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장염인데 폐렴 징후 보인 환자, 12시간 지나 수술…의료진 `딜레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촌각을 다투는 일선 의료현장이 `의심 환자 딜레마`에 봉착했다.

긴급 수술을 필요로하는 코로나19 의심 환자가 있어도 대처 방식을 두고 의견이 갈려 자칫 환자가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런 까닭에 코로나19 검사 후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발생할 수 있는 의료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대책을 방역 당국이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방역 당국에 따르면 지난 19일 오전 11시께 60대 남성 A씨가 극심한 복통을 호소하며 경북 한 병원을 찾았다. A씨는 설사 증세도 보였다.

병원 측은 접수 과정에서 A씨가 코로나19 확진자 밀접 접촉자로 자가격리 중이란 사실을 파악했다.

지난 9일과 16일 2차례 한 진단 검사에서 A씨가 음성 판정을 받은 사실도 확인했다.

A씨는 병원 밖 선별진료소로 이동한 뒤에도 계속 배가 아프다며 진료를 요청했다.

비록 2차례 음성 판정이 나왔지만, 의료진은 혹시나 하는 우려에 방호복을 착용한 채 A씨를 병원 안으로 데려가 복부와 가슴 CT를 찍었다.

복부CT 진단 결과 A씨는 맹장염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가슴 CT상에서 바이러스성 폐렴 의심 징후가 나타난 것이다.

병원 측은 A씨 검체를 채취해 진단을 의뢰한 뒤 맹장염 수술 여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A씨가 수술 후 양성 판정을 받으면 우선 수술실을 폐쇄하고 내부와 수술 장비 등을 방역해야 한다.

수술 후 입원 조치가 불가피한 까닭에 A씨와 접촉한 의료진, 면역력이 약한 다른 입원환자에게 바이러스가 전파될 것도 우려했다.

그렇다고 환자를 돌려보낸다면 자칫 상태가 더 나빠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럴 경우 쏟아지는 비난은 병원이 모두 감내해야 한다.

병원 측은 고민 끝에 A씨를 우선 응급실 옆 한 장소에 격리하고 항생제 처방을 한 뒤 대구·경북 내 코로나19 확진자 전담 병원 등에 전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대부분 병원이 "확진 판정이 나오면 받겠다"고 전원을 꺼렸다.

수소문 끝에 칠곡경북대병원이 환자를 보내도 좋다고 해 A씨는 병원을 찾은 지 12시간이 훌쩍 지난 20일 0시께 119구급차로 긴급 이송됐다.

A씨는 이 병원에 도착해 음압시설을 갖춘 수술실에서 수술을 받았다.

30분 정도면 끝나는 수술이지만 수술실을 소독하고 의료진이 방호복을 착용하느라 준비 시간만 3∼4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수술 후 격리된 상태로 회복 중이던 A씨는 이날 오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A씨가 처음 찾아간 병원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진자가 속출하는 상황이다 보니 의심 환자 대처에 여러 가지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다급한 상황에 병원을 찾은 의심 환자 사정도 중요하지만 입원한 중환자 등 다른 환자들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맹장염인데 폐렴 징후 보인 환자, 12시간 지나 수술…의료진 `딜레마`

A씨는 우여곡절 끝에 수술을 받았지만, 지금과 같은 `의료 혼란기`에 건강에 이상이 생긴 코로나19 의심 환자가 제때 치료받지 못해 비극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가 의료계에서 나온다.

지난 18일 숨진 고교생 정모(17)군도 맨 처음 발열 등 코로나19 의심증세로 병원을 찾았지만,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정군은 코로나19 검사에서 최종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이런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의료환경이 마련됐다면 폐렴 증세가 악화하는 걸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대구·경북에는 음압시설을 갖춘 수술실도 흔치 않은 것으로 알려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송정흡 칠곡경북대병원 교수(예방의학 전공)는 "의심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기 전까지 안전하게 머물며 치료받을 수 있는 전용 병원이나 시설이 필요하다"며 "방역 당국은 지금이라도 하루빨리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코로나19 확산이란 초유 사태에 환자와 의료진 모두가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며 "비극적 돌발 상황을 비난하기보다 탄탄한 의료체계가 갖춰질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주리기자 yuffie5@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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