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총수들의 건강관리 비법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요즘 한남동 자택에서 부쩍 러닝머신을 애용하고 있다. 물론 예전과 같은 신체 컨디션이 아니기 때문에 몸에 부담을 많이 주는 달리기는 하지 않는다. 그냥 걷는다. 러닝머신 위에서 1시간20분이나 연속해서 걷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다.이 회장은 원래 산책을 좋아하는 편이다. 한때는 남산 주변을 열심히 산책했고, 미국에서 치료받을 때도 휴스턴 병원 주변의 메모리얼 파크를 한 두 시간씩 걷는 것을 좋아했다. 예전에는 반신욕과 황제 다이어트로 건강관리를 했고, 스트레칭과 요가에도 재미를 붙였으나 최근에는 걷기에 비중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먹는 것도 기본적으로 소박한 편이다. 최근에는 전통 한식을 선호하는데, 특히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를 자주 즐기며 신 김치도 식단에서 빠지지 않는 편이다. 간식은 학창 시절의 추억이 담긴 소보로빵, 단팥빵, 크림빵 등을 즐겨 찾는 편이다.이 회장은 올해 65세를 맞았고 그동안 항암 치료 등 몇 차례 건강에 고비를 넘겼지만, 최근 들어 완연하게 건강이 회복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그룹 경영에도 보다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직업’이라는 기업체 최고경영자(CEO)는 어떻게 건강관리를 할까. CEO는 미래의 경영 전략을 구상하고 조직 관리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경영 실적에 대한 압박감은 크고 대외 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높다. 이렇게 CEO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게다가 과도한 술자리와 잦은 출장까지 겹치면 CEO는 녹초가 되기 쉽다.하지만 성공한 CEO들은 나름대로 철저하게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 기자가 만난 수백 명 CEO들의 공통점은 바로 10대를 연상시킬 정도로 탱탱한 얼굴 피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천성적으로 건강체질이기에 CEO 자리까지 올랐다고 할 수 있지만 ‘건강이 곧 실적’이라는 인식 때문에 철저한 건강관리를 해온 덕분이기도 하다.구본무 LG그룹 회장은 평소 특별한 건강관리 비법이 없다고 한다. 평일에는 걷기 운동을 통해 기초 체력을 유지하는 한편, 주말에는 골프를 비롯한 야외 운동을 즐긴다. 특히 시즌 중에는 LG그룹 소유의 곤지암 골프장에 주 2~3회를 나가는 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타고난 건강 체질이다. 그는 보통 회사에 오전 6시30분 이전에 출근해 곧장 임원회의를 개최한다. 주말엔 등산을 이따금씩 다닌다. 하지만 골프는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정 회장은 학창시절에도 럭비를 하는 등 타고난 건강 체질”이라며 “일찍 일어나고 식사 잘 하고 부지런히 다닌다는 기본 원칙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말했다.아들인 정의선 기아자동차 사장도 아버지를 닮아 타고난 강골에다 만능 스포츠맨이다. 정씨 집안의 전통을 따라 아침 일찍 일어나는 등 규칙적인 생활습관으로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40대 후반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선친인 고 최종현 회장이 즐겼던 심기신수련(心氣身修練)을 이어받았다. 최 회장은 거의 매일 아침마다 심기신수련을 통해 맑고 깨끗한 정신으로 일과를 시작한다고 한다. 최 회장은 만능 스포츠맨이기도 한데 특히 테니스를 좋아한다. 주말마다 테니스를 즐기는 그는 지금 아마추어 중에서는 국내 최고 수준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다만 골프는 별로 즐기지 않는 편이다.허창수 GS그룹 회장은 등산과 걷기를 좋아한다. 그는 점심 약속 때도 2km 이내의 거리는 반드시 걸어간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주말에 북한산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건강을 다진다. 골프는 별로 즐기지 않는다. 잦은 해외 출장에도 불구하고 병치레 한 번 하지 않을 정도로 체력이 강하다. 조 회장의 라이벌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역시 타고난 강골이다. 특유의 집념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 야구 탁구 농구 수영 등 운동이란 운동은 죄다 섭렵하며 체력을 키워왔고 연초에는 폭설과 혹한에도 불구하고 신입사원들과 등산을 강행해 체력을 과시하기도 했다.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은 노신영 전 국무총리를 비롯한 지인과 이따금 골프를 즐기는 정도이며 별도의 건강관리 비법은 없다고 한다. 