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 나라의 말이든 그 속에는 고유한 민족성과 문화가 숨어 있다. 문화민족의 언어는 시대에 따라 아름답게 변천해 가지만 주체성이 약한 민족일수록 특성 없는 말들의 유행으로 정체성이 흔들리고 새것만 좇는 경향이 높다. 부부간의 호칭만 하더라도 ‘여보’와 ‘당신’처럼 우리의 전통적이고 정감 있는 애칭을 뒤로하고 요즘은 여름철 바이러스처럼 엉뚱하게 ‘자기’와 ‘오빠’가 유행하는가 하면, 심지어 ‘아빠’와 같은 해괴한 용어까지 난무해 듣는 이들을 놀라게 한다. 우리 고유의 아름답고 예의바른 말과 호칭들이 보호는커녕 특별한 이유도 없이 하나둘 사라져 가고 근원을 알 수 없는 엉뚱하고 해괴한 언어들이 안방 차지를 하려 드니 안타깝다.‘자기’의 사전적 의미는 ‘그 사람 자신’이란 말로 ‘나’ ‘제 몸’을 뜻하며 서로 별개인 개체다. ‘자기야’는 ‘너’라는 뉘앙스로 존중의 맛이 없다. 요즘 부부는 서로 ‘너나’하며 지내는 경향이 많은데 언뜻 친구처럼 다정하게 보일는지는 모르지만 가까울수록 더욱 예의를 지켜야 한다. ‘오빠’는 연애 시절에 오빠처럼 가깝게 부르던 습관일 터이고 아빠는 ‘아기 아빠’란 의미도 지니지만, 실상은 1960년대 말 유흥주점의 젊은 여자들이 아버지뻘 되는 나이 지긋한 남자 손님을 애교로 부른 데서 유래한 것이다. 말은 인격의 표현이다. 더욱이 혈육이 아닌 남편을 오빠나 아빠로 불러서는 안 된다.‘여보’와 ‘당신’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부부간 호칭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그냥 ‘부부 사이에 서로 상대편을 높여 부르는 호칭’ 정도로 풀이돼 있다.본래 부부는 호칭이 없어도 통했을 것이다. 부부란 일심동체이며, 즉 ‘한마음 한 몸’이기 때문에 부르는 말이 설령 따로 없더라도 단지 이쪽에서 부른다는 뜻만 알면 되니까 ‘여기 좀 보셔요’, ‘여기 좀 보오’ 뭐 이런 식의 말로서도 충분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오늘날 사용하는 ‘여보’라는 아름다운 말이 탄생했고 은근한 존중의 뜻도 품고 있다. 또한 ‘당신(當身)’이라는 말은 마땅할 당(當)자와 몸 신(身)자로, ‘바로 내 몸과 같다’는 뜻이니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를 한번쯤 불러보고 싶은 표현이다. 얼마나 근사한 부부간의 호칭인가?한편 어원의 정설은 아니지만 ‘여보’를 한자 ‘여보(如寶)’로 풀이하는 해석도 있다. 같을 여(如)자와 보배 보(寶), 즉 ‘보배와 같다’는 뜻이니 보배처럼 소중하고 귀중한 사람을 부를 때 쓰는 말이라는 주장이다.또한 당신(當身)도 앞서의 풀이처럼 마땅할 당(當)자와 몸 신(身)자로 언뜻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바로 내 몸과 같다’는 의미이니 어원의 정설 여부와 관계없이 따지기 싫어하는 현대인들의 감각에도 걸맞은 호칭으로 볼 수 있다.최근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급상승하는 것도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고 헌신하는 마음의 불균형과 ‘자기야’ 같은 하급 호칭이 판을 치고, 심지어 남편을 ‘오빠’나 ‘아빠’로 부르는 뒤죽박죽된 사조가 일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보’ ‘당신’이 ‘자기야’로 바뀌게 된 것은 무심히 받아들여지는 TV 연속극의 잘못된 영향도 있으리라고 본다. 또한 시대에 따라 새 말이 생성되고 소멸되기도 하는 등 말에도 역사성이 있음을 인정하지만 아무 하자도 없이 아름답고 의미도 고운, 전래된 우리의 말들이 유행이란 혼돈 속에 함몰돼 가는 해괴한 풍조와 세태는 곤란하다.하중호칼럼니스트한국투자자문 대표 역임성균관 유도회 중앙위원(현)www.cyworld.com/ke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