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숙 한국메사 대표

포화상태라는 한국 명품 시장, 수입업자도 소비자도 ‘숨은’ 명품 브랜드를 찾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속속 오픈하고 있는 백화점 편집 숍의 인기를 타고 ‘다크호스’ 명품 브랜드들이 앞 다퉈 국내에 진출하고 있는 상황. 정미숙 한국메사 대표는 피나이더(Pineider), 론카토(Roncato), 나바(NAVA) 등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들을 국내에 들여온 주인공. ‘유럽통’이라 불리는 그의 경쟁력이 궁금하다.


“일 중독기가 조금 있긴 해요. 외국에 있을 땐 여가시간에 여행을 참 많이 다녔는데, 한국에서는 그러기 쉽지 않기도 하지만 솔직히 가고 싶은 나라가 없어요. 워낙 많이 돌아다녔거든요.(웃음)”

정미숙 한국메사 대표는 사무실 가득 문구류와 잡화들을 꺼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벼르고(?) 있던 사람 같다. 그저 오른쪽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하자 그의 뜨거운(?) 설명이 시작됐다.

“피나이더는 24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명품이에요. 종이, 펜, 탁상시계부터 남·여성용 백까지 생산하는데, 나폴레옹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까지 썼던 브랜드죠. 론카토는 요즘 인기가 상당한 여행 가방인데 초경량임에도 놀라운 복원력을 자랑하는 제품이에요. 나바는 합리적인 가격대의 고품질 브랜드로 이탈리아에서는 ‘국민 브랜드’로 불릴 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현 한국메사 공동 대표서울여대 산업디자인과미국 필라델피아 섬유공과대 석사 스위스 벤즈 그래픽 AG 시스템 영업 & 교육 담당네덜란드 스톡 텍스타일 장비 영업 & 교육 담당스위스 위셔 텍스타일 영업 컨설턴트
현 한국메사 공동 대표서울여대 산업디자인과미국 필라델피아 섬유공과대 석사 스위스 벤즈 그래픽 AG 시스템 영업 & 교육 담당네덜란드 스톡 텍스타일 장비 영업 & 교육 담당스위스 위셔 텍스타일 영업 컨설턴트
몸을 사리지 않았던 ‘한국적 근면’

1999년 미국 시카고 메사연구소의 아시아센터로 문을 연 한국메사는 원래 아이들의 창의성과 적성검사 프로그램 개발, 영재교육 컨설팅이 전문인 회사다. 정 대표가 공동 대표로 한국메사에 합류한 것은 2006년. ‘한국메사’란 검색어로 자료를 찾아보면 적지 않은 기사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영재교육 컨설팅 분야에서도 그는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이끌어 왔다. 그런데 교육과 명품, 어째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웃음) 많은 분들이 그 질문을 하시는데, 사실 저는 섬유 관련 일을 오래 했던 사람이에요. 2006년 이 회사에 합류하기 전까진 유럽에서 16여 년간 섬유 장비와 시스템 세일즈를 했었거든요. 지금 수입하는 브랜드들은 유럽에 있을 때부터 눈여겨봤던 것들이죠. 피나이더는 ‘이탈리아의 에르메스’라고 불릴 정도로 유럽에서는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제품이에요. 언젠가는 저 브랜드들을 한국으로 들여가야지 했었죠.”

정말 ‘벼르고 벼르던’ 일인 모양이다. 서울여대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한 그가 ‘외국 물’을 먹기 시작한 것은 필라델피아 섬유공과대로 유학을 가면서다. 필라델피아 섬유공과대는 미국 3대 섬유 관련 명문대로 불리는 학교로, 그가 대학원 과정을 마쳤던 1993년 졸업생들에게 취업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고.

학교로 날아드는 기업들의 ‘러브콜’ 가운데 정 대표가 선택한 것은 스위스 취리히에 있던 ‘벤즈’라는 중소기업이었다. 섬유 관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전 세계로 수출하는 기업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해외 세일즈. 인도, 중국, 터키 등을 돌아다니며 발에 땀이 나도록 뛴 결과 1년 새 놀라운 실적을 쌓았다. 스물일곱 동양인 여성에게 업계가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1년 만에 네덜란드 회사인 스톡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들어왔어요. 벤즈 사장이 붙잡았을 때 그저 개인적 사정이라고 둘러댔는데, 극찬으로 가득한 추천서를 써주더라고요.(웃음) 스톡은 한국으로 치자면 삼성만큼, 어쩌면 더 큰 회사죠. 화학, 섬유, 항공 관련 4~5개 계열사가 있는 그룹으로, 저는 섬유 장비를 생산하는 계열사에서 애프터 세일즈(판매한 장비에 대한 관리와 교육) 업무를 담당했어요. 고객들이 주로 해외 기업이다 보니 유럽을 기반으로 전 세계를 또다시 돌아다니기 시작했죠.”

