즘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는 소리 없는 총성이 계속되고 있다. 가히 격동의 시대라고 할만하다. 원자재 값 상승에 인수·합병(M&A) 경쟁까지 더해지면서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지각변동이 계속되고 있다. 오늘의 1등이 내일로 이어질지 장담할 수 없는 곳이 바로 자동차 업계다.그중에서도 포르쉐와 폭스바겐 간 M&A 전쟁은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최대 뉴스다. 먹느냐 먹히느냐의 혈전을 벌이고 있는 두 업체 간 갈등의 이면에는 최고경영자(CEO) 간 뿌리 깊은 경쟁과 포르쉐 집안의 가계가 복잡하게 작용하고 있다.포르쉐와 폭스바겐은 사촌 집안이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자동차 엔지니어 페르디난트 포르쉐 박사에 의해 설립된 포르쉐는 지금까지 세계 스포츠카 시장의 선두주자로 명맥을 이어왔다. 다임러 벤츠 경영진과의 불화로 독일 슈투트가르트로 돌아온 그가 1930년 친구인 칼 라베, 엔지니어 몇 명과 함께 세운 회사가 바로 포르쉐다. 포르쉐는 초창기부터 전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그가 자동차 회사를 설립했다고 하자 독일은 물론 유럽의 수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엔진과 서스펜션 설계를 의뢰했다. 1932년에는 소비에트연합의 스탈린까지 자동차 생산을 의뢰하기도 했다.하지만 그에겐 평생 짊어져야 할 원죄 같은 것이 있다. 히틀러의 전쟁 야욕에 동조했기 때문. 1934년 히틀러와 만나면서 그의 인생은 180도 바뀐다. 히틀러가 구상한 국민차 개발에 매료된 그는 당시 불가능할 것처럼 여겨졌던 계획을 실제 완성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히틀러는 당시 포르쉐 박사에게 공랭식으로 움직이면서 최고 시속이 100km를 넘고 가격도 저렴해 누구나 탈 수 있는 차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시속 100km를 넘기면서 공기로 열을 식힌다는 것은 당시 자동차 기술로선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천재 과학자는 이를 현실로 만들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그 유명한 ‘딱정벌레차’ 비틀(Beetle)이다. 비틀 생산과 동시에 히틀러는 움직이는 전동 기구를 모두 양산하는 국영 자동차 기업을 설립했고 이것이 훗날 유럽 최대 자동차 메이커로 성장한 폭스바겐이다. 그리고 초대 대표에 포르쉐 박사가 선임됐다. 폭스바겐에서 포르쉐 박사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하이브리드 엔진을 개발하는 등 눈부신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훗날 독일이 패망하면서 그의 이름 뒤에는 나치에 협조한 1급 전범이라는 불명예가 따라붙는다.종전 후 프랑스에서 옥살이를 하는 동안에도 자동차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옥중에서도 그는 끊임없이 자동차 연구를 계속해 출감 후 새로운 자동차를 선보였는데 이것이 바로 훗날 포르쉐의 대명사인 911과 박스터의 기초가 됐다. 그뿐만 아니라 옥중에서도 그는 프랑스 푸조자동차의 기술을 향상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포르쉐 사후 그의 회사는 딸인 루이제와 아들인 페르디난트 포르쉐 주니어(페리 포르쉐)가 공동으로 운영하게 된다. 딸인 루이제가 외향적이라면 페리는 내성적이었다. 루이제가 회사 경영 전반을 책임졌다면 페리는 신차 개발에 몰두했다. 그러나 후대로 넘어오면서 두 집안의 관계는 조금씩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그 중심에는 포르쉐 박사의 외손자이자 루이스 포르쉐의 아들인 페르디난트 피에히가 있었다. 1962년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를 졸업한 뒤 포르쉐에 입사한 그는 전형적인 자동차 엔지니어였다.8년 동안 일하면서 그는 8기통 경주용 차인 포르쉐 804, 포르쉐 917을 개발하는 등 놀라운 수완을 보인다. 그러나 집안 대대로 흐르는 엔지니어 기질은 오히려 약점으로 작용했다. 지극히 내성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고로 동료들과 마찰을 빚기 일쑤였다. 지금도 그는 자동차 외의 다른 것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그에겐 차는 살아있는 이유 그 자체다. 차와 함께 있을 때만이 행복감을 느낀다고 그는 수많은 인터뷰에서 털어놓는다.결국 그는 정든 포르쉐를 떠나 아우디로 자리를 옮긴다. 그러나 아우디에서도 그는 놀라운 수완을 발휘해 훗날 아우디 기술담당 사장까지 오르게 됐다. 오늘날 아우디 사륜구동 기술의 핵심인 콰트로는 피에히의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1993년 아우디가 폭스바겐이 인수되면서 폭스바겐 그룹의 최고경영자에 올랐고 2002년에는 이사회 의장을 맡게 된다. 외할아버지가 설립한 회사에 50여년 만에 당당히 재입성한 것이다.CEO에 오르자마다 피에히는 엄청난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폭스바겐은 일반 기업과 성격이 다르다.