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도 너무 센` 6·17 대책…부동산 이탈자금, 증시 유입되나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허…’. 1년 전 청와대 회의실에서 종이 한 장을 받아들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던 한숨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보고한 ‘2050년 한국 인구 피라미드’의 골자는 이렇다. 2050년에는 65세 이상 노인은 39.8%, 14세 이하 유소년은 8.9%를 차지하는 역피라미드 구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인구 절벽’과 ‘인구 재앙’을 예고했던 보고서다.

생산함수(Y=f(K,L,A), K=자본, L=노동, f( )는 함수형태)에서 보듯이 인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가장 크다. 소비함수와 투입산출(I/O)표를 통해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소비지출, 생산유발액, 부가 가치액, 고용창출 규모 등을 모두 산출할 수 있다. ‘앞으로 어떤 유망산업이 떠오를 것인가’ 추정도 가능하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부동산 가격을 예상하는 인구통계학적 이론이다. 5년 전 ‘한국 부동산(특히 강남) 시장이 인구 절벽에 따라 장기침체에 접어들 것’이라는 예상했던 해리 덴트의 「인구 절벽(The Demographic Cliff))」이 대표적이다. 같은 해말 5대 시중은행장의 강남 집값 15% 폭락 예측도 같은 근거에서다.
`세도 너무 센` 6·17 대책…부동산 이탈자금, 증시 유입되나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그림 1> 한국의 인구구조 변화

결과는 두 예측 모두 틀렸다. 금융위기 이전까지 부동산 시장 예측에 관한 한 정확하다고 평가받던 해리 덴트는 2010년을 기점으로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할 경우 미국 부동산 시장과 경기는 장기 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베이비붐 세대는 은퇴 비용을 충당할 재원이 충분치 않아 보유 부동산을 처분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역(逆)자산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주가가 경기에 1년 정도 앞서 간다면 2009년은 포트폴리오와 자산분배 전략을 크게 수정해야 할 중요한 해로 지목했다. 2010년 이후 미국 경기가 장기 침체에 들어가면 직전 해에는 그 때까지 보유한 주식을 모두 처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미국 경기와 주가는 회복되기 시작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 직전까지 전후 최장의 호황 국면과 강세장을 구가했다.

미국보다 은퇴 후 삶의 수단으로 주식보유 비율이 적은 한국으로서는 인구통계학적 이론이 최소한 자가 소유(특히 아파트) 시장을 예측하는데 유용한 것으로 평가돼 왔다. 1960년대 이후 이명박 정부 출범 2년까지 세대가 지날수록 자산 계층이 두텁게 형성됨에 따라 아파트 가격이 한 단계씩 뛰었다.

그 이후 박근혜 정부 출범 2년 때까지 4년 동안 부동산 시장이 침체 국면에 빠졌다. 때맞쳐 해리 덴트의 인구 절벽이 발간돼 큰 인기를 끌었다. 예측기관과 부동산 전문가의 비관론도 쏟아져 나왔다. 네트워킹 효과와 심리적 요인이 겹쳐 국민들 사이에는 ‘이러다간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자 곧바로 부동산 가격을 띄워 경기회복을 모색하는 ‘초이노믹스’가 발표됐다.

당시 비관론의 근거는 하나같이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출산율이 낮고 고령화 속도가 빨라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 자산 계층이 받쳐줄 가능성이 낮다“고 본 점이다. 특히 핵심자산계층인 45∼49세가 은퇴하기 시작하는 2018년 이후 한국 부동산 시장과 경기는 장기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예상이 해리 덴트가 쓴 ‘인구 절벽’의 핵심이다.
`세도 너무 센` 6·17 대책…부동산 이탈자금, 증시 유입되나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해리 텐트의 주장은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관할대상이 바뀐 점을 무시한 결정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인구통계학적 이론이 맞으려면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의지대로 통화정책 관할대상에 자산시장이 포함되지 말아야 한다(그린스펀 독트린).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에는 밴 버냉키 전 Fed 의장의 주장대로 자산시장을 포함시켜 통화정책을 운용해 오고 있다(버냉키 독트린).

버냉키 독트린대로 통화정책을 운용할 경우 인구통계학적 이론에 따라 부동산과 같은 실물투자 수익률이 낮게 예상되더라도 금융차입 비용이 빨리 올라가는 것을 막을 경우 거품 붕괴를 막을 수 있다. 각국 중앙은행이 출구전략을 미루거나 작년 7월 이후 Fed가 금리인하를 재추진하는 이유다. 한국은행도 금리를 내렸다.

아직도 한국 부동산 시장이 장기 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보는 예측기관과 부동산 전문가는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수도권(특히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강한 대책만을 중심으로 숨 가쁘게 내놓고 있다. 효과가 있기보다 집값은 못 잡고 풍선 효과가 커지자 6.17 대책에서는 마침내 잠실, 삼성, 대치, 청담을 대상으로 주택거래 허가제까지 도입됐다. 사유재산권 침해 우려까지 제기되는 강도 있는 대책이다.

과연 이번 대책으로 강남을 비롯한 수도권 집값을 잡을 수 있을까? 그 답은 작년 이후 세계 주요 도시 집값이 집하는 이유에 있다. 런던, 베를린, 시드니, 밴쿠버, 토론토, 뉴욕, 로스엔젤래스, 상하이 등 끝이 없이 오를 것으로 보였던 세계 주요 도시 집값(연간 누적 변동률 기준)의 상승세가 작년부터 꺾이기 시작했다.

