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은 한국 내에서 은퇴 이민지로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나라다. 한국과의 거리가 비행기로 3시간에 불과한 데다 기후가 따뜻하고 영어권 국가여서 의사소통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는 점이 필리핀을 찾게 하는 이유다. 그중에서도 바기오는 필리핀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곳이다.바기오는 1898년 미국이 필리핀을 점령한 후 당시 총독인 윌리엄 태프트가 해발 1500m 서늘한 고산지대에 건설한 도시다. 마닐라에서 250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인구는 25만 명이다. 버스로는 7시간 정도 소요된다. 미국 워싱턴DC를 설계한 대니얼 번햄을 데려와 도시를 설계했는데 그중 명물은 번햄 공원이다.바기오의 날씨는 연중 서늘한 편이며 가장 더울 때도 평균 섭씨 26도를 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필리핀 사람들이 신혼여행지로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혹서기에는 일부 필리핀 공공기관이 바기오로 이전해 와 업무를 처리해 ‘여름의 수도’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바기오는 한국의 봄과 가을에 가까운 날씨로 인해 소나무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다만 해발고도가 높아 시도 때도 없이 소나기가 내린다. 예측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소나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우기는 6월에서 8월까지 계속되며 이 기간에는 빨래를 말릴 수 없기 때문에 은퇴 이민을 떠나기 전에 전기용품을 구입하는 것이 필수다. 숙소를 선택할 때 우기에 잘 견딜 수 있는 집을 고르는 것도 중요한 선택 기준이다. 이 밖에도 바기오는 교육 환경이 뛰어나 한국에서 어학연수를 목적으로 많이 찾는다. 미군 휴양소로 지어진 캠프 잔헤이는 곳곳에 바비큐를 해 먹을 수 있는 야영장이 있으며 안으로 더 들어가면 18홀 규모의 골프장이 있다.하지만 바기오는 산악지형에 도시가 들어서 있어 도로 굴곡이 심하다. 이 때문에 평소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피하는 것이 좋다. 평지가 별로 없으므로 보행에 어려움을 겪는 노년층도 마찬가지다. 또 최근 인근 지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주택난과 공해가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한국인들이 바기오로 대거 몰려들면서 임대료가 작년에 비해 36% 이상 큰 폭으로 뛰었으며 도시가 작고 문화 사회 기반 시설이 수도인 마닐라에 비해 적어 심심하고 할 일이 별로 없다는 점도 단점이다.필리핀은 외국인의 토지 소유가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대부분의 한국인 은퇴 이민자들은 장기 임대로 주택을 마련하고 있다. 임대료는 대략 방 두 개짜리 집이 월 1만~1만5000페소(20만~30만 원) 정도, 방 세 개짜리 집은 1만5000~2만5000페소(30만~50만 원)다. 방이 네 개짜리인 집은 3만~6만 페소(60만~120만 원)다.마닐라에서 북쪽으로 차로 2시간 이내 거리에 있는 앙겔레스도 최근 주목받고 있다. 앙겔레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모사 골프장이 근처에 있어 한국에서 찾아오는 골프 여행객들이 많다. 우리나라와 직항로가 개설돼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현재 앙겔레스에는 한국 개발업자들이 한국인을 위한 은퇴 빌리지를 개발하고 있다. 물가는 수도인 마닐라에 비해 30% 정도 저렴하고 수도인 마닐라와 바기오보다 가까워 살기에 편하다. 이에 따라 최근 한국인 은퇴 이민자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하지만 도시 전체가 우리나라 시골처럼 작고 낙후돼 있으며 기후가 덥다는 점은 단점으로 지적된다. 또 주변에 문화시설이 부족하며 인근에 유흥가가 발달돼 있어 교육 환경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앙겔레스의 은퇴 이민자들은 대부분 안전한 고급 주택단지에 모여 살고 있다. 방 3~5개짜리 집의 임대료는 월 50만~90만 원이다.수도 마닐라에서는 퀘존이 단연 최고의 은퇴 이민지다. 퀘존은 마닐라시 북동쪽에 있는 교육특구로 마닐라국립대와 아테네오대 등 우수한 교육기관들이 대거 들어서 있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지역 중 하나로 한국 음식점, PC방, 여행사 등 한국 관련 편의시설들이 대거 밀집해 있다. 한국어학원이 많이 몰려 있어 어학연수생들이 많이 찾고 있다. 퀘존은 물가나 주택 임대료가 마닐라의 다른 지역보다 저렴하다. 방이 2개인 주택은 임대료가 월 25만~40만 원이며 방이 3개인 주택은 월 40만~60만 원이다. 고급 빌리지 내의 주택은 월 임대료가 60만~150만 원이지만 지역에 따라 편차가 심해 정확히 임대료를 추산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하지만 퀘존은 한국 은퇴 이민자들이 몰려들면서 최근 집값이 큰 폭으로 뛰고 있다. 또 필리핀 경제 중심지인 마카티에서 차로 1시간 떨어져 있고 마카티와 퀘존을 오가는 길은 하루 종일 교통 체증이 심하다. 퀘존 주변에는 필리핀 저소득층이 많이 살고 있어 범죄 발생률이 다른 지역에 비해 다소 높다.필리핀으로 은퇴 이민을 떠나기 위해서는 특별영주은퇴비자(SRRV)를 받는 게 유리하다. 이 비자는 35세 이상이어야 받을 수 있다. 은퇴 이민의 경우 보증금이 필요한데 △35~49세 7만5000달러(미국 달러 기준) △50세 이상 5만 달러 등이다. 은퇴청이 지정하는 은행에 6개월 이상 예치하는 조건이다.은퇴청이 지난달부터 예치금을 한시적으로 낮췄지만 내년부터 변경될 수 있다. 연 50만 원 정도를 내면 예치금을 찾아 쓸 수 있다. 2년 이내에 10만 달러 상당의 거주용 주택도 구입해야 한다. 은퇴 비자를 받은 후에는 3년마다 갱신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