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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지중해를 누빈 갤리선
해양 패권 움켜쥔 갈레온
베네치아 운하의 갤리선.  한경DB

베네치아 운하의 갤리선. 한경DB

세계를 호령한 로마도 시작은 미약했다. BC 8세기 티베르 강변의 작은 도시국가로 출발해 2세기 거대 제국을 이루기까지 1000년간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가장 취약했던 것이 바다였다. 카르타고와 일전을 벌인 1차 포에니전쟁 전까지 로마는 놀랍게도 대형 전함이 한 척도 없었다.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하는 동안에는 바다로 나갈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껏 강에서 쓰는 소형 전함 20~30척이 전부였다. 그런 로마가 대형 전함이 절실해진 건 바다로 눈을 돌리면서부터다.

로마의 첫 타깃은 당시 서지중해의 강자 카르타고가 장악한 시칠리아섬이었다. 로마는 대형 전함 100척 규모의 함대를 계획했지만 건조 기술도 해전의 노하우도 없었다. 그런데 운이 따랐는지 BC 260년 로마로 표류해온 카르타고의 5단 갤리선을 나포해 이 배를 본떠 두 달 만에 갤리선 100척을 만들었다. 로마의 탁월한 모방 능력 덕이었다.

물론 배 모양은 형편없었고, 노 젓는 기술부터 배워야 했다. 해전 경험이 없던 로마 함대는 카르타고와의 첫 해전에서 비참하게 깨졌다. 심지어 사령관까지 포로로 잡혔다. 카르타고의 빠른 갤리선은 로마 갤리선에 바짝 붙어 지나갔다. 카르타고는 그렇게 로마 갤리선의 노를 부러뜨린 뒤 움직일 수 없게 만들고 옆구리를 들이받아 침몰시키는 전법을 썼다.

초기에 로마는 카르타고에 밀렸다. 그러나 로마인은 창의성과 실용성이 남다른 민족이었다. 정상 해전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보고 코르부스를 개발했다. 코르부스는 끝에 날카로운 송곳이 달린 긴 나무판자로 일종의 잔교(다리 모양의 구조물)였다. 로마군은 카르타고 갤리선 갑판에 코르부스를 내려박아 자신들의 배와 고정시킨 뒤 정예병이 이를 다리 삼아 타고 넘어가 백병전으로 제압했다. 코르부스로 해전을 육지 전투로 바꿔놓은 셈이다. 로마군은 이런 전술로 카르타고와의 해전에서 연이어 승리하며 시칠리아를 거쳐 북아프리카 카르타고로 진군했다. 카르타고의 갤리선을 모방한 것이 로마가 지중해 패권을 차지하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갤리선, 대항해시대 지중해 무역을 주름잡다
갤리선은 노와 돛으로 움직이며 폭이 좁고 길이가 긴 고대의 대형선박을 가리킨다. 돛이 달렸기에 범선의 일종이지만, 주된 운항 방법은 노 젓기였고 돛은 보조 수단이었다. 갤리선은 15세기 말 대항해시대까지도 여러 나라의 주력 함선으로 군림했다. 로마만큼 갤리선을 널리 활용한 것이 베네치아, 제노바 등 중세 이탈리아 도시국가다. 특히 베네치아는 국가 주도의 갤리선 선단 체제를 구축해 14~15세기 지중해 무역을 주름잡았다.

갤리선이 군함으로 마지막 역할을 한 것은 1571년 오스만제국과 맞붙은 레판토해전이다. 오스만 튀르크는 1453년 동로마제국의 마지막 보루인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시킨 뒤 지중해로 진출했다. 먼저 베네치아가 100년 가까이 지배해온 동지중해 무역의 요지 키프로스섬을 공격해 점령했다. 베네치아는 교황 비오 5세의 도움으로 스페인, 제노바와 연합함대를 이뤄 오스만제국에 맞섰다. 그리스 코린트만의 레판토 앞바다를 가득 메운 양측 갤리선이 치열한 공방을 벌인 끝에 승리는 연합함대에 돌아갔다. 연합함대의 피해가 13척에 그친 반면 오스만제국은 53척이 격침되었고, 사령관까지 전사했다.

