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중단(낙태)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현행법으로는 금지하고 있지만 정상적인 부부 사이에서도 피임 실패 등 원치 않는 임신을 이유로 암암리에 낙태 수술이 이뤄지는 등 사실상 낙태죄가 사문화됐다는 주장도 있다. 국내에서 낙태는 한 해 30만 건, 세계적으로는 4500만 건이라는 추정도 있다. 낙태 문제를 바라볼 때 우선 검토해야 할 관점은 ‘생명’의 문제다. 인간 생명의 시작을 어느 순간으로 볼 것인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생명의 시작을 규정하는 다양한 학설

임신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한 뒤 엄마의 배 속에서 자라나 대략 수정 후 40주가 지나면 출산하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종교계 등은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시점을 생명의 시작으로 보는 ‘수정설’을 주장한다. ‘잉태설’은 수정란이 엄마의 자궁에 착상한 시점부터 생명으로 보는 것으로 수정 후 대략 1주에서 2주 뒤다. 시험관에서 수정을 하더라도 착상하지 않으면 인간으로 자라나지 못한다는 점이 근거다. ‘기관형성설’은 태아의 뇌와 심장 등 주요 기관이 형성되는 임신 8주 정도를 기점으로 하는 견해다. 초음파를 통해 심장박동 등 태아가 정상적으로 생존하고 있는지를 의학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최초의 시점이다. ‘뇌파설’은 11~12주 정도면 검출되는 뇌파를 기점으로 삼자는 논리다. 인간의 사망 시점을 뇌사로 정하자는 최근 의학계 주장을 감안해 이때를 생명의 시작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체외 생존설’은 태아가 산모의 모체 밖에서 생존이 가능한 시기부터를 생명의 시작으로 보는 관점이다. ‘칠삭둥이’ 등 조기에 엄마의 배 속에서 나와 인큐베이터 등에서 집중치료를 받는 경우로 예전에는 수정 후 28주(6개월) 이상이었지만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20~24주 이상이면 가능하다. 출생설은 10개월의 임신기간을 마치고 태어난 이후부터를 생명의 시작으로 보는 관점으로 대략 37~41주 정도로 규정된다.

고대부터 계속된 논쟁

낙태 논란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있었다.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복중의 태아’를 가진 임신부에게 극약을 주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만들었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에서 태아가 출생 이전부터 생명을 갖는다고 믿었지만 사회와 가족의 복지가 태아의 생명권보다 중요하다고 봤고,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구가 과도할 경우 낙태를 인구조절 수단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스의 뒤를 이은 로마시대에는 태아를 인간으로 간주하지 않았고 낙태는 물론 영아 살해도 드물지 않게 이뤄졌다.

기독교가 전파되고 로마에서 공인된 이후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기독교의 생명존중 논리가 받아들여져 아버지가 자녀를 죽이는 것이 불법이 됐고 낙태 또한 살인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루터, 칼뱅 등 신학자들이 낙태를 죄악으로 간주했고 이는 종교가 지배하던 중세를 넘어 근세, 현대까지도 낙태 반대 전통의 뿌리가 됐다.

낙태가 여성의 자율적 선택이라는 주장은 1960년대에서야 본격화하고 미국 연방대법원이 1973년 내린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은 반전의 계기가 됐다. 두 여성 변호사가 제인 로(가명)라는 여성을 대신해 헨리 웨이드 지방검사가 속한 텍사스 주정부를 상대로 위헌소송을 제기했고, 대법관 7 대 2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이 났다. 이후에는 임신 28주(6개월)까지 낙태가 허용됐지만 서양에서도 여전히 찬반 논란은 뜨겁다.

찬반 논란을 끝낼 수 있을까

한국에서는 1953년 형법이 제정된 이후 줄곧 낙태죄를 처벌하도록 규정해왔다. 위헌소송이 제기된 2012년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처벌 조항이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재판관 4 대 4로 의견이 팽팽했지만, 태아에게도 생명권이 인정돼야 하고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게 임신부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으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그러나 헌재는 지난해 재판관 7 대 2 의견으로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처벌하도록 한 것은 임신부의 자기 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해 헌법에 위배된다는 근거에서다. 헌재는 임신 22주 정도까지 낙태가 허용돼야 한다는 뜻을 밝혔는데, 그 기간까지는 생명이 아니라고 본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번에 정부가 제시한 개정안에서 자유롭게 낙태를 허용하는 14주는 태아가 사고를 하거나 자아를 인식할 수 없는 기간이라는 국내외 연구가 반영됐다. ‘뇌파설’과 비슷한 입장이다. 또한 일정 요건 하에 낙태가 허용되는 24주는 ‘체외 생존설’과 같은 맥락이다. 정부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조화를 이루도록 개정안을 마련했다지만 우리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공감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정태웅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redael@hankyung.com

NIE 포인트

① 생명의 시작을 정자와 난자의 수정, 수정란의 자궁 착상, 심장과 뇌 등 주요 기관의 형성, 사고기능으로 추정되는 뇌파의 측정시점, 조산(早産) 이후 생존, 임신 10개월 만의 출생 가운데 언제부터로 봐야 할까.

② 한국 사회의 발전 정도나 인구 감소 우려, 인간 권리의 보호 등 여러 여건을 감안한 현재 시점에서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가운데 어느 쪽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할까.

③ ‘사회경제적 요건’으로 낙태가 허용된다면 어려운 가정형편을 이유로 아기를 버리거나 양육을 포기 혹은 방관하는 것도 인정돼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