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 태산은 이럴 때 하는 말이다. 웬만하면 끝이 보일법도 하지만 어찌 된 게 도통 끝이 보이지 않는다. 끝은커녕 갈수록 불확실성만 쌓이는 형국이다. 미국 경제 얘기다. 아니, 이제는 글로벌 경제 얘기도 된다.미국 경제가 침체(recession)에 빠진 건 이제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글로벌 경제도 침체는 아니지만 미국 경제의 영향권 안에 들어서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인플레이션이라는 또 다른 악재가 등장했다. 국제 유가, 금값, 곡물값 등이 나란히 사상 최고 행진이다. 이러다 보니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것이 ‘R(경기 침체)의 공포’에 이은 ‘S의 공포’다. 다름 아닌 ‘경기 침체 하의 물가 상승’이라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에 대한 공포다. 성장은 정체되는 상태에서 물가만 뛰는 건 최악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하지만 어디까지나 시나리오다. 실제 실현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이 열심히 뛰고 있으니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중요한 건 이에 대응하는 자세다. 과연 어떤 투자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를 찾아보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다.미국의 경기 침체 논쟁은 이제 식상하다. 많은 사람들이 “경기 침체는 이미 진행 중”이라고 말한다. ‘투자의 귀재’라는 워런 버핏마저 “상식적인 기준에서 보면 경기는 이미 침체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이제 경기가 침체로 빠질 것인지를 살펴보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의미가 없다.관심은 경기 침체가 얼마나 오래갈 것이고, 과연 언제쯤 침체에서 벗어날 것인지로 옮겨가고 있다. 이에 대한 전망도 부정적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을 지냈던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람들이 우선 그렇다. 이들은 “이번 경기 침체는 이전보다 훨씬 길고 힘들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맞는 관측이다. 주택 경기는 언제 바닥인지 모를 정도로 침체다. 고용 사정은 본격적으로 나빠지고 있다. 지난 1월에 이어 2월에도 2개월 연속 일자리가 줄었다. 경기 침체 전후에나 있는 일이다. 미국 경제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소비도 마찬가지다. 소매 매출은 지난 2월 0.6%나 감소했다. 여기에 국제 유가 및 원자재 가격 상승까지 겹쳐 물가마저 들썩거리고 있으니 침체의 고통이 길고 깊을 것이란 전망이 타당성을 갖는다.이번 경기 침체의 특징은 신용 위기가 겹쳐 있다는 점이다. 발단은 주택 경기 침체에서 비롯됐지만 본질은 신용 위기라는 분석이 있을 정도로 이번 경기 침체엔 신용 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신용 위기라는 것은 인위적 부양책이나 금리 인하, 유동성 투입만으로 해소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신용이 회복돼야만 해결될 수 있다. 당연히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따라서 경기 침체가 얼마나 오래갈지를 알기 위해선 신용 위기가 언제쯤 해소될지를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바로미터는 금융주다. 금융회사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파문 이후 직격탄을 맞았다. 씨티그룹과 메릴린치 등이 작년 4분기에만 100억 달러에 가까운 적자를 내는 등 대부분 금융회사들이 무분별한 투자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전 세계 금융회사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채권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봐서 상각 처리한 자산만도 1800억 달러가 넘는다. 작년 4분기 미국 500대 기업의 순이익 감소율이 두 자릿수를 기록했던 것도 금융회사의 순이익이 20% 이상 감소한데 따른 것이다.경기 침체에 대한 뉴스가 전해질 때마다 뉴욕 증시에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바로 금융주다. 따라서 금융주는 경기 침체 기간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로 꼽힌다. ‘잠수함의 토끼’와 같은 존재다.