군수물자를 생산하기 위해 만든 기업이기 때문에 정부 입김이 강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영국군이 운영하던 것을 1949년 서독 정부가 인수했으며 연방제가 실시되면서부터는 니더작센 주정부가 일정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회장에 취임하자마자 피에히는 대규모 M&A를 시작한다. 세아트, 스코다, 람보르기니, 부가티, 벤틀리, 스카니아, 만을 연이어 매입하면서 유럽 최대 자동차 메이커로 부상했다.폭스바겐그룹은 연간 매출액 1500억 유로, 종업원 수만 43만 명을 거느리고 있다. 폭스바겐이 생산하는 차는 배기량 1000cc 뉴비틀에서부터 플래그십 모델 페이톤까지이며 40톤이 넘는 승용트럭과 버스까지 생산해 내고 있다.그러나 피에히의 도전은 최근 커다란 시련에 직면해 있다. 실적 부진에다 잦은 경영진 교체로 폭스바겐은 종종 ‘머리 작은 공룡’에 비유되고 있다. 유럽 최고의 자동차 메이커라는 수식은 이제 과거의 영광에 지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는 수많은 내부 의견을 무시하고 고급차 시장에 뛰어들어 페이톤을 미국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까지 진출시켰지만 참패라는 성적표만 안고 결국 2선으로 후퇴했다. 현재 폭스바겐자동차 그룹은 페르디난트 피에히-마틴 빈터콘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이러는 사이 폭스바겐이 다시 뉴스메이커로 떠오른 것은 인수 대상으로 사촌인 포르쉐가 나섰기 때문이다. 폭스바겐이 잘나가던 시기는 포르쉐에는 악몽의 시간이었다.이사회가 구성돼 전문 경영인 체제로 운영되던 포르쉐는 1990년대 초만 해도 판매 부진과 신차 개발 지연 등의 이유로 심각한 경영난에 처해 있었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이 바로 현 이사회 의장이자 CEO인 벤델린 비데킹이다.그가 오기 전까지 만 해도 자동차 업계에서 포르쉐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메이커에 불과했다. 같은 스포츠카를 개발한 람보르기니, 부가티, 페라리가 폭스바겐과 피아트에 속속 인수됐고 영국 고급차 롤스로이스, 벤틀리도 각각 BMW와 폭스바겐 산하로 들어가면서 슈퍼카, 럭셔리카는 채산성이 낮다는 등식이 성립되던 시기였다. 매각은 시간문제로 파악됐다.그러나 CEO에 취임하자마자 그는 재무통답게 효율성을 기초로 회사를 개혁해 나갔다. 적절한 시기에 구조조정을 단행해 몸집을 줄였고 곧 포르쉐는 매출이 급상승했다. 매출은 6배, 주식은 20배 이상 뛰면서 포르쉐는 전 세계 자동차 중 가장 경쟁력 있는 메이커로 평가받는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세계 자동차 시장이 메르세데스벤츠, GM, BMW, 도요타와 함께 포르쉐를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될 것으로 내다본다. 현대·기아차의 미래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는 의견이 많다. 그만큼 포르쉐는 규모는 작지만 내실 있는 자동차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포르쉐는 요즘 또 한 번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스포츠카의 대명사로만 머무를 것 같았던 포르쉐가 폭스바겐 인수의 적임자를 자처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M&A 성사 여부를 놓고 관련 업계에서는 현 상황을 두 회사를 다윗과 골리앗에 종종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감춰진 두 집안의 보이지 않는 경쟁이 보는 이유에게 재미를 더해준다.현재 포르쉐는 폭스바겐 전체 지분 31%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폭스바겐 내부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독일 정부는 폭스바겐이 다른 나라에 M&A되지 않도록 ‘폭스바겐법’이라는 별도의 법률을 마련해 놓고 있다. 지분의 20% 이상을 소유한 주주가 M&A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현재 지자체인 니더작센 주정부는 폭스바겐의 지분 20.3%를 소유하고 있다. 따라서 포르쉐가 추가로 주식을 매입해 M&A에 나서는 것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포르쉐는 공정거래와 관련해 유럽연합에 유권 해석을 의뢰한 상태다. 일단 유럽연합 사법재판소는 포르쉐의 손을 들어줬다. 비데킹은 연내에 폭스바겐의 지분을 50%까지 늘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하지만 일부에서는 이 같은 비데킹의 전략 뒤에는 폭스바겐을 독일 정부로부터 완전히 인수하려는 피에히의 고도의 계산이 깔려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피에히 가문은 포르쉐 지분의 46.3%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13.2%가 피에히의 몫이다. 외가인 포르쉐 가문의 지분은 53.7%다. 외가의 지분까지 합친다면 지분은 66.9%로 늘어난다. 계획대로 포르쉐가 폭스바겐을 인수하게 되면 거대 공룡의 자동차 회사는 피에히와 폭스바겐그룹 CEO인 빈터콘, 포르쉐 CEO인 비데킹, 그리고 포르쉐 이사회 의장이자 포르쉐 박사의 직계인 볼프강 포르쉐 간 역학 구도가 중요한 과제로 부상할 전망이다.송창섭 기자 realsong@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