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한 달에 여러 장의 초대장을 받는다. 새로운 브랜드의 런칭 행사일 때도 있고, 기존 브랜드에서 새롭게 출시된 제품을 선보이기 위한 행사의 초대장을 받을 때가 많다. 때로는 이렇게 많은 브랜드가 대한민국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새삼 놀랄 정도다. 이런 초대장 중에서도 요란스러운 것은 소위 말하는 ‘명품’ 브랜드 행사다. 확실히 우리나라가 해외 명품 브랜드의 큰 시장이며, 특히 아시아 시장의 교두보라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문제는 한국인들이 명품 상표에 너무 집착한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명품 마니아들은 오히려 그 브랜드가 갖고 있는 역사와 브랜드 이미지를 선호한다. 특히 그 브랜드의 가치를 대변할 베스트 아이템들을 소장하려 한다. 그렇다면 요즘 사람들은 왜 이처럼 명품에 열광하는 것일까?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이번 기회에 진지하게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만약 본인이 명품을 좋아한다면, “나는 왜 명품을 좋아하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필자도 명품을 좋아한다고 답할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야기가 있고 장인정신이 느껴져서 명품을 좋아하고, 또 그렇게 역사와 손맛이 배어 있는 명품 브랜드를 사랑한다. 지나치게 유행에 따르지 않고, 그래서 약간은 촌스럽게도 느껴지는 디자인, 그리고 대량이 아닌 소량 생산하는 브랜드만이 필자에겐 진정한 명품으로 존재한다. 소량 생산 판매하는 명품 와인와인 중에서 이런 명품에 견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부티크 와인 (Boutique Wine)’이다. 럭셔리, 소량 생산, 손맛이 나는 장인정신, 오리지널리티, 비싼 가격, 귀한 그 어떤 것. 요즘은 호텔도 크고 유명한 세계적 메이저 호텔보다는 작고 방이 몇 개 없고 부대시설도 별로 없지만 집처럼 아늑하고 섬세한 서비스가 가능한 ‘이완 슈레이거 호텔’같은 부티크 호텔이 무척 인기다. ‘부티크’ 와인도 이처럼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닌, 소수의 마니아를 위한 명품 와인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고 있다.부티크 와인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자.와인 마니아들에게 널리 알려진 부티크 와인 중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은 샤토 몬텔레나(Chateau Montelena), 비어데어(Viader), 파니엔테(Far Niente) 등이 있다. 샤토 몬텔레나 와인은 ‘샤토’가 붙은 이름과는 달리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인데, 맛은 마치 프랑스의 오래된 샤토 와인처럼 진한 딸기 맛 향과 시가의 느낌을 뒷맛으로 남기는 놀라운 와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비어데어(Viader)는 컬트 와인(Cult Wine)으로서의 명성을 지켜오고 있는데 일절 화학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100% 유기농법으로 포도를 재배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연 생산량이 3만병에도 못 미치는 비어데어는 진한 초콜릿과 딸기, 그리고 과일 향이 응집되어 있어 한 모금 마시기 전에 이미 그 향에 취할 정도다. 영화에도 마니아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컬트 영화가 있는 것처럼 비어데어 같은 컬트 와인도 전 세계 와인 마니아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힘이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미국의 워싱턴주 와이너리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비해서도 재배 환경이나 와인의 품질이 뒤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워싱턴주의 부티크 와인으로는 레콜 넘버 41(L’Ecole No.41)이 대표적이다. 어린아이가 그린 듯한 학교 그림을 라벨로 사용하고 있는 이 와인은 실제로 학교였던 곳을 개조해 만든 와이너리에서 생산되고 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 워싱턴주 와이너리들과 함께 주목받고 있는 다른 한 곳은 바로 호주다. 호주의 도메인 에이(Domaine A)는 세계 최대 와인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는 영국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어 또 하나의 떠오르는 부티크 와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도메인 에이는 다른 와인들에 비해 허브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다. 재배부터 유통까지 장인의 손길 느껴져그렇다면 부티크 와인들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앞서 언급한 몇 종류의 부티크 와인들부터 살펴보자. 모두 미국, 호주 등의 나라에서 생산된 와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부티크 와인은 프랑스, 이탈리아 등 와인에 있어서 ‘구대륙’국가가 아닌 미국, 호주, 칠레 등으로 분류되는 ‘신대륙’에 속하는 나라에서 생산되는 것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이처럼 신대륙 나라들에서 생산되고 있음에도 그 시초가 ‘구대륙’에서 온 이민자들이나 그들의 후손이 와인 생산에 많이 관여하고 있다는 점이다.많은 사람들은 신대륙에서 생산되는 와인이 아무래도 몇 백년 포도나무를 심고 수확해 온 구대륙의 와인과 완전히 같은 맛을 지닐 수는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유럽 등지에서 온 이민자들은 신대륙에서 유럽 와인의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면서 와인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이런 노력은 그들이 만드는 와인에 그대로 전해지게 되었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적인 손맛이 와인에도 나타나게 된 것이다. 신대륙의 포도가 지닌 새로움이 이렇게 전통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장인들의 손길을 거쳐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놀라운 와인으로 되살아난 것이다.뿐만 아니라 최근의 부티크 와인들은 대량으로 생산되는 다른 와인들과는 달리 생산량에 신경 쓰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개성을 고집하고 있다. 포도를 키우고, 포도밭을 관리하고, 포도를 수확하고, 양조하는 하나하나의 모든 과정에 그들만의 정성과 손맛이 담겨 있다. 이 때문에 부티크 와인은 얼마나 많이 팔아 이익을 남기느냐 하는 것보다 얼마나 좋은 품질의 특별한 와인을 만드느냐에 온 정성을 쏟는다.얼마 전 사무실의 나이 어린 직원이 필자에게 “사장님의 인생에는 어떤 명품이 있었나요?”하고 물은 적이 있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서의 첫 명품은 어머니가 여행 후 선물로 준 것이라면서, 작고 클래식한 디자인의 루이뷔통 백을 부끄러운 듯이 꺼내 보였다. 그녀를 보고 있자니 20년 전에 샀던,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명품’이라 불렀던 ‘아르마니’ 청바지가 떠올랐다. 한국에는 이 브랜드가 들어오기 전이었고, 그래서 유학 시절 돈을 모아 산 이 청바지가 당시에는 얼마나 멋지고 귀중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놀랍게도 나는 그 청바지가 아직도 내 몸에 맞는다. 사람들은 아직도 멋지게 낡고 닳은 그 자연스러운 청바지에 종종 찬사를 보내며 내가 부여한 이 바지에 대한 의미를 듣고는 ‘진정한 명품’이라는 것에 진심으로 동의하곤 한다.와인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정말 소중한 손님을 접대할 때 앞서 말한 부티크 와인을 내어 온다. 그저 가격만 비싼 와인이 아니라, 그만의 개성이 살아나고 그것을 마시는 사람이 스스로를 특별하게 느낄 수 있는 부티크 와인이야말로 진짜 명품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방이건, 신발이건, 와인이건 명품이라는 것은 값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사람의 정성과 애정, 그리고 즐기는 사람의 만족이 만났을 때 ‘짝퉁’이 아닌 ‘명품’이 되는 것이다. 자신이 인생에 있어 작지만 소중한 기억과 의미를 부여할 만한 상품, 그래서 남에게 자신의 이미지에 얹어서 나타낼 수 있는 것,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진정한 명품 부티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