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불치 포퓰리즘' 중병 깊어가는 아르헨티나, 남의 일 아니다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페론주의’ 부활을 내세운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후보가 이겼다. 4년 전 ‘좌파 포퓰리즘 심판’으로 집권했던 우파 마우리시오 마크리 현 대통령은 경제를 살려내지도, 좌편향된 국가 시스템을 개혁하지도 못한 채 물러나게 됐다.

경제난을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에서 페론주의 부활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5년 12년 만에 우파가 집권했을 때 ‘포퓰리즘 심판’이라고 했던 세계 언론의 평가를 돌아보면, 70년 된 ‘아르헨티나 병’이 얼마나 깊고 무서운 것인지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빚더미를 물려받았던 우파 마크리 정부는 공공부문 축소와 긴축재정, 보조금 감축, 친(親)시장 정책을 시도했다. 하지만 긴축도, 구조개혁도 고통스러웠다. 개혁에 소극적인 국민과 더불어 성장력·경쟁력이 고갈된 경제를 4년 만에 살려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자원의 저주’라는 말 그대로, 목축·농업 등의 방대한 자원을 경제 살리기에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했다. 시스템 붕괴는 그만큼 무섭다. 이번 선거로 부통령이 될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의 8년 집권기(2007~2015년) 때만 돌아봐도 공무원 수는 두 배로 늘어났고, 지급 조건 완화로 연금 수급자도 두 배로 증가했다. 500만 대의 노트북 컴퓨터를 무상 지급하는가 하면, TV 축구방송 중계료를 세금으로 내주기까지 했다. 현금 살포성 복지, 극심한 저출산의 와중에 미래 세대 부담을 키우는 재정만능주의 경향의 우리 정부와 별반 다를 바 없다.

1946년 후안 페론 집권 이래 지속된 마약 같은 포퓰리즘이 이 나라 국민을 좌경화로 몰아가면서 나약하게 만들었다. 우파 마크리도 취임 때 다짐과 달리 이를 극복하지 못한 채 물러나면서 아르헨티나 경제는 다시 ‘마취제 요법’에나 기대게 될 공산이 크다. 결과는 보나마나다. 산업 국유화, 무상복지 강화 등이 현실화되면서 경제는 한층 악순환에 빠지게 될 것이다.

지난해부터 진행돼 온 국제통화기금(IMF)과의 구제금융 협상 방향에 따라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들에까지 아르헨티나발 경제 불안이 나타날 수도 있다. 아르헨티나 경제는 물가와 성장에서 이미 롤러코스터를 탔고, 새 대통령 선출에 맞춰 달러 매입 한도에 직접 규제를 가해 투자자들에게 비상을 거는 딱한 장면까지 연출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 남미 좌파벨트의 몰락을 보며 우리를 돌아보게 된다. 문재인 정부 이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같은 공공부문 비대화, 확장일변도의 정부 지출을 보면 아르헨티나의 대중영합적 정책과 겹치는 부분이 적지 않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국민연금 등을 내세운 일련의 반(反)기업·친노조 정책도 마찬가지다. 새 일자리는 세금으로 만든 ‘알바·노인용’이다. 새 대통령에게 아르헨티나인들이 환호할 때 이 나라 중앙은행은 긴급회의를 열고 있었다. 달러 유출과 주가 하락에 대비한 비상회의였다.

포퓰리즘 후유증은 깊고도 길다. 포퓰리즘 두려운 줄 모르는 정파에서 ‘50년·100년 집권론’을 쉽게도 말하는 게 무섭다. 남미 ‘핑크 타이드’의 실체를 유권자들이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0월 30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퍼주기식 복지'는 되돌리기 어려워
아르헨티나인들의 선택이 그걸 증명
'자원의 저주' 의미 재차 새겨봐야


[한경 사설 깊이 읽기] 포퓰리즘으로 망한 아르헨티나…한국이 따라 가선 안돼
아르헨티나에서 페론주의 좌파가 다시 집권하게 되면서 남미 지역 경제뿐 아니라 국제 금융시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회원국 중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경제 규모가 크다. 브라질은 강한 우파 정부가 들어서 있고, 아르헨티나에서는 좌파가 집권하게 되면서 벌써 현저한 입장차가 드러나고 있다. 좌·우파는 통상과 교역, 시장 개방에서도 시각차가 큰데, 메르코수르의 당면 현안은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다. 브라질은 앞으로 아르헨티나가 협정 체결을 방해하면 이 블록에서 축출하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안 되면 브라질 스스로 탈퇴한다는 게 브라질 입장이다.

포퓰리즘 정책을 앞세운 좌파 정권을 택한 것은 아르헨티나인들 스스로의 선택이다. 문제는 향후 아르헨티나의 향방이 국제 금융시장에 큰 변수가 된다는 것이다. 저성장의 늪에 빠져든 한국도 다른 신흥국들처럼 큰 ‘위험 변수’를 안게 됐다. 현재 핵심 관점은 지난해부터 진행돼온 아르헨티나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협상이다. 아르헨티나는 그간 사실상 국가부도인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여덟 번이나 빠졌다. IMF와의 협상도 국가부도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인데 560억달러를 빌리는 과정이 쉽지가 않다. 한국도 경험했듯이, IMF 대부 조건에는 정부지출 축소, 산업경쟁력 강화 방안 마련과 같은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런 조건은 아르헨티나가 수용하기에 쉽지 않을 것이다. 지난 4년간 우파 정권의 긴축과 구조개혁 시도를 참지 못해 포퓰리즘 기반의 좌파를 다시 선택한 판에 그 어렵고 힘든 길을 묵묵히 받아들이겠나. 결국 악순환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재정만능주의나 퍼주기 복지에 한번 젖어들면 경제체력을 강화하는 방안은 힘들 수밖에 없다.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한국이 반면교사로 봐야 할 교훈점이 이것이다.

1946년 후안 페론 집권 이래 지속된 포퓰리즘의 부작용과 문제점을 기업가 출신 우파 대통령도 어쩌지 못한 채 4년 단임으로 물러난다. 그렇지만 새 정부가 걷게 될 길도 순탄치 않아 보인다. 남미 좌파벨트 국가의 부침을 눈여겨보면서 좌·우파 정책의 특징을 비교해보는 것도 의미 있겠다. ‘자원의 저주’ 가설이 아르헨티나에서는 어떻게 나타났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공부거리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