20대 후반에서 30대까지를 ‘그야말로 불태웠던’ 곳이 유럽이었다. 벤즈에서도, 스톡에서도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그는 스스로를 ‘민간 외교관’이라 생각하며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으로 악착같이 일했다. 판매한 기계에 문제가 발생하면 주말도 마다않고 고객을 찾아 문제점을 해결했다.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수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며 자기 자신을 현지화하는 데도 부지런을 떨었다. 미팅 날짜보다 며칠 일찍 도착해 백화점을 돌며 현지인들이 물건을 구입하는 습성, 간단한 회화를 미리 익혀두는 것은 기본. 본사보다 외국 출장으로 나가 있는 기간이 더 길었던 그는 1년, 2년, 4년마다 열리는 섬유 관련 전시회장과 세미나를 찾아다니며 잠재 고객들을 대상으로 ‘족보’ 같은 정보도 제공했다. 당장 손 안의 이익을 거둘 순 없어도 ‘미숙 정’과, 그가 일하는 회사에 대한 신뢰를 쌓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정미숙 대표의 최대 경쟁력은 유럽 비즈니스를 잘 알고 있는 ‘유럽통’이란 사실이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이탈리아 3개 브랜드 판권을 딸 수 있었던 것도 그 덕택이다.
정미숙 대표의 최대 경쟁력은 유럽 비즈니스를 잘 알고 있는 ‘유럽통’이란 사실이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이탈리아 3개 브랜드 판권을 딸 수 있었던 것도 그 덕택이다.
‘유럽통’ 장점 살려 이탈리아 명품 수입

“스톡 계열사에서 한국이나 아시아 출장이 잡히면 모두 저를 찾았어요. 미숙 정한테 연락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소문이 났거든요. 한국인들이 근면하잖습니까. 그런데 십수 년 출장으로 떠돌다 보니 지치더라고요. 시차를 극복하며 돌아다니는 게 중노동이거든요. 1년 동안 목소리가 거의 안나왔던 적도 있었죠. 나중엔 한국에서 어머니가 보내주신 홍삼에 의지하며 살았어요.(웃음)”

스톡에서의 마지막 직급은 아시아 에이전트 전체를 관리하는 아시아 총괄 본부장이었다. 적지 않은 연봉에 또한 적지 않은 권한을 부여받았지만, 지칠 대로 지친 심신에는 전환점이 필요했다. 일단 회사를 정리하고 한국행. 휴식이 간절했던 터라 쉬면서 할 일을 찾던 와중에 한국메사에 합류하게 됐다. 생소한 교육 분야로 업종을 전환했지만, 특유의 세일즈 파워와 고객 관리 노하우는 빛을 발했고, 결국 오랜 숙제 같았던 유럽 명품 수입에 착수했다.

“2010년 피나이더 수입을 필두로 지난해에 여행 가방으로 유명한 론카토를 들여왔고, 올 초에는 컨템퍼러리 잡화 브랜드 나바를 론칭했어요. 세 브랜드 모두 이탈리아산으로 한국 판권을 갖고 있죠. 유럽인들은 ‘판권’에 대한 개념이 없는 편이에요. 에이전트가 있으면 됐지 굳이 판권을 왜 주느냐는 식이죠. 하지만 유럽인의 생리와 문화에 익숙한 덕분에 계약을 성사시키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는지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기에 그 조건들을 만족시키는 데 주력했죠.”
20대 후반에서 30대까지를 ‘그야말로 불태웠던’ 곳이 유럽이었다. 벤즈에서도, 스톡에서도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그는 스스로를 ‘민간 외교관’이라 생각하며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으로 악착같이 일했다.
20대 후반에서 30대까지를 ‘그야말로 불태웠던’ 곳이 유럽이었다. 벤즈에서도, 스톡에서도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그는 스스로를 ‘민간 외교관’이라 생각하며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으로 악착같이 일했다.
3개 브랜드 모두 한국 시장에서는 ‘초유’의 명품이 가지는 희소성으로 백화점 편집 숍과 금융권의 러브콜을 꾸준히 받고 있다. 피나이더의 경우 100% 이탈리아 현지 장인의 손으로 제작되는 명품으로 펜, 여행용 탁상시계 등은 VIP 고객 선물용으로 금융권 기업들에 큰 호응을 얻고있다. 가볍고 견고하기로 유명한 여행 가방 론카토 역시 VIP 선물용으로 기업 고객이 많은 편. 론칭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나바 역시 100% 이탈리아산 제품으로 모던한 디자인과 실용성, 부담 없는 가격으로 실용성을 중요시하는 명품족들을 겨냥하고 있다.

“희소성 있는 고품질 명품 브랜드들이라 기업 고객은 증가하는 추세지만, 향후에는 오프라인 매장 유통을 확대하면서 브랜드 인지도를 올리는 게 관건이죠. 피나이더는 워낙 하이엔드 브랜드라 드라마 협찬 문의가 상당히 많은데 고사하고 있어요.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기 위함이죠.”

목전의 홍보 효과보다는 브랜드 가치를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최고경영자(CEO). 그런데 그에게 예상치 않게 ‘장기전’이 돼버린 일이 하나 있으니 바로 결혼이다. 그가 수입하는 명품도, 그 자신도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품절 사태’를 겪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 장헌주 기자 chj@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