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이 내다보는 4분기 국내 증시 전망은 부정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긍정적인 것도 아니다. 세계 4위 투자은행(IB)인 리먼브러더스가 파산 보호 신청을 했고, 세계 최대 증권사인 메릴린치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인수된 데다 세계 1위 보험사 AIG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로부터 850억 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받는 등 동시다발성 미국발(發) 금융 위기 국면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판단에서다.여기에 미국발 금융 위기가 실물경제로 전이될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어 미국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기업들의 이익도 감소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9월에 발표된 미국의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작년 8월보다 0.1% 떨어져 2006년 10월 이후 처음 하락세를 나타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위기감은 다소 완화됐으나 경기 침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는 얘기다.다만 일각에서는 최근의 사태를 불확실성 해소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미국 내 5대 투자은행 가운데 메릴린치 리먼브러더스 베어스턴스 등 3~5위권 IB들이 매각 또는 파산 보호 신청 과정을 거치면서 그동안 불확실성으로 존재했던 우려가 가시화됨에 따라 오히려 최악의 상황은 지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 사이엔 국내 증시가 4분기에 반등 국면으로 전환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 같은 시각에는 미국발 금융 위기 국면이 서서히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깔려 있다. 글로벌 금융 위기의 시발점이 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에 대한 우려는 작년 2월부터 불거졌다. 같은 해 7월과 8월에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가시화되면서 글로벌 증시에 1차 충격을 안겨줬다. 당시 국내 증시를 비롯한 글로벌 증시는 이 같은 우려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코스피지수는 2월 말 증시 개장 직후 4% 넘게 폭락하다 2%대의 하락세로 거래를 마쳤고 7월 말과 8월 초에는 하루 만에 4%, 6% 이상씩 주저앉기도 했다. 대세 상승기여서 증시는 이후 곧바로 회복세를 보였으나 결과적으로 서브프라임의 후폭풍은 잠시 수면 아래로 밀려나 있었을 뿐이었다.위기감이 증시에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작년 11월부터다. 이후 지난 10개월 동안 추가 금융 위기 불안감으로 글로벌 증시는 약세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10여 개월을 끌어 온 금융 위기가 이번 미국 대형 투자은행들의 직접적인 타격으로 현실화되면서 증시에 가장 부정적인 요소인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국면으로 진입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크리스토퍼 라이언 피델리티 아시아태평양지역 대표는 최근 기자와 만나 “미국 정부가 움직이는 시기가 글로벌 금융 위기 국면이 해소되는 시기인 것으로 본다”며 “1년 전엔 어느 투자은행이 문제가 있는지, 손실 규모는 얼마인지 아무도 몰랐지만 이제는 모두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과거 사례를 분석해 보면 어떠한 대형 악재든 발생 후 2년을 넘게 시장을 지배하지는 못했다”고 덧붙였다.◇=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은 증시가 상승 추세로 접어들 수 있다고 진단하면서도 ‘V’자 모양과 같은 급격한 반등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 위기에 대해 몇 번의 충격이 더 나타나면서 바닥을 다진 뒤 서서히 상승 추세로 전환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4분기 증시는 ‘U’자형 패턴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박종현 우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4분기 국내 증시는 9월을 통과한 금융 위기 국면이 진정되면 7월부터 이어진 바닥 다지기 장세가 상승 추세로 진입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코스피가 50억 달러 규모의 투자 자금 유입 효과가 기대되는 파이낸셜타임스 스톡 익스체인지(FTSE) 선진국지수에 편입된 것도 이 같은 전망을 뒷받침하고 있다. 