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인 초청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국내 30대 기업 총수 및 최고경영자(CEO), 경제단체장 등 경제인 34명이 참석했다. 오른쪽부터 황각규 롯데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문 대통령,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 회장, 허창수 GS 회장, 황창규 KT 회장,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이성근 대우조선해양 사장.  허문찬 한국경제신문 기자 sweat@hankyung.com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인 초청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국내 30대 기업 총수 및 최고경영자(CEO), 경제단체장 등 경제인 34명이 참석했다. 오른쪽부터 황각규 롯데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문 대통령,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 회장, 허창수 GS 회장, 황창규 KT 회장,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이성근 대우조선해양 사장. 허문찬 한국경제신문 기자 sweat@hankyung.com
일본 정부가 반도체 제조 등에 필요한 핵심 소재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고 나섰다.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차원이다. 반도체는 한국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주력 산업이다. 한국 경제의 ‘급소’를 찔렀다는 분석이다. 한국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 맞대응하기로 했다. 한국과 일본이 경제 분야에서 정면 충돌한 것은 1965년 수교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日 “양국 간 신뢰 현저히 훼손” 주장

日, 반도체 제조 핵심 부품 한국 수출 규제 '보복성'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으로의 수출관리 규정을 개정해 스마트폰과 TV 제조에 필요한 반도체 소재 등 3개 품목의 수출 규제를 지난 4일 0시부터 시작했다. 규제 품목은 반도체 생산에 필수인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감광액)와 디스플레이 등에 쓰이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세 가지다. 지금까지는 한 번 허가를 받아놓으면 3년 동안 별도 심사 없이 이들 제품을 수입할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건건이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엔 90일가량이 걸린다. 수출이 지연되거나 막히면 한국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제산업성은 이번 조치의 이유에 대해 “양국 간 신뢰관계가 현저히 훼손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현지 언론들은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이후 일본 정부가 한국에 해결 방안을 제시하라고 요구했지만 한국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자 ‘보복’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역사적 갈등의 불똥이 경제 쪽으로 옮겨붙은 셈이다. 지난해 10월과 11월 대법원은 일본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한국 제외 가능성

日, 반도체 제조 핵심 부품 한국 수출 규제 '보복성'
문제는 반도체가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크고, 당장 일본산 소재를 대체할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은 6054억달러(약 709조원)였다. 이 중에서 반도체 수출은 1267억달러(약 148조원)로, 20.9%에 달했다. 한국 기업들은 규제 대상인 3개 품목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해 왔다. 그중에서도 일본의 비중이 막대하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포토레지스트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전체 수입액 중 일본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91.9%와 93.7%로 집계됐다. 에칭가스는 전체 수입액의 43.9%가 일본산이었다.

日, 반도체 제조 핵심 부품 한국 수출 규제 '보복성'
일본 정부의 규제가 단순히 이들 3개 품목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일본 정부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해 통신기기와 첨단 소재의 수출을 엄격히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국이 화이트국 지위를 잃으면 수출 규제가 적용된 세 품목과 마찬가지로 탄소섬유 등 1100여 개 품목에 대해 일일이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한다. 현재 한국을 비롯해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27개 국가가 화이트리스트에 포함돼 있다. 반도체 장비 등이 2차 수출 규제 타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응책 고심하는 정부… ‘맞보복’ 땐 서로 피해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 정부에 수출 규제 조치의 철회를 공식 요청하고, 한국 기업에 피해가 발생하면 필요한 대응을 하겠다고 했다.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재계 총수들과의 간담회에서는 “일본 수출 규제 조치와 관련해 무엇보다 정부는 외교적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일본 정부도 화답해주기 바라며, 더 이상 막다른 길로만 가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일본을 WTO에 제소하기 위해 검토하고 있다”며 “일본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수출 규제나 다른 경제적 조치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WTO 제소와 판정까지 최소 2~3년이 소요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정부는 WTO 제소와 함께 국제 공조를 통해 일본을 압박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지만 상황이 녹록지만은 않다.

일본에 대항해 일본 기업의 한국산 수입을 틀어막는 ‘맞불 작전’도 고심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무기’로는 D램 반도체와 OLED 패널 등이 거론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이 각각 세계시장의 73%와 50%를 차지하고 있는 D램과 낸드플래시는 전자, 자동차 등 거의 모든 산업에 필수 부품으로 들어간다. 수출을 제한하면 일본 기업도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일본 기업의 부품 자급률이 한국 기업보다 훨씬 높아 ‘보복이 보복을 부르는’ 대책은 되레 피해를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국 간 정치적 갈등에서 빚어진 일인 만큼 양국의 정치권이 지도력을 발휘해 해법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NIE 포인트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 수출을 규제하고 나선 배경을 알아보자. 우리나라 경제에서 반도체가 갖는 중요성을 정리해보자. 이번 규제가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어떻게 양국 간 갈등을 풀어야 할지 등을 토론해보자.

구은서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