레판토해전은 갤리선끼리 맞붙은 최후의 해전으로 기록되었다. 이미 15세기 들어 개량된 대형 범선들이 잇따라 등장해 대항해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의 ‘항해왕’ 엔히크 왕자는 선박, 지도 등의 전문가들을 불러 모아 카라벨선을 개발하고 아프리카 해안 탐사에 주력했다. 카라벨선은 여러 개의 돛대와 커다란 삼각돛을 단 범선이다. 카라벨은 아라비아의 전통 범선인 다우선을 모방했는데 속도가 빠르고 대포나 무거운 화물을 실을 수 있었다.
‘근육의 시대’에서 ‘바람의 시대’를 넘어
포르투갈의 경쟁자인 스페인은 카라크선을 개량해 16~18세기 해전의 강자인 ‘갈레온’을 탄생시켰다. 갈레온은 3~5개의 돛대와 삼각돛을 장착했고, 갑판이 여러 층인 대형 범선이다. 특히 길이가 카라크보다 길고 속도가 빠른 게 강점이었다. 1580년 포르투갈을 병합한 스페인의 펠리페 2세는 갈레온선 수백 척으로 구성된 무적함대의 위용을 자랑했다. 또한 1588년 무적함대를 제압한 영국 함대 역시 갈레온 선단이다. 스페인에 합병된 포르투갈의 선박기술자들이 대거 영국으로 이주해 헨리 8세 때 영국의 조선 기술을 빠르게 끌어올린 결과다.

고대와 중세 바다의 역사를 갤리선이 썼다면 15세기 이후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으로 이어진 근대 해양 패권은 갈레온의 성능과 항해술이 좌우했다. 범선의 개량과 화포의 발전으로 갤리선을 이용한 충돌이나 백병전은 무의미해졌다. 대신 속도와 대포의 화력이 해전의 승패를 갈랐다. 갈레온은 군함뿐 아니라 무역선으로도 널리 활용되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15~16세기 ‘갈레온 무역’ 시대를 열었다. 수십 척의 선단이 무역풍을 이용해 대양을 왕래하면서 식민지의 금과 은, 특산물을 실어 날랐다. 그러나 17세기에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등장하고, 영국과 프랑스가 가볍고 빠른 범선으로 대양에 진출하면서 바통을 넘기게 되었다.

범선의 시대는 1807년 미국의 로버트 풀턴이 증기선을 처음으로 띄우면서 급격히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후에 선체를 길고 날렵하게 만들어 속도를 더욱 높인 쾌속 범선이 증기선과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수에즈운하의 개통으로 범선의 효용성이 떨어졌다. 항해 거리가 단축되면서 증기선이 석탄 연료 대신 화물 적재 능력을 키워 단점을 보완했기 때문이다. ‘근육의 시대(갤리선)’에서 ‘바람의 시대(범선)’를 넘어 ‘화석연료의 시대(증기선)’로 넘어간 것이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NIE 포인트
① 서양에서 많은 사람과 화물을 싣고 멀리 이동할 수 있는 배를 보유한 국가가 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경제적 이유는 무엇일까.

② 서양의 대항해시대보다 70년 앞서 중국 명나라가 ‘정화의 7차례 원정’을 통해 아프리카까지 탐험하다 중단했는데, 명나라가 해외탐험을 계속했다면 세계 역사는 달라졌을까.

③ 현재 미국이 11척의 항공모함을 보유하고 중국이 올해 말 세 번째 항공모함을 진수할 예정이며 한국도 수직이착륙기를 싣는 경(輕)항공모함 보유를 추진 중인데, 현대에도 바다를 지배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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