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상위 1% 부자들에 발급… 슈퍼프리미엄카드도 첫선

시중은행의 프라이빗 뱅커(PB)로 일하면서 예금 10억원 이상의 ‘큰손’ 고객을 상대하는 L팀장(39)은 그 자신이 수십억원대 자산가이기도 하다. L팀장은 지아니 베르사체의 양복과 프랭크 뮬러의 시계를 애용한다. 또 검은색 컬러가 유난히 돋보이는 비자의 플래티늄 카드도 소유하고 있다. 근무하는 은행에서 PB 고객을 상대로 발급하는 이 카드는 월 이용한도가 무려 1억6000만원에 달한다고 하니 그야말로 ‘부(富)의 상징’이라고 할 만하다. L팀장은 ‘현금을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이용할 일이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소유하고 있다는 것 자체로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말한다.‘백금’(白金)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플래티늄. 플래티늄 카드는 소득 기준으로 상위 1%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만 발급되는 상류층의 상징이다. 발급 기준이 까다로운 데다 연회비도 비싸 일반인들이 발급받기에는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일단 발급받고 나면 비용에 상응하는 특화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요즘 플래티늄 카드의 상품 트렌드가 두 갈래로 갈리고 있다. 종전 플래티늄 카드 서비스를 그대로 이용하면서 연회비를 낮춘 대중적인 상품이 등장하는가 하면 월 이용한도가 억대인 이른바 슈퍼 프리미엄 카드도 선보이고 있다. 대한민국 상위 1%에 속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장씩 갖고 있다고 하는 플래티늄 카드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의사·변호사 등 전문직 대상플래티늄 카드 고객의 경우 신분 노출을 꺼리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카드사 입장에서는 가입 기준 등에 대해 함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국내 최다인 2600만 회원을 보유한 비씨카드의 실례를 살펴보자. 비씨카드의 경우 소득 기준으로 상위 0.5%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플래티늄 카드를 발급해주고 있다. 비씨카드가 밝힌 우량 회원 선정 기준에는 카드 사용액, 이용 실적 등이 주요 평가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카드사들은 또 내규를 통해 회원들의 직군도 중요시하고 있다. 비씨의 경우 공무원 3급 이상, 현 직종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변호사 변리사 세무사 등 전문직 종사자, 군 장성급 이상, 교장 및 대학 부교수 이상, 상장사 임원 이상 등의 직군에 해당하면서 연간 신용판매 이용액이 1500만원 이상인 고객 중 연체가 없는 사람이 대상이다.월 이용한도가 1억원에 달하는 현대카드의 ‘슈퍼프리미엄 카드’도 이와 비슷한 가입 요건을 갖추고 있다. 대기업과 외국계 기업의 상무급 이상 임원, 연매출 300억원 이상의 중소기업 대표, 개업 5년차 이상의 의사, 변호사 등에게만 발급해준다. 특히 ‘더 블랙’의 경우 플래티늄 카드보다도 한 단계 높은 레벨인 슈퍼 프리미엄 카드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이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누구에게나 다 발급되는 것은 아니다. 플래티늄 카드를 사용하는 초우량 고객들은 할인이나 할부 서비스보다 남들과 비교되는 특별한 대접을 받기를 원한다. 때문에 카드사들의 마케팅도 이 같은 점에 집중돼 있다. 예컨대 우수회원들은 현금 서비스를 잘 이용하지 않고 신분 노출을 꺼린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감안해 우수회원 전용 전화,전담 상담원 배치 등의 서비스를 통해 1 대 1로 고객을 관리하고 있다. 이들을 상대하는 전담 직원들은 회원의 요청이 있을 때 비행 스케줄 및 환율, 해외여행 예정지의 날씨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 시중은행 PB들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문화·여행·레저 등 특화서비스신용카드사들이 발급하는 플래티늄 카드들은 대기업 임원 등 해외 출장이 많은 이용자들의 성향을 감안해 호텔 여행 등의 서비스를 집중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틀 안에서 나름대로 특화 서비스를 개발, 차별화를 시도하는 카드사들의 노력도 눈에 띈다.비씨카드의 플래티늄 카드는 문화 레저 여행 건강 등에서 차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카드의 회원들은 예술의 전당 멤버십에 자동으로 가입되며 매월 정기음악회에 무료로 초청받는다. 또 문화공연 여행 레저 등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담은 잡지 ‘The BC’를 보내주고 있다. 비씨카드 여행팀을 통해 외국 호텔을 예약할 때 1박을 무료로 지원하며 신규 가입 및 갱신 회원에게는 국내 특급호텔 1박 무료 숙박권을 증정한다. 국제선 항공권 가격 7% 할인과 3개월 무이자 할부 혜택도 준다. 또 세계 200여개의 공항라운지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LG카드는 플래티늄 카드를 ‘클래식’과 ‘익스텐션’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한다. 연회비는 각각 12만원, 5만원. LG카드의 주력 상품인 ‘LG 빅플러스 GS칼텍스카드’에 플래티늄 서비스를 더한 ‘LG 빅플러스 GS칼텍스 플래티늄 카드’도 발급하고 있다. 