다만 천성적인 부지런함이 팔순의 나이에도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그의 아들인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은 만능 스포츠맨이다. 젊었을 때는 스키광이었고 지금도 못하는 운동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골프는 늦게 배웠지만 상당한 장타로 알려져 있다.구자열 LS전선 부회장은 국내에서는 이례적으로 산악자전거를 10년 가까이 타고 있다. 과거에는 등산을 즐겼는데 산을 내려올 때 무릎 관절에 무리가 오자 산악자전거로 바꿨다. 웬만한 국내 산악자전거 코스는 이미 섭렵했고 해외 산악자전거 투어도 몇 차례나 참가했다. 서울 자택에서 안양공장까지 40km를 운동 삼아 자전거를 타고 가기도 했으며 어떤 날은 하루에 200km를 달린 적도 있다.오너와 비교해 더욱 단기 실적에 주력해야 하는 전문경영인은 건강관리가 더욱 필수적인 생존전략이다. ‘이건희 회장의 분신’이라고 불리는 이학수 삼성그룹 전략기획실 부회장은 출근하기 전 헬스클럽에서 1시간 정도 운동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저녁 약속시간 이전에 사우나를 찾아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들어가며 피로를 푼다. 주로 강남에 있는 리츠칼튼 호텔을 자주 찾는다.또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담당 사장은 학창시절부터 테니스 학교대표를 했을 정도로 각종 운동에 능하다. 요즘도 해외 출장을 다녀온 즉시 회사로 출근할 정도로 체력이 강하다. 반신욕과 골프도 즐긴다.이기태 삼성전자 휴대폰담당 사장은 특별한 운동보다는 음식 조절에 신경 쓰고 있다. 지난해부터 스스로 ‘먹는 양 10% 남기기 운동’을 벌여 두 달 새 체중이 7kg이나 줄었다고 한다. 집 근처에 있는 한강공원 산책도 그가 빠뜨리지 않고 하는 운동이다.김인 삼성SDS 사장은 ‘걷기’ 전문가다. 그는 출근할 때 테헤란로 삼성SDS 사옥 24층에 있는 사무실까지 걸어서 올라간다. 집(14층 아파트) 역시 쉽게 걸어서 올라간다. 그는 얼마 전 직원들에게 ‘걷기혁명 530-마사이족처럼 걸어라’와 ‘걷는 인간, 죽어도 안 걷는 인간’이란 책을 읽어보라고 나눠주기도 했다. 걷기 운동 덕분에 김 사장은 대학시절 체중인 65kg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오너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SK그룹의 전문경영인은 대부분 기(氣) 수련을 하고 있다. SK텔레콤 김신배 사장은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빠짐없이 회사에 일찍 출근해 심기신수련을 한다.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는 SK텔레콤 본사 지하 1층에는 대형 피트니스 센터가 있으며 이곳에서 헬스, 농구와 함께 심기신수련을 할 수 있다.평범하지만 가벼운 등산으로 건강을 챙기는 CEO도 많다.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포이동에 있는 자택 뒤의 구룡산에 가끔 올라간다. 구학서 신세계 부회장은 매일 새벽 5시면 일어나 집 근처에 있는 우면산을 등산한다. 그는 “비가 오는 날에도 꼭 산에 오르며 체력을 다진다”면서 “내 키가 170cm인데 몸무게를 69kg이 넘지 않도록 먹는 것을 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금융권 CEO의 건강관리 기법은 천차만별이다. 황영기 우리금융 회장은 아침식사로 과일과 채소를 갈아 넣은 생녹즙에다 요구르트와 우유 한 병을 넣어 한 사발 마시면 끝이다. 대신 ‘저녁은 알차게 먹자’는 주의다.신상훈 신한은행장은 달리기와 수영으로 건강을 다진다. 매일 아침 5시면 일어나 헬스장을 찾는 것이 30년째다. 그가 단축마라톤대회 등에 나서면 아직도 젊은 직원들이 따라잡기 벅찰 정도의 체력을 과시하고 있다.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격렬한 운동을 즐기는 CEO도 있다. 이승한 삼성테스코 사장은 61세의 나이지만 아직도 틈만 나면 샌드백을 두들기는 권투광이다. 이 사장은 또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이전에는 꼭 30분 정도 스트레칭 요가를 한다. 이 사장은 “일어나자마자 침대에서 내려오기 전에 해야 한다”면서 “스트레칭 요가를 하면 하루가 상큼하게 시작된다”고 말했다.재계에는 마라톤광도 많다. SK㈜ 신헌철 사장은 재계에서 이름난 ‘마라톤 경영인’이다. 그는 1998년 퇴행성관절염을 앓으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마라톤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마라톤 풀코스를 9번이나 완주했다. 신 사장은 “마라톤 35km 지점이 무척 힘들지만 뜻을 함께 한 사람들의 믿음을 생각하며 열심히 달린다”고 말했다.이 밖에 백발을 휘날리며 뛰는 민계식 현대중공업 부회장을 비롯해 최준근 한국HP 사장, 구자준 LIG손해보험 부회장 등도 모두 소문난 마라토너 CEO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