱 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잠수부에 의해 가라앉은 배 속을 샅샅이 뒤지자 실종됐던 그 승객은 선실 바닥에 앉은 채 숨져 있었다. 시신이 물 위로 떠오르지 않은 것을 이상히 여겨 몸을 조사해 본 결과 그는 허리에 금괴 띠를 차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허리에 감고 있던 금덩어리 띠를 벗어버리지 못하고 끝내는 금의 무게에 이끌려 죽었다. 그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재물을 지닌 채 재물의 노예가 된 것이다. 돈은 잘 쓰면 충실한 노복이지만 잘못 쓰면 무서운 주인이 된다는 말이 있다. 우리 이웃 중에는 이와 비슷하게 돈을 움켜쥐고 죽어가는 불쌍한 부자들을 수없이 볼 수 있다.아무리 자본주의라 해도 ‘사람 나고 돈 났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재물 이전에 인간, 가족, 이웃, 나라를 우선시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사유재산은 국가의 제도가 있기에 보호되고, 사업은 이웃과 사회의 직간접적인 참여로 이루어지며 이익이란 나를 중심으로 한 수많은 이해관계자의 도움에 의해 얻어진 결실임을 알아야 한다.노블레스 오블리주, 나눔의 정신을 실천할 줄 아는 부자. 나와 가족뿐만 아니라 이웃과 나라를 생각하며 희생할 줄 아는 부자가 진정 존경받는 부자인 것이다. 한층 성숙한 부자가 되기 위해서 지금이라도 이름을 밝히지 않고 허리에 차고 있는 금괴 띠를 풀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앞장서 보자. 그런 부자에게는 신비하게도 졸부에게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존경의 카리스마가 풍겨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전진문 영남대 경영학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