이 상품은 GS칼텍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을 때 ℓ당 80원씩 할인해주는 게 특징이다. LG 플래티늄 골프카드는 골프장 부킹 대행 서비스와 함께 전화뿐만 아니라 인터넷으로도 예약 골프장과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현대카드는 연회비가 1만원인 ‘S플래티늄’과 연회비 3만원짜리 ‘M플래티늄’을 내놓아 플래티늄 카드의 가격 파괴를 선언했다.M플래티늄은 전국 26개 특급호텔에서 최고 40% 할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클럽 호텔 서비스와 100여개 고급 레스토랑 10% 할인 서비스, 항공권 10% 할인, 공항라운지 무료 이용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KB카드는 기존 플래티늄 상품에 부가 서비스를 크게 강화한 ‘KB 멤버십 플래티늄 카드’를 선보였다. 종전의 플래티늄 서비스를 그대로 제공하면서 신규로 가입하는 고객에게 첫해 연회비 면제와 백화점 할인점 의류매장 피부미용센터 등을 이용할 때 2~3개월 무이자 할부 혜택을 준다.외환은행에서 발급하는 ‘외환 플래티늄 카드’는 연회비를 상품별로 각각 12만원, 7만원, 3만원으로 다양화했다. 플래티늄1200은 동반자 국내 왕복항공권, 제주도 하얏트호텔 1박 무료 숙박권, 세계 80여개 공항라운지 이용권, 건강검진, 법률상담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플래티늄700은 동반자 국내 왕복항공권 제공과 세계 80여개 공항라운지 이용권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신한카드의 ‘신한 플래티늄 카드’는 계열사인 신한은행 이용시 송금 수수료, 자기앞수표 발행 수수료, 증명서 발급 수수료, 보관어음 수수료, 대여금고 보증금과 이용 수수료 등을 면제해준다. 아울러 외화 환전시 환율 우대와 해외 송금 수수료 50%를 할인해준다.삼성카드는 골프 관련 서비스에 특화한 ‘플래티늄 골프카드’를 주력 상품으로 꼽고 있다. 플래티늄 골프카드는 동반자용 국내 왕복 항공권 무료 제공 등 기존 플래티늄 카드 혜택에 전국 65개 골프장 주중 주말 상시 부킹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밖에 항공 마일리지 적립이 가능한 ‘플래티늄 S-MILE 카드’, 문화 공연 관련 서비스를 강화한 ‘플래티늄 라이프 카드’,여성 관련 뷰티 웰빙 서비스를 강화한 ‘로즈 플래티늄 카드’ 등도 발급하고 있다.롯데카드의 ‘아메리칸 엑스프레스 골드카드’는 물품 구매 이후 한 달 이내에 구매품을 도난 또는 파손당하면 최고 1000만원까지 보상해주는 구매물품 보상 서비스와 항공권 등 공공 교통편을 카드로 결제할 때 최장 90일간 최고 10억원까지 보상하는 여행자보험, 최고 100만원까지 보상하는 여행불편 보상 서비스를 제공한다.최근 3개월간 이용 실적이 있는 회원에게 국내외 40여개 공항라운지 6회 무료 이용 서비스도 제공한다. 플래티늄 넘어 슈퍼 프리미엄으로카드사들은 플래티늄 카드의 대중화에 따라 최상위층 부자들에게 특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신용카드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른바 슈퍼 프리미엄 카드라고 불리는 이 카드는 올 들어 현대카드가 처음 선보였다.연회비가 100만원, 월 이용한도가 1억원에 달하는 슈퍼 프리미엄급 카드 ‘더 블랙’(The Black)은 9999명에게만 한정 발급된다.발급 자격도 엄격하게 제한돼 있다. 예를 들어 의사인 경우 5년 이상의 경력이 있어야 하고 전공도 제한한다. 이 같은 자격 여건을 통과하더라도 사장, 리스크본부장, 마케팅 총괄본부장, 크레딧 관리실장, 브랜드 관리실장 등으로 이뤄진 더 블랙 커미티가 최종 승인을 해야 블랙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이처럼 까다롭게 발급심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일단 회원으로 가입하면 말 그대로 슈퍼 프리미엄급 서비스가 제공된다. 우선 이탈리아 현지 명품 맞춤셔츠, 각종 명품 할인권, 고급 레스토랑 이용권 등이 제공된다.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하면 퍼스트 클래스로 무료 업그레이드해주고, 호텔 발레 파킹은 기본이다. 카드에는 1∼9999번까지의 고유번호가 새겨지는데 1번은 현대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이, 마지막 번호인 9999번은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이 받았다. 번호는 무작위로 부여하는데 순서대로 매겨지지 않는 이유는 혹시나 번호를 서열이나 발급순서로 오해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더 블랙의 주소유자들은 경제활동이 왕성한 기업체 최고경영자와 의사, 변호사, 세무사 등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이다. 현대카드는 현대차 그룹사 임원들에게는 이 카드의 발급을 자제토록 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국내 굴지의 두개 그룹사에서 최고경영층 전부가 가입 신청을 해왔고 유명 여성가수 A씨와 스포츠맨 B씨 등 스타들까지 카드를 신청해와 세간의 관심을 실감케 하고 있다.현대카드가 선점한 이 시장에는 조만간 다른 카드사들도 뛰어들 전망이다. 삼성 LG 신한 등 다른 카드사들 역시 각국 카드사들의 연합체인 비자카드가 개발한 슈퍼 프리미엄 카드 ‘인피니트’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기 때문이다. 비자카드 김영종 사장은 ‘연회비를 100만원 안팎으로 정해 조만간 이 카드를 발급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상위 1% 계층을 상대로 해외여행과 골프 등 각종 고급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블랙카드를 개발한 현대카드 담당자는 ‘미국 최초의 슈퍼 프리미엄 카드인 아멕스 블랙 센추리온의 경우 회원이 1만5000명에 지나지 않지만, 지난해 회원 1인당 평균 카드 사용액이 4억원을 웃도는 것으로 집계됐다’며 ‘불황일수록 소비의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는 만큼 기업들의 고소득층 대상 마케팅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카드사별 플래티늄 현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