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의 마켓 로드맵

자의 귀재’는 막힘이 없었다. 환율 부동산 경기 금리 등 거시 변수는 물론 세계 지역별 경제 현황과 업종별 현황도 훤히 꿰고 있었다. 한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원화 환율의 수치를 일일이 들어가며 한국의 증시에 대해 설명할 때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즉석에서 튀어 나오는 현안에 대해 그는 감탄을 자아낼 만한 답변을 쏟아 냈다.그는 특별히 한국 시장을 높게 평가했다. 작년 주주총회에서 “한국 주식이 싸긴 하지만 벅셔해서웨이가 투자하기엔 시가총액이 너무 적다”고 말했던 그다. 그러나 이번 인터뷰에선 “한국 증시의 투자 조건은 아주 좋다”고 평가했다. 강해진 기업, 원화 강세, 세계 최고의 기업정보공개 등 자신이 분석한 한국 증시의 강점도 꼽았다. 이런 발언과 여러 분위기를 미뤄보면 아마도 벅셔해서웨이가 한국에 대한 투자를 본격화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버핏의 한국에 대한 평가는 ‘단순한 예의 이상’이었고, 한국에 대한 연구는 ‘단순한 관심 이상’이었기 때문이다.인터뷰는 벅셔해서웨이의 주총이 열린 다음날인 5월7일 오마하 메리어트호텔에서 한국경제신문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낸셜타임스 등 세계적인 언론과 공동으로 진행됐다. 주주총회와 마찬가지로 그의 평생 동료이자 친구인 찰리 멍고 벅셔해서웨이 부회장이 동석했다. 인터뷰 내용을 주제에 따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다. 전체적인 흐름을 위해 주주총회에서 나왔던 발언도 일부 추가한다. -지난 2004년 한국 주식을 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외환 위기 이후 한국 기업들이 강해지는 것을 보면서 왜 외환 위기 때 싼 값에 한국 주식을 사지 못했나 후회했습니다. 그러던 중 씨티그룹이 자체 선정한 한국 기업 리스트를 건네 줬습니다. 1주일 동안 검토한 뒤 20여 개 기업의 주식을 사서 일부는 지금도 갖고 있습니다. 20여 개 기업 중 속속들이 알고 있던 기업은 한 곳도 없었지만 상당한 투자 수익을 얻었습니다.”-한국 증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투자 여건이 아주 좋은 상태입니다. 투자 기회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관심과 흥미를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기업도 강해졌고 시장도 커졌습니다. 한국 경제도 선진 경제가 됐습니다. 특히 최근 주가가 많이 올랐지만 기업 가치에 비해 여전히 싼 종목도 수두룩합니다.”-한국 증시의 강점으로 무엇을 꼽을 수 있습니까.“다른 무엇보다 기업들이 엄청나게 강해졌습니다. 삼성 등 세계적인 기업도 나왔습니다. 게다가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1050원 선에서 최근(5월7일 당시)엔 940원으로 떨어졌습니다. 미국의 대규모 무역 적자에 따른 달러화 약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시점에서 이 점도 매력적입니다. 더욱이 한국 기업들의 정보공개 수준은 세계 최고입니다. 한국 기업처럼 인터넷을 통해 기업 정보를 속속들이 제공하는 기업은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SEC(미 증권거래위원회)의 철저한 감독을 받고 있는 미국 기업보다 훨씬 낫습니다.”-그렇다면 한국에 대한 앞으로 투자 계획은 어떻습니까.“글쎄요. 그냥 미뤄 짐작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버핏은 동석한 “찰리 멍고 부회장이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발언을 부탁했고, 멍고 부회장은 자신의 경험을 들어 한국에 대한 벅셔해서웨이의 시각을 전달했다. 다음은 멍고 부회장의 발언.)“우선 이스라엘의 이스카 멘탈워킹의 인수로 한국에 투자할 수 있게 돼 아주 행복하게 생각합니다(한국의 중소기업인 대구텍은 이스카의 자회사로, 이를 가리킨 말이다). 아버지 집이 LA에 있었습니다. 어릴 때 주위엔 한국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자연스럽게 한국 사람들의 특징과 한국 기업들을 알게 됐습니다. 한국의 기업 문화는 아주 독특합니다. 한마디로 매력적입니다. 이런 기업 문화는 회사 발전에 엄청난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벅셔해서웨이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한국과 아시아는 그만큼의 매력과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멍고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한국에 대한 간접 투자는 물론 기업 인수도 할 수 있음을 강하게 시사했다.)-이머징 마켓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는지요.“투자 프리미엄이 있습니다. 30~40%가량은 된다고 봅니다. 기회가 되면 중국과 브라질에 대한 투자를 늘릴 계획입니다.”-벅셔해서웨이가 이스라엘의 이스카를 인수키로 5월5일 발표했는데요. 첫 외국 기업 인수라 관심이 많습니다.“그렇습니다. 40억달러에 지분 80%를 인수키로 했습니다. 지금 평가는 어떨지 몰라도 앞으로 5~10년이 지난 후에 이스카의 인수가 벅셔해서웨이의 역사에 아주 중요한 계기였음이 증명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그동안 주로 미국 내 기업에만 투자해 왔는데요. 외국 기업을 인수키로 한 이유가 있습니까.“달러화 약세에 따른 위험 회피 수단으로 새로 찾아낸 것이 외국 기업 인수입니다. 달러화 약세 기조가 계속될 것으로 보는 마당에 수익원을 달러화 이외의 다른 통화로 다양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외국 기업을 인수하는데 더 많은 돈을 투자할 예정입니다.”-기업 인수에 돈을 투자한다고 했는데 얼마나 투자할 계획입니까.“현재 벅셔해서웨이는 430억달러의 현금을 갖고 있습니다. 이중 150억달러를 사용하려 합니다. 기업 인수가 잘 돼서 더 사용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조만간 가시적인 기업 인수가 이뤄질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인수 대상 기업은 어떤 기업인가요.