금융주에 대한 전망은 아직도 밝지 않다. UBS는 금융회사의 서브프라임 관련 자산 상각액이 6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제 고작 1800억 달러를 털었으니 앞으로도 갈 길이 한참이나 멀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가 하면 모건스탠리는 미국 10대 은행의 올 순이익이 88억 달러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그렇지만 마냥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S&P는 금융회사들의 자산 상각액이 285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지금까지 털어낸 것은 1800억 달러. 반환점은 돌았다는 분석이다. 결국 깜깜한 굴속에 갇혀 있던 금융주에 서광이 비칠 수 있다는 게 S&P의 전망이다.어떤 전망이 맞을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현재 미국 경기가 어디로 가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를 보려면 금융주의 움직임을 보는 게 좋다. 금융주의 방향이 경기의 정확한 방향을 반영하지는 않더라도 시장 참가자들의 총의를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금융주의 움직임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그렇다면 이런 즈음 바람직한 투자 태도는 무엇일까. 이럴 때 대가들은 ‘체리 피킹(보물 줍기)’에 나선다. 값이 떨어진 주식이나 채권이 널려 있으니 기다렸다는 듯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골라잡는 게 이들의 일이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채권 보증 업체를 만든 것이나, 억만장자 투자자 윌버 로스가 채권 보증 업체에 투자하고 모기지 채권을 사들이겠다고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나름대로 원칙을 갖고 그 원칙에 부합하는 ‘체리’를 바구니에 주워 담았다.이들도 하는데 누구는 못할까. 물론 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사람은 한번 나서보라. 분명 거대한 이득을 얻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을 따라 하자면 한 가지 전제가 있다. ‘기다림’과 ‘인내심’이다. 투자 종목을 고를 때도 장고해야 하거니와 한 번 보유한 종목도 장기간 보유해야 한다.버핏은 경영 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올해 세계 최고 부자에 올랐다. 재산은 620억 달러. 1년 사이에 100억 달러가 불었다. 버핏은 이미 알려진 대로 장기 투자의 대가다. 그는 한 번 사면 잘 팔지 않는다. 대신 쉽게 사지도 않는다. 그러다 보니 그가 투자한 종목은 반드시 뭐가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버핏이 최근 상황에서 내건 투자 전략도 기다림이다. 그는 “주가 하락으로 6개월 전에 비해 값싼 기업이 많이 나타나 요즘 들여다볼 재료가 많아졌다”면서도 “아직도 기업이 절대적으로 싼 수준은 아니다”고 고개를 저었다. 이쯤에서 기업을 골라 살만도 하지만 더 기다리면 더 좋은 기업을 더 싸게 살 수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도 비슷하다. 그는 “억만장자의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인내”라고 대답한다. 꾸준함을 갖고 기다려야지 경거망동하거나 부화뇌동했다간 큰코다친다는 얘기다. 맨해튼에 널려 있는 ‘트럼프 빌딩’도 이런 기다림의 미학 속에서 거둬들인 전리품이다. 이들만이 아니다. 다른 백만장자들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자신만의 투자 철학을 바탕으로 시장의 흐름을 읽은 뒤 자신만의 투자 원칙을 철저히 지켜간다. 지난 2006년과 2007년 상반기는 헤지 펀드와 사모 펀드의 시대였다. 그런 만큼 시중자금은 사모 펀드로 몰렸고 이들은 곳곳에서 대박을 몰고 왔다. 재미있는 것은 백만장자들은 사모 펀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한 조사 기관이 포브스지가 선정한 미국 400대 부자 중 22%(88명)를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이들 백만장자의 40% 이상이 헤지 펀드나 사모 펀드엔 한 푼도 투자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헤지 펀드나 사모 펀드에 투자한 사람들 대부분도 겨우 투자 자산의 10% 미만만 이들 펀드에 투자했다.이들은 대신 주식 채권 등 전통적인 투자 포트폴리오를 선호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너무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헤지 펀드와 사모 펀드의 거품이 터져 버린 지금도 이들은 백만장자의 여유로움을 그대로 느끼고 있다.상황이 불가측적일 때는 기다려야 한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를 때는 쉬는 것도 방법이다. 물론 확신이 서면 행동에 나서는 게 옳다. 하반기 회복을 예측하면 지금쯤 ‘체리 피킹’을 시작하는 게 맞다. 다만 거기엔 기다림과 인내가 전제돼야 한다.하영춘 한국경제신문 뉴욕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