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씨 별세.’ 이태 전 이즈음, 한복의 아름다움을 세계 무대에 알린 이영희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언론에선 부고를 전하면서 일제히 그를 ‘세계적 한복 디자이너’로 소개했다. 그는 디자이너이면서 동시에 한복 제작자이자 경영자이기도 했다. 이를 두루 나타내는 우리말은 ‘한복장이’이다. 타계하기 전 한국경제신문 칼럼을 쓰면서 그는 스스로를 ‘한복장이’라고 불렀다.

기술자에겐 ‘-장이’ , 그 외엔 ‘-쟁이’를 써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한복장이’는 자칫 ‘한복쟁이’로 쓰기 십상이다. 어떤 게 맞는 말일까? 답부터 말하면 두 개는 서로 다른 말이다. 한복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은 ‘한복장이’, 단순히 한복 입은 사람을 가리킨다면 ‘한복쟁이’라고 한다.

이런 구별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지난호에서 살핀 ‘아지랑이’에 그 실마리가 있다. ‘아지랑이’에는 우리말 발음과 표기법을 이해하는 중요한 원칙 하나가 담겨 있다. ‘가재미, 무지랭이, 쓰르래미, 애비, 에미, 싸래기, 냄비, 동댕이치다,’ 이들 중에서 바른 말은 ‘냄비’와 ‘동댕이치다’이고 나머지는 틀린 표기다.

예시한 단어들은 모두 ‘이’모음 역행동화(전설모음화, 움라우트라고도 한다) 현상을 보이는 말이다. 이는 간단히 말하면 뒤에 있는 ‘이’모음의 영향을 받아 앞 음절 발음에 ‘이’음이 첨가돼 나오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말에서 ‘이’모음 역행동화는 전국적으로 매우 일반화된 현상이다. 하지만 ‘표준어 규정’에서는 그것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제9항). 이 동화 현상이 너무 광범위해 죄다 표준어로 인정하면 지나치게 큰 변화라 오히려 언어생활에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주의해서 발음하면 피할 수 있는 것들이란 점도 고려됐다. 가령 ‘무지렁이’를 자칫 무지랭이 또는 무지렝이로 쓰기도 하지만 더 많은 이들이 ‘무지렁이’로 인식하고 있다고 판단해 동화형을 표준어로 삼지 않았다. 앞에 예시한 말도 모두 ‘가자미, 쓰르라미, 아비, 어미, 싸라기’가 바른 표기다. 다만 ‘-내기, 냄비, 동댕이치다’ 등 일부는 예외로 역행동화 형태를 인정했다. 어원 의식이 흐려진 채 변한 형태로 굳어진 말이라고 본 것이다.

‘점쟁이’는 수공업적 기술자로 보지 않아

‘서울나기/서울내기, 신출나기/신출내기, 여간나기/여간내기’가 헷갈릴 때 ‘-내기’로 통일했음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은 ‘-나기’가 어원이지만 보통내기, 풋내기, 시골내기 등처럼 일률적으로 ‘-내기’를 표준으로 삼았다.

‘-장이’와 ‘-쟁이’가 붙는 말도 워낙 광범위하고 다양해 적용에 애를 먹곤 한다. 현행 표준어 규정에서는 이 구별을 비교적 명쾌하게 정해놨다. 기술자에게는 ‘-장이’, 그 외에는 ‘이’모음 역행동화 형태인 ‘-쟁이’를 표준어로 삼았다. 이때 기술자란 ‘수공업적인 기술자’를 뜻한다. 따라서 ‘한복장이’를 비롯해 ‘양복장이, 간판장이, 구두장이, 칠장이, 미장이, 대장장이, 땜장이’라고 한다. 이 ‘-장이’는 어원적으로 ‘장(匠)+이’로 분석된다. 匠이 장인(匠人: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뜻한다는 점을 알아두면 이해하기 쉽다.

그 외에는 모두 ‘-쟁이’다. ‘멋쟁이, 골목쟁이, 중매쟁이, 봉급쟁이, 안경쟁이, 겁쟁이, 난쟁이, 빚쟁이, 요술쟁이’ 등이 그 예다. ‘점쟁이, 침쟁이, 환쟁이, 글쟁이, 광고쟁이, 신문쟁이’ 등도 수공업적 기술자로 보지 않으므로 ‘-쟁이’로 적는다는 것을 함께 알아두면 좋다.

이런 기준에 따르면 고 이영희 선생을 ‘한복장이’라 할지, ‘한복쟁이’라 부를지를 어렵지 않게 가릴 수 있을 것이다.

‘서울나기/서울내기, 신출나기/신출내기, 여간나기/여간내기’가 헷갈릴 때 ‘-내기’로 통일했음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은 ‘-나기’가 어원이지만 보통내기, 풋내기, 시골내기 등처럼 일률적으로 ‘-내기’를 표준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