“우리가 생각하는 조건과 가격만 맞으면 어느 기업이든지 인수할 수 있습니다. 12개 나라에 상당히 매력적인 기업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염두에 둔 특정 기업은 없습니다. 유틸리티 업종 기업이 좋다고는 생각합니다.” (멍고 부회장은 인수 조건으로 “부정이 있는 기업은 안된다”고 못 박았다.)-지역적으로는 어느 곳이 유망합니까.“가능성은 다 열려 있습니다. 영국과 유럽은 ‘비옥한 토양’과 같은 곳입니다. 내년부터 이곳에 대한 투자를 늘려 볼 생각입니다. 일본도 인수 가능 기업이 있는 나라입니다. 비록 성사가 되지는 않았지만 최근까지 인수 협상을 벌인 일본 기업도 있습니다.” (버핏과 멍고는 인수 대상 기업을 외국 기업이라고 못 박지는 않았지만 “미국에는 대박을 안겨 줄 기업이 별로 없다”고 말해 주로 외국 기업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했다.)-달러화 약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시는지요.“지난 2002년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무역 적자를 축소해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이 경고가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과도한 무역 적자는 인플레이션을 가져오는 등 큰 혼란을 야기할 것입니다. 지금부터 이에 대응해야 합니다.”(버핏은 지난 2002년부터 달러화 약세를 주장하면서 관련 상품에 대한 투자를 늘려왔다. 그러나 작년 달러화가 강세를 보임에 따라 10억달러의 손해를 봤다. 올해는 그의 ‘예언’대로 달러화가 약세로 돌아서 상당한 환 차익을 얻고 있다.)냉각되는 부동산시장과 투기화되는 상품시장-부동산 시장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부동산 시장은 서서히 냉각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달아올랐던 지역에서는 심각한 가격 조정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플로리다의 콘도미니엄 시장의 경우 가격 하락이 급속히 이뤄지고 있으며 매물도 많이 쌓이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지역에서도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앞으로 심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최근 상품 시장이 과열되고 있습니다. 금값은 온스당 700달러를 넘었는데요.“상품 시장에서는 투기가 이미 시작됐습니다. 구리 등 금속 가격과 원유 등 상품 가격은 처음엔 수급 상황을 반영해 올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투기 세력이 몰리면서 가격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자칫 이런 고리가 끊어질 경우 현재의 추세는 뒤집어질 수 있습니다. 일찍 빠져나오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므로 힘든 일입니다. 벅셔해서웨이는 상품 시장에 전혀 투자하지 않을 계획입니다.”-최근 주도 산업이 바뀌는 주기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중산층의 투자 전략은 어떤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지요.“주식 투자를 할 때는 단기 중기 장기로 나눠보는 게 바람직합니다. 그래서 안 된다 싶으면 하루라도 빨리 파는 게 낫죠. 그렇지만 경험상 장기 투자만큼 좋은 투자는 없습니다. 될만한 기업을 골라 한 20년 이상 투자하는 장기 투자가 바람직합니다. 그래서 증시가 3년 동안 문을 닫아도 전혀 불안해 하지 않고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투자가 즐거워집니다.”-단기 투자로 돈을 번 헤지 펀드나 사모 펀드의 인기가 대단한데요.“그들은 오로지 수익만 강조합니다. 수익이 뭡니까. 수수료의 다른 말 아닙니까. 오로지 수수료만 강조합니다. 따라서 일시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증시의 건강성 측면에선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벅셔해서웨의 주가가 제자리걸음이어서 주식을 빌려서 파는 이른바 ‘숏셀링(short-selling)’이 유리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습니다,“아,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재정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상당히 고통스러워 할 것입니다. 그것은 제 책임이 아닙니다.”(즉, 벅셔해서웨이의 주가가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란 표현이다.)-후계자에 대해 관심이 아주 많습니다만.“제가 죽거나 은퇴하면 1~2년은 주주들이 불안해 할 겁니다. 그러나 곧 지금처럼 무한한 신뢰를 갖게 될 것입니다. 벅셔해서웨이엔 그만한 기업 문화가 형성돼 있기 때문입니다.”-구체적으로 염두에 둔 사람이 있습니까.“회장과 최고경영자(CEO)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아들인 하워드 버핏을 무보수 비상임 회장직으로 선출해 줬으면 합니다. 그가 CEO를 도우며 벅셔해서웨이의 기업 문화를 보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전적으로 이사회 결정 사항입니다. 제가 죽은 뒤 후임 회장을 선출할 것이기 때문에 저는 회장 선출을 위한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워드는 지난 93년부터 벅셔해서웨이의 이사를 맡아 왔으나 사진작가와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는 등 업무엔 사실상 관여하지 않고 있다.)-CEO는 결정됐습니까.“이미 이사회에서 결정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밝힐 수 없습니다. CEO 밑에 일반 사업과 투자 업무를 나눠 이를 총괄하는 사람을 뒀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