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법연화경’ 사경속의 불화
‘묘법연화경’ 사경속의 불화
이 같은 윤회의 고리에서 조상을 숭배하는 이념이나 조상신을 모시는 제례는 있을 수 없었다. 죽은 아버지가 죄업이 많아 마당을 기는 구렁이나 매를 맞는 여우로 태어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려인은 부모가 사망하면 불교식으로 화장하고 철 따라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천도재(薦度齋)로 망자를 기억했다.

철저한 신분 조사

고려인들은 조상신의 엄한 눈초리 아래서 그들을 모시는 장례와 제례에 인생의 거의 절반을 투여한 후대의 조선인과는 상이한 질서의 삶을 살았다. 고려인에겐 단일 계통의 혈연 친족집단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 점에서 고려인은 태어날 때부터 특정 신분의 친족집단에 얽매인 조선인과 달리 비교적 자유로운 개성이었다.

고려인은 관직에 나아갈 때 8조(祖)의 세계(世系)를 밝힌 호적을 제출해야 했다. 8조는 자기의 부(父) 쪽으로 조부 조모 증조모 고조모, 모(母) 쪽으로 외조부 외조모, 처(妻) 쪽으로 처부 처모다. 세계는 이들 8조의 부, 조부, 증조부, 고조부로 올라가는 남계(男系) 조상을 말한다. 따라서 8조 세계란 부, 모, 처 세 변으로 올라가는 32명의 조상을 가리킨다. 그 안에 천한 사람이 없어야 높은 관직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지 못하면 기껏해야 하급 서리나 군인의 지위에 그쳤다.

32명의 조상이 모두 남성이어서 고려 시대가 부계(父系) 사회인 듯 보이지만 국가 제도의 형식에서 그러했을 뿐이다. 8조의 구성에서 여성이 더 많듯이 결혼, 가족생활, 상속 등의 일상생활에서는 모계(母系) 원리가 훨씬 강하게 작동했다. 고려의 남자들은 대개 처방(妻方) 거주의 관습에 따라 결혼 후 장기간 처가에 거주했다. 처가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모계 친족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고려인들이 친족의 서열과 원근을 구분한 용어는 부계보다 모계 친족을 대상으로 더 정교하게 발달했다.

처용과 안길

친족이 세 변으로 넓게 열린 집단이듯이 그 하부 단위로서 가족도 마찬가지 속성을 띠었다. 조선 시대와 같은 일부일처의 가족제는 정립돼 있지 않았다. 고려사는 어느 관료가 지위가 높아짐에 따라 결혼을 거듭하는 몇 가지 사례를 전하고 있다. 서긍의 고려도경은 부유한 집은 서너 명의 아내를 맞이하는데, 쉽게 사랑해 합쳤다가 조금만 맞지 않아도 쉽게 헤어진다고 했다. 복혼의 풍습이 광범했음은 《삼국유사》에 전하는 처용가(處容歌)를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처용가의 내용은 통일신라를 무대로 하지만 그것의 채집과 연주는 고려 시대 일이었다. 고려 왕실은 처용가를 궁중에서 즐겨 공연했다. 주지하듯이 처용의 부인은 남편의 귀가가 예정된 밤늦은 시간에 다른 남자를 침실에서 맞이하고 있었으며, 처용은 그것에 관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 외에 복혼 풍습과 관련해 《삼국유사》는 안길(安吉)의 고사를 소개하고 있다. 무진주의 안길은 귀한 손님이 집을 방문하자 세 명의 처를 불러 “오늘 밤 이 거사를 모시고 자면 그녀와 평생 해로하리라”고 했다. 두 명의 처는 차라리 함께 살지 않을지언정 모르는 사람과 잘 수 없다고 거절했다. 다른 한 처는 “만약 평생토록 함께 살기를 허락한다면 명을 받들겠다”며 손님의 침실에 들었다. 이 역시 통일신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지만 고려의 맥락에서 전승되고 기록된 것이다.

고려의 남녀는 결혼 후 한집에서 같이 살아야 한다는 동거율에 강하게 구속되지 않았다. 안길이 세 명의 처에게 평생 해로의 조건을 내건 데서 그렇게 짐작할 수 있다. 남녀 배우자는 각기 자신의 친족집단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에 결혼은 방문혼의 형태를 취하기도 했다. 부부가 동거하는 경우에도 그리 안정적이지 않았다. 1107년 예종은 군인의 처로 30년 이상 떠나지 않고 동거한 여인에게 상을 내렸다. 고려왕조는 가정윤리에 충실한 효자, 효녀, 절부를 포상했는데 의부(義夫)도 그 대상이었다. 의부란 처를 버리지 않고 오래 동거한 의리 있는 남자를 가리키는 고려 시대 고유의 역사적 용어다. 장기간의 동거가 포상의 대상이었음은 그렇지 못한 결혼이 일반적이었음을 방증한다. 근친혼도 고려 결혼의 한 가지 특색이었다. 원 복속기의 충선왕은 원의 뜻을 받들어 왕족과 양반의 근친혼을 금했다.

■기억해주세요

고려때 관직하려면 부·모·처가 쪽 조상 32명 호적 제출…30년 이상 오래 같이 산 남편과 처에겐 상도 줬죠
고려인은 관직에 나아갈 때 8조(祖)의 세계(世系)를 밝힌 호적을 제출해야 했다. 8조는 자기의 부(父) 쪽으로 조부 조모 증조모 고조모, 모(母) 쪽으로 외조부 외조모, 처(妻) 쪽으로 처부 처모다. 세계는 이들 8조의 부, 조부, 증조부, 고조부로 올라가는 남계(男系) 조상을 말한다. 따라서 8조 세계란 부, 모, 처 세 변으로 올라가는 32명의 조상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