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서너 명'이 옳고 '세네 명'은 틀리죠 ~
우리말 수의 세계는 들여다볼수록 오묘하다. 그동안 ‘맞춤법 바로 알기’를 통해 우리말 수사에 한자어 계열과 고유어 계열이 있다는 것을 살펴봤다. 하나, 둘, 셋 등이 고유어 수사고 일(一), 이(二), 삼(三) 같은 게 한자어 수사다. 고유어 수사는 관형어로 쓸 때 ‘한, 두, 세’ 식으로 또 변화를 일으킨다. 그래서 더 복잡하다. 뒤에 오는 단위명사가 무엇이냐에 따라 ‘서 말’과 ‘석 자’ ‘세 명’ 식으로 구별해 쓰기도 해야 한다.

서 돈, 서 말은 돼도 석 돈, 석 말은 안 써

표준어규정 17항은 이들을 구별하는 까닭을 담고 있다. 요약하면, ‘의미는 같되 비슷한 발음으로 몇 가지가 쓰일 경우 그중 더 널리 쓰이는 하나를 표준어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선택된 게 ‘돈, 말, 발, 푼’ 앞에서는 ‘서-’다. ‘세-/석-’은 쓰지 못한다. ‘냥, 되, 섬, 자’ 앞에서는 ‘석-’을 쓰고 ‘세-’는 버렸다. ‘서-’는 당연히 못 쓴다. ‘넷’의 관형형인 ‘너-’와 ‘넉-, 네-’를 구별해 쓰는 요령도 같다. ‘돈, 말, 발, 푼’ 앞에서는 ‘서-, 너-’가, ‘냥, 되, 섬, 자’ 앞에서는 ‘석-, 넉-’이 주로 쓰이기 때문이다.

그 외의 단어가 올 때는 어떻게 될까? 마찬가지로 무엇이 더 널리 쓰이는지를 보면 된다. 예컨대 ‘(보리) 서/너 홉’, ‘(종이) 석/넉 장’과 같이 쓸 수 있다. ‘세/네’는 비교적 널리 통용된다. 따라서 이를 ‘세/네 홉’, ‘세/네 장’이라 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것은 직관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모든 단위명사를 분류해 제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서/너’가 쓰이는 곳에는 ‘석/넉’이 쓰일 수 없고 ‘석/넉’이 쓰이는 곳에는 ‘서/너’가 쓰일 수 없다는 뜻이다.

이제 응용을 해보자. 우리 속담에 ‘중매는 잘하면 술이 석 잔이고 못하면 뺨이 세 대’라는 게 있다. ‘석 잔’이고 ‘세 대’라 한다. 그럼 ‘세 잔’이나 ‘석 대’는 틀린 말일까? 그렇지 않다. 모국어 화자의 직관에 이런 말도 자연스러우므로 이 역시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석 달, 넉 달’이라 해도 좋고 ‘세 달, 네 달’로도 쓸 수 있다.

비슷한 형태 중 널리 쓰는 말을 표준어로

수를 조금 두루뭉술하게 표현하는 말도 다양하다. 가령 세 명이나 네 명을 나타내고 싶다면 ‘서너 명’이라고 한다. 이때 이를 ‘세네 명’이라고 하면 틀릴까? 아쉽게도 <표준국어대사전>에 ‘세네’라는 말은 없다. 아직은 ‘세네 명’ 같은 말이 규범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국립국어원에서 운영하는 <우리말샘>에는 ‘세네’가 ‘서너’의 방언으로 올라 있다. 우리말샘은 정식 단어는 아니지만 시중에서 많이 쓰는 말을 누구나 자유롭게 올릴 수 있는, 일종의 개방형 사전이다. 언젠가 단어가 될지도 모르는, 대기 중인 상태의 말들이라 할 수 있다.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그나마 이런 것은 선택지가 둘 중 하나이니 비교적 간단하다. 넷이나 다섯쯤 되는 것은 어떻게 써야 할까? 너댓 명? 네댓 명? 너덧 명? 얼추 떠오르는 것만도 이 정도다. 어떤 이는 ‘너더댓 명’이나 ‘네다섯 명’을 생각해낼지 모른다. 이 중 ‘너댓’은 바른 표현이 아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너댓’을 ‘네댓’으로 쓰도록 하고 있다. 둘 가운데 ‘네댓’이 널리 쓰이므로 ‘네댓’만을 표준어로 삼았다. 따라서 ‘네댓’을 비롯해 ‘너덧’ ‘너더댓’ ‘네다섯’은 다 허용되는, 같은 말이다. ‘너댓’만 주의하고 다른 것은 얼마든지 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