세계 주요 도시 집값이 안정되고 있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집값이 안정되기 시작한 도시와 여전히 불안한 도시 모두가 해당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있어서는 커다란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앞으로도 각국 중앙은행은 출구전략을 쉽게 추진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집값 안정대책을 추진한 국가보다 시장에 맡겨 놓은 국가일수록 해당국 도시 집값이 안정되고 있는 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금융위기 이후 부채 경감 신드롬이 팽배한 부동산 시장에서는 도시 집값일수록 ‘편향적 순응성(biased procyclicality·오를 때 더 오르고 내릴 때 덜 내리는 현상)’이 심하게 나타났다. 이런 여건에서 주식, 부동산 등 자산 가격 결정을 잘 설명하는 것이 조지 소로스의 자기 암시 가설이다.

워런 버핏이 가장 신뢰한다고 해서 ‘소로스·버핏 가설’로도 불리는 이 이론의 핵심 내용은 이렇다. 어떤 국가의 경기가 침체에 빠지면 이때 주식,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은 실제 경제여건보다 더 낮게 형성된다. 경기 침체로 투자자 심리가 `비관` 쪽으로 쏠리면서 보유 자산을 대거 내다팔기 때문이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투자자 사이에 경기가 개선되고 있다는 견해가 나오기 시작한다. 투자 심리도 점차 `낙관` 쪽으로 옮겨오면서 자산 가격 상승속도가 경제여건 개선속도보다 빨라지는 1차 소상승기를 맞는다. 이 추세가 지속되면 자산 가격 상승세에 대한 의문이 생기면서 ‘낙관’ 쪽으로 몰렸던 투자자의 쏠림 현상이 흐트러져 1차 조정국면을 맞게 된다.

이때 경기가 뒤따라오느냐가 중요하다. 경기가 받쳐주면 투자자 심리가 재차 ‘낙관’ 쪽으로 쏠리면서 자산 가격은 2차 대상승기를 맞는다. 한동안 ‘낙관’ 쪽으로 쏠렸던 투자자 심리가 어느 순간 거품 우려가 높아지면서 재조정 국면을 맞는다. 이때 경기가 받쳐주면 3차 소상승기에 들어가지만 악화되면 경제 여건보다 더 떨어지는 과잉조정 국면을 맞게 된다.

소로스 가설에 따라 서울을 제외한 세계 주요 도시 집값의 현 위치를 판단하면 2차 조정국면에 해당한다. 앞으로 경기가 반등하고 금융완화 정책이 지속될 경우 3차 소상승기에 접어들 수 있어 아직까지 추세적으로 안정됐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강력한 규제에도 집값이 오르는 서울과 달리 시장에 맡겨 두더라도 집값은 안정된다는 점이다.

둘째, 집값 안정대책을 내놓더라도 부동산 시장을 직접 규제하기보다는 풍부한 자금의 통로를 마련해준 국가일수록 해당국 도시 집값이 안정적이다. 금융위기 이후 주가 상승률과 도시 집값 상승률 간 상관계수가 낮게 나온다. 자금이 증시로 유입될수록 도시 집값은 안정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해외자산투자를 권장한 국가도 마찬가지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증시로 자금의 통로를 마련할수록 경기도 안정적이라는 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창의성·모험성·투자성 자금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성장여건에서는 증시가 활성화돼야 주력 산업(혹은 기업)의 신진대사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이 확충되기 때문이다.
`세도 너무 센` 6·17 대책…부동산 이탈자금, 증시 유입되나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셋째, 집값 대책도 ‘가격’보다 ‘수급’, 수급 대책도 ‘수요 억제’보다 ‘공급 확대’에 초점을 맞춘 국가일수록 도시 집값이 안정되고 그 폭도 크다는 점이다. 같은 도시라 하더라도 수요가 많은 곳, 즉 서울의 경우 강남에 공급을 늘리는 ‘수요 타켓식 공급’ 정책이 도시 집값이 안정되는데 효과적이다. 우리처럼 강남 수요 대체식 뉴타운 개발을 통한 공급 확대 정책은 도시 집값 안정보다 더 불안하게 할 수 있다.

부동산 시장은 다른 자산시장과 달리 그 나라 국민의 성향, 인구 구조 등 독특한 속성을 갖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세계 주요 도시 집값이 잡히는 요인이 우리 부동산 대책의 모범답안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집값 결정에 가장 독특하다는 ‘인구통계학적 이론’도 미국 와튼 스쿨의 제라미 세겔 교수가 주장한 ‘글로벌 해법’에 의해 무력화되고 있다.

‘한국의 경제정책은 부동산 정책뿐이 없다’라는 혹평을 들을 정도로 강남 등을 비롯한 수도권 집값을 잡기 위해 애쓰는 한국 경제 각료에게 좋은 대안이 됐으면 한다. 강남 등 수도권 집값이 잡혀야 부동산 이탈자금이 증시로 유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
`세도 너무 센` 6·17 대책…부동산 이탈자금, 증시 유입되나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한국경제TV 핫뉴스




ⓒ 한국경제TV,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