김학주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도 “주가에 이미 대부분의 악재가 반영돼 있으나 투자 심리가 회복되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V자형 주가 반등은 어렵고 바닥권에서 횡보하는 장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센터장은 4분기 코스피지수를 1500~1850선으로 예상했고, 김 센터장은 이보다 낮은 1540~1715로 전망하고 있다.반등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이재광 한국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 역시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4분기 증시가 호재로 상승하기보다는 악재 영향력이 서서히 줄어든 데 따른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이 본부장은 4분기 예상 코스피지수 저점을 1380으로 잡았다.문기훈 굿모닝신한증권 리서치센터장 역시 코스피지수 저점을 1350으로 잡아 이 본부장과 비슷한 시각을 보였다. 문 센터장은 다만 미국 정부가 본격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면 주요 국가들의 경기 부양 정책으로 이어져 투자 심리가 점차 회복될 가능성을 주요 상승 동기로 꼽으면서 이 본부장과 관점에 차이를 뒀다. 실제 중국 인민은행은 최근 1년 만기 대출 금리를 기존 7.47%에서 7.20%로, 지급준비율은 17.5%에서 16.5%로 각각 낮추는 등 경기 부양책을 내놓기도 했다.◇= 증시가 바닥권에서 벗어나며 상승 국면으로 진입을 시도할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나 불안 요인도 적지 않다. 국내 증시가 기업 이익이나 국내 정책보다는 미국 정부의 정책 방향 등 외부 변수에 보다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FRB가 AIG에 850억 달러(약 94조 원)의 구제금융을 제공하기로 하고 9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선 2%의 기준금리를 동결하는 등 현재까지의 상황은 그나마 증시에 우호적이다.하지만 이번 위기가 영국 내 최대 모기지 회사인 HBOS 등 유럽계 은행으로까지 번질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는데다 급락세를 보이고 있는 중국 부동산 가격도 불안 요인이다. UBS는 최근 이례적으로 자료를 내고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UBS의 위기설에 대해 “지난 5월 160억 스위스 프랑(약 16조 원)의 유상증자를 통해 자기자본을 확충해 2분기 말 현재 자본건전성 지표의 하나인 기본자본비율인 티어(Tier)1 비율이 11.6%로 전 세계 투자은행 중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글로벌 증시의 큰 손인 투자은행들이 현금 확보를 위해 중국 내 자산을 서둘러 처분하면서 현재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고 있는 점도 변수로 꼽힌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상하이의 신톈디(新天地) 일대 아파트 단지를 매물로 내놨으며 서브프라임 관련 손실이 없는 호주계 투자은행 맥쿼리도 최근 상하이 소재 아파트 단지 매각을 진행 중이다. 여기에 그동안의 중국 내 건설 경기 활황을 타고 우후죽순 격으로 솟아오르고 있는 상업용 빌딩 신규 공급 규모가 향후 2년 내 현 수요를 200%가량 초과할 것이란 전망도 부동산 시장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글로벌 큰손 투자자들의 잇따른 중국 내 부동산 자산 매각과 초과 공급은 향후 부동산 가격 하락, 은행 부실화, 증시 추가 하락의 악순환으로 이어지며 글로벌 경제의 새로운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제기되고 있다. 실제 8월 중국 70개 주요 도시의 부동산 가격은 7월보다 0.1% 하락했다. 이 점은 최근 비유통주 물량 부담과 글로벌 악재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중국 증시에 추가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중국 증시는 미국 증시와 더불어 국내 증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이 돈줄을 죄면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신흥시장에서 외국인이 주식 매도 규모를 늘릴 수 있다. 실제 외국인은 작년과 올해에 연속해서 국내 증시에서 30조 원 이상의 주식을 처분했다.◇= 향후 국내 증시는 이런 여러 변수가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관건이다. 만일 변수들이 증시에 우호적 방향으로 전개될 경우 주요 센터장들은 낙폭 과대주나 경기 방어주를 눈여겨볼 것을 권했다. 올 들어 계속된 증시 조정으로 우량주의 하락 폭이 과도한 만큼 증시가 반등세를 보이면 가장 큰 폭의 상승 폭을 보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악재가 사라져 증시가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도 한동안 글로벌 경기 침체 조짐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산 가치가 높은 한국전력이나 경기와 상관없이 실적을 낼 수 있는 KT&G의 매수도 권했다. 이와 함께 올해 증시 침체로 배당주의 가격이 낮아져 연말 배당을 노리고 투자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는 분석이다.김재후 한국경제신문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