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경영은 건강한 지배구조와 기업문화, 공정한 정책 등을 기반으로 한다. 성공한 가족기업의 이면에는 이렇게 가족과 기업 간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숨어 있다.
[Family Business Consulting] 능력 없는 장남 능력 있는 차남
중견기업의 박 모 회장은 승계를 앞두고 자녀 문제로 고민이 많다. 40대의 아들 셋이 다 같이 회사에서 일을 하는데 형제 사이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부터 사이가 안 좋았던 것은 아니다. 세 아들은 고등학교 때 미국에 유학을 가서 대학교를 마쳤는데 그 당시에는 사이가 무척 좋았었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 다른 기업에서 회사생활을 하다 하나 둘 가족기업에 들어와 일을 시작하면서 사이가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갈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처음 박 회장은 장남에게 승계를 하려고 많은 책임을 맡겼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둘째 아들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며 리더십을 발휘했기 때문에 박 회장의 마음이 둘째 아들에게로 기울면서 형제간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한 것이다. 두 형들 사이에서 셋째 아들도 눈치만 보며 불편한 회사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결혼 후 부인들까지 가세하면서 갈등은 더욱 증폭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회장은 아직도 자녀들의 역할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못하고 있다. 회사만 생각한다면 둘째 아들이 적격이지만, 가족의 서열이나 자녀 간의 관계를 본다면 장남이 큰 상처를 받을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문제만 키우고 있는 것이다. 아주 특별한 사례 같지만 사실 가족기업이라면 누구도 “우리는 문제 없다”라고 자신 있게 얘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해법은 무엇인가.


가족 문제는 가족의 관점으로, 기업 문제는 기업의 관점으로
가족기업이 일반 기업과 크게 다른 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경제적인 합리성을 추구하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돼 있다. 반면 가족기업은 가족과 기업이라는, 서로 목표와 니즈가 다른 두 개의 시스템이 연결돼 있다. 기업이 경제논리와 합리성을 중시한다면 가족은 가치와 전통, 가족구성원 간의 관계를 중시한다. 기업을 운영하는 가족들 간에 갈등이나 분쟁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를 들어, 가족 중 누군가가 기업에서 일하게 되면 그 사람은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역할을 맡게 된다. 집에서는 부모와 아들딸 관계이지만, 회사에서는 상사와 부하직원의 관계가 된다. 동일한 사람에게 상황에 따라 다른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족과 기업에서의 역할을 명확히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갈등은 이렇게 가족과 기업 간 경계가 모호해지는 데서 발생한다. 어떤 경우에는 회사에서 생긴 문제가 가족 문제로 확대되고, 반대로 가족들 사이의 감정적인 문제가 회사 일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즉 어느 한쪽에서든 문제가 생기면 다른 영역으로까지 갈등이 확대돼 결국 가족관계가 멀어지고 기업에도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자고로 원인에는 해법이 있는 법. 즉 가족 문제는 가족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고, 기업 문제는 기업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이와 관련해서 자주 인용되는 예화가 있다.

한 가족기업 오너의 아들이 회사에 입사했다. 그런데 그는 지각이 잦고, 일에 적응하지 못했으며, 흥미나 의욕도 없어 보였다. 당연히 다른 직원들에 비해 업무 능력이 떨어졌다. 어느 정도 지켜보던 아버지는 아들이 회사에서 일하겠다는 동기도 약하고, 회사 일이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하루는 아들을 따로 불러 점심 약속을 했다. 그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아들에게 진지하게 얘기를 꺼냈다. “나는 지금 너의 상관으로서 얘기하는 거다. 너의 상관으로서 오늘 너를 해고한다.” 그러고는 그동안의 급여를 정산해주었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풀이 죽어 있는 아들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는 다시 말했다. “네 아버지로서 네가 일자리를 잃었다니 너무 마음이 아프구나. 내가 너를 도와줄 일이 없겠니?” 그 시간 이후 아들은 회사를 정리하고 나왔다. 그리고 한 쇼핑몰에서 그동안 자신이 관심 있었던 사업을 시작해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에서 아버지의 도움이 컸다.

가족기업에서 대부분의 가족 갈등은 가족과 기업 간의 역할 전환을 못하거나 경계를 명확히 하지 않아서 발생한다. 그러므로 가족기업에서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가족과 기업의 경계를 구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건강한 가족과 건강한 기업을 만드는 토대가 된다.


중요한 건 가족과 기업 간의 균형
회사와 가족 문제가 한데 얽혀 있을 때 어떤 경영자는 가족을 우선하고, 어떤 경영자는 기업을 우선한다. 경영자의 가치와 경영 철학에 따라 대응 방식이 다르고, 그에 따른 의사결정 방식도 다르고 그 결과도 달라진다.

가족을 중시하는 오너경영자들은 자녀의 능력이나 기업에 대한 헌신 등은 크게 고려하지 않고, 원한다면 가족 누구라도 기업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한다. 후계자를 선정할 때도 자녀들의 능력보다는 성별이나 출생 순서 등을 기준으로 하고, 가족 간의 위계질서를 중시한다. 마치 기업이 가족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여긴다.

반대로 기업을 중시하는 오너경영자들은 가족이 기업에서 일하는 경우 채용이나 보상, 직급 등의 문제를 기업 정책에 엄격히 따른다. 후계자를 선정할 때도 출생 순서나 성별보다는 기업에 대한 헌신과 능력을 우선시한다. 그렇다면 가족과 기업 어느 쪽을 우선해야 하는가.

기업이나 가족, 어느 쪽에 우선순위를 두느냐보다는 가족과 기업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관건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양쪽에서 문제가 생겨서 더 복잡해진다. 그래서 장수가족기업들은 가족과 기업 간의 균형을 중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가 있으면 가족회의나 포럼을 열어 서로 의견을 나누고 합의를 도출한다. 가족회의는 갈등을 예방하고 가족들이 기업의 영속성에 헌신하도록 독려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또한 장수가족기업 대부분은 가족들이 함께 합의한 가족헌장이나 가족고용정책을 가지고 있다. 그에 따라 능력이 있는 자녀들을 기업에 참여시키며, 자녀에 대한 평가나 보상도 다른 직원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한다. 하지만 기업에 참여하지 않는 자녀들에게는 각자 재능이나 관심이 있는 분야에서 일하거나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잠재적인 반목의 씨앗을 처음부터 차단하는 것이다.


김선화 한국가족기업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