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원 임금 오를 때 '울타리 밖 근로자'는 일자리 잃어
영화 ‘아이리시맨’ 속 국제트럭운전사조합(IBT) 노조위원장 지미 호파(알 파치노 분)는 자신이 대기업과 정부를 상대로 미국 트럭 운전사들의 임금과 고용을 지켜내고 있다고 여러 차례 자랑한다. 그렇다면 그런 노력의 가장 큰 피해자는 누구일까. 경제학은 그 답이 다른 직종의 근로자들이라고 이야기한다.

노조가 혜택 볼 때 비노조원은 일자리 잃어

노조원 임금 오를 때 '울타리 밖 근로자'는 일자리 잃어
노조가 소속 근로자의 임금을 끌어올릴 경우, 노조원(내부자)은 상승한 임금의 혜택을 누리지만, 전체적으로 노동수요는 감소한다. 노동수요 감소는 거꾸로 실업 증가를 뜻하는데, 일자리를 잃게 된 사람은 대부분 노조 울타리 밖에 있는 비노조 근로자(외부자)들이다.

여기서 일자리를 잃은 비노조 근로자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다. 실업 상태를 유지하면서 언젠가 노조가 존재하는 직종에 채용돼 자신도 ‘노조 프리미엄’을 누리기를 기다리거나, 노동조합이 형성되지 않은 직종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전자를 대기 실업자, 후자를 파급효과라고 부른다. 노동조합이 형성되지 않은 부문에는 노동공급이 확대됐기 때문에 임금 수준을 보호할 노동조합이 없는 기존 근로자들은 덩달아 임금이 하락한다.

일반적으로 시장 참여자가 상품의 가격을 높이기 위해 담합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하지만 노동조합은 사실상 예외를 인정받고 있다. 노조끼리 연합해 임금 인상을 담합하는 행위는 사적 활동으로 묵인된다. 고용주에 비해 노동조합은 상대적인 약자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조는 정치세력화를 통해 고용주보다 훨씬 더 큰 힘을 갖게 되기도 한다.

강성 노조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심화시키는 한국

노조원 임금 오를 때 '울타리 밖 근로자'는 일자리 잃어
노조의 과도한 권력화는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10%대에 불과하고 고용 형태와 기업 규모에 따른 임금 격차가 큰 한국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2010년 9.8%로 바닥을 친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조금씩 오르는 추세다. 2018년에는 전년 대비 1.1%포인트나 올라 11.8%를 기록했다. 문재인 정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운 것도 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노조에 가입한 근로자는 2017년 말 200만 명을 넘어 1965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조합원의 87%는 직원 300명 이상 대규모 사업체에 있다.

지난해 6~8월 정규직 근로자와 비정규직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각각 316만5000원과 172만9000원이다. 차이는 2018년 136만5000원에서 지난해 143만6000원으로 사상 최대 수준(금액 기준)으로 벌어졌다. 통계청이 관련 통계를 처음 낸 2004년만 해도 정규직(176만9000원)과 비정규직(115만3000원) 간 임금 격차는 61만6000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후 정규직 급여가 상대적으로 높게 뛰면서 해를 거듭할수록 격차는 더 벌어졌다. 이런 추세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계속됐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월평균 임금 비율은 2017년 55.03%에서 2018년 54.64%, 지난해 54.63%로 2년 연속 하락했다. 전체 근로자의 10% 남짓에 불과한 노조의 권력화를 제한하고 고용 유연화를 이뤄야 나머지 90%와의 임금 격차가 사라질 것이란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 제조업 몰락 초래한 노조 권력

미국 거대 노조의 활동은 미국 제조업 몰락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그 중심에는 디트로이트가 있다. 영화 ‘아이리시맨’에서 호파의 최대 지지 기반도 디트로이트로 묘사된다. 한때 디트로이트는 미국에서 네 번째로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미국 자동차산업의 수도였다. 전미자동차노조(UAW)는 1930년대 디트로이트에서 탄생해 자동차산업 특유의 고임금 구조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미국 자동차산업의 호시절에 이런 고임금 구조는 미국의 탄탄한 중산층을 떠받치는 기반이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을 필두로 자동차산업의 글로벌 경쟁자들이 나타나자 미국 자동차산업의 고임금 구조는 더이상 버티기 힘들었다. 가격 경쟁력에서 밀린 미국 자동차산업과 디트로이트는 수십 년에 걸친 몰락을 이어갔다. 2013년, 디트로이트시는 파산보호 신청을 하게 된다.

3시간 반의 러닝타임 끝에 카메라는 21세기의 프랭크 시런(로버트 드니로 분)을 비춘다. 그는 어느 요양원에 입원해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네 명의 딸은 누구도 프랭크를 찾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가족과 조직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폭력으로 지켜낸 가족과 조직은 모두 허무하게 무너졌다.

미국 제조업의 부흥기에 부상해 자본주의 역사상 유례없는 권력을 자랑하던 미국의 노동조합들은 제조업과 함께 몰락했다. 1983년 20.1%에 달하던 미국 근로자의 노동조합 가입률은 지난해 기준 10.3%까지 떨어졌다. 민간기업 근로자의 가입률은 6.2%에 불과하다.

전범진 한국경제신문 기자 forward@hankyung.com

NIE 포인트

① 상품 가격을 높이기 위해 담합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노동조합이 예외적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② 고임금 구조로 쇠락한 미국 제조업과 노조 스스로 임금 인상을 자제하며 지속성장 중인 일본 자동차산업 간 차이는 왜 발생할까.
③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가 큰 한국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완화할 방법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