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현 현대해운 대표의 도서 나눔사랑

녕하세요. 저는 모스크바 한국학교에 다니는 4학년 최 바나바입니다. 몇 달 전 선생님께서 조만간 재밌는 책들이 3500여 권이나 온다는 소식을 알려주셨을 때 너무 기뻤답니다.(중략) 모스크바에서 가장 귀한 선물은 책입니다. 읽고 싶은 책이 있어도 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중략) 책 속에서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하나씩 익히면서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지난 7월 초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국학교에서 열린 도서 기증식에서 이 학교 최 바나바 양은 한국에서 날아든 책 선물에 대한 학생들의 감사의 뜻을 이렇게 발표했다. ‘동토의 땅’ 모스크바가 아직 낯설기만 한 최 양과 같은 한국 학생들에게 있어 책은 한국에서의 추억을 되새기는 유일한 통로다. 최 양의 발표를 듣는 현대해운 조명현 대표는 가슴이 벅찼다. ‘하늘에서 책이 수천 권씩 쏟아지는 꿈을 많이 꿨는데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며 기뻐하는 한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는 콧등이 찡해지기도 했다.“나눔 운동이라는 게 이래서 중독성이 있는 모양입니다. 우리 회사처럼 작은 기업에서 왜 쓸데없이 돈을 쓰느냐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나눔의 매력에 빠지면 그런 얘기는 귀에 전혀 안 들어옵니다.”그가 도서 기증 운동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대리점 설립을 협의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한 그는 우연히 현지 한국학교를 찾았다“우리나라 교육부의 인가를 받은 학교였는데도 도서관에 있는 우리나라 서적이 대부분 1970~80년대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읽기 어려운 세로쓰기로 되어 있는 문학 서적 일색이었습니다. 기업들이 보내오는 책들도 대부분 1980년대 제작된 것들이었습니다. 집에서 아무도 보지 않지만 버리기는 아까워 보낸 중고서적들로 도서관이 꽉 차 있었습니다.”고국의 발전상을 소개한 책도 88서울올림픽, 한강의 기적, 63빌딩의 신화 등 이미 한참 구문이 된 얘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자리에서 그는 현지 학교 관계자에게 고국에 돌아가는 대로 책을 기증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학교 관계자의 반응은 냉담했다.“고국에서 폐기 처분해야 할 책이라면 아예 보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몇몇 선생님은 ‘쓰레기 처리하는 데 돈만 든다’며 그동안 낡은 책을 기증해 온 기업들의 무성의한 태도를 질타했습니다.”한국으로 돌아온 뒤 그는 해외 한국학교 도서 기증 운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현대해운이 추진하고 있는 도서 기증 프로젝트는 수혜자 중심의 기증이 원칙이다. 다시 말해 학교 측에서 요청한 책을 보내 현지 활용도를 높이는 데 주안점을 두는 것이다. 기증 도서 구입 비용은 현대해운의 자체 사회공헌 기금과 아름다운 재단의 기금으로 마련된다. 이 프로젝트에서 현대해운은 배송 등을 담당하고 아름다운 가게는 요청 도서를 대형서점과 출판사들을 통해 구매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작년 6월 아르헨티나 한국학교에 도서 3800여 권을 기증한데 이어 11월에는 이집트 카이로 한국학교에 도서 2600여 권, 노트 1000여 권을 보냈다. 3차로 진행된 러시아 모스크바 한국학교에는 도서 3600여 권과 노트, 스케치북, 학습용 CD, 색종이 등 학습용 기자재가 제공됐다. 이번 기간에는 모스크바 한국학교 외에 근처 한민족 학교에도 일부 도서가 기증됐다. 모스크바 한국학교에까지 책이 전달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러시아는 자본주의 체제가 수립된 지 10여년 밖에 되지 않아 물류 배송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2개월 이상 통관 작업이 지체되면서 배송 비용은 1000만 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조 대표는 속이 타들어갔던 당시 심정을 이렇게 전한다.“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철도로 현지까지 가는 시간이 보름이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게 두 달 이상 지체되면서 ‘이러다 애써 마련한 책, 문구들이 물거품 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스크바는 7월 중순이면 긴 여름방학에 들어가는데 자칫 통관이 길어지면 방학 중에 책이 도착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죠.”현대해운이 보낸 책은 다행히 방학 직전에 도착했고 곧장 학생들에게 전달됐다. 한국으로부터 새 책이 도착하자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모스크바 한국학교는 방학 기간에도 도서관을 운영해 학생들이 언제든지 자유롭게 책을 열람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현대해운과 아름다운 가게의 도서 기증 프로젝트는 앞으로 계속할 예정이다. 대상학교는 한국 도서가 원활하게 공급되지 못하는 곳에 제공되는 것이 원칙이다. 올 하반기 중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한국학교에 책이 전달될 예정이며 이 밖에 필리핀, 중국, 중앙아시아 한인학교들에도 도서 기증을 추진하고 있다.이 밖에도 조 대표와 현대해운은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공영일류화 사회공헌 실천’을 4대 경영 방침의 하나로 정할 만큼 자부심이 대단하다. 현대해운은 이민, 이주를 떠나는 고객이 버리고 간 물품을 직접 수거해 아름다운 가게 재단에 기부하는 행사를 수년째 이어가고 있다.올해부터는 전 직원들이 개인 또는 사회봉사 기관에서 24시간씩 사회봉사를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필요한 경우 회사에서 유급 휴가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 직원 한 사람당 1년에 3일씩 휴가를 내 사회공헌 활동을 벌이도록 장려하고 있으며 회사 여직원회는 자폐아 시설인 라파엘 집과 자매결연하고 지속적인 봉사활동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일부 팀은 자체적으로 지난 4월 경북 점촌으로 농촌 봉사활동을 다녀왔다.“처음엔 나눔 봉사활동에 대해 임직원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왜 이런 것을 해야 하나’는 식이었죠. 그러나 직원들과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기업의 사회적 공헌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직원들 사이에 남을 도와야 한다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뿌리 내린 것 같습니다. 이제는 직원들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사회봉사 활동을 기획하고 있습니다.”이러한 사회공헌 활동 덕분에 현대해운은 한국서비스 대상을 3년 연속 수상했고 아름다운가게 재단의 뷰티풀 파트너로 선정됐으며 작년에는 전국자원봉사자대회에서 조 대표가 기업인 대표로 수상하기도 했다. “사회봉사는 결코 희생이 아닙니다. 제 바람이 있다면 직원들이 이 제도를 십분 활용해 사회에 대한 더욱 넓고 깊은 시각을 갖는 기회로 삼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곳을 스스로 찾아내고 봉사활동을 함으로써 업무에 있어서도 더 능동적이고 열정적으로 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모스크바=글 송창섭·사진 이승재 기자 realsong@money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