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국세청장 후보자 내부출신 선발... '조직안정' 관례 존중

세원관리+세무조사 전문성 겸비, 국세청 안팎 '순리인사' 평가

국세청장 배출 2관왕 '경기 화성'... 한승희 이어 김현준까지

행시35회 선두주자였던 김현준 후보자, 결국 '최고의 자리'까지...



청와대가 지난 28일 새 국세청장 후보자로 김현준 현 서울지방국세청장(이하 김현준 후보자)을 지명했다. 1968년 만 51세의 '젊은 국세청장' 후보자다. 국세청 안팎에서는 '순리인사'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모습이다.

본청 조사국장→서울국세청장→국세청장, '엘리트 코스'

◆…본청 조사국장 지낸 '내부출신' 국세청장들 = 외부출신 이용섭 전 국세청장 이후 배출된 7명의 내부출신 국세청장 중 5명은 '본청 조사국장'을 거쳐 서울국세청장 또는 국세청 차장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아 국세청장에 올랐다. 김현준 후보자 또한 본청 조사국장과 서울국세청장을 지내다 제23대 국세청장 후보자로 지명됐다. (사진 국세청)

김현준 후보자 지명으로 '본청 조사국장→서울국세청장' 인사루트가 국세청 최고의 '왕좌 코스'임이 재차 확인됐다.

임환수 전 청장, 한승희 현 청장도 이 인사루트를 걸어 국세청장 자리에 올라왔다. 범위를 조금 넓혀보면 전군표, 한상률, 이현동 전 청장 등 본청 조사국장과 서울국세청장을 거쳐 국세청 차장을 지내다 국세청장 자리에 올랐다.

특히 국세청 사람들 사이에서는 국세청 차장, 서울국세청장은 언제든지 기용이 가능한 '잠재적 국세청장 후보'로 인식되어 왔다.

이러한 인식이 깨진 케이스가 딱 1번 있었는데 박근혜 정부 첫 국세청장이었던 김덕중 청장 이다. 그는 국세청 차장도 서울국세청장도 아닌, 중부국세청장 자리에서 국세청장으로 직행했다.

파격이라는 말이 뒤 따랐는데 지난 1999년 경인국세청과 중부국세청이 통합, 중부국세청이 1급 지방청으로 재편된 이후 10여년만에 첫 국세청장을 배출,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화려한 이력서의 사나이, '경기 화성'은 약점 아니었다

◆…'조사통' 전성시대 이은 김현준 후보자 = 김현준 후보자는 임환수 전 국세청장, 한승희 현 국세청장 못지 않은 세무조사 전문성을 보유한 '조사통'으로 꼽히는 인물. 중부지방국세청 조사1, 4국장을 연거푸 지냈고 국세청 조사국장까지 섭렵했다. 세원관리와 대국회 업무 등 다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온 인물. 사진은 지난해 5월 언론 브리핑 모습. 당시 그는 국세청 조사국장이었다. (사진 국세청)

당초 새 국세청장 인선과 관련한 인사검증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국세청 안팎의 분위기는 김현준 후보자의 출신지역이 약점이 되지 않겠냐는 분석이 많았다. 김현준 후보자는 한승희 현 청장과 동향인 '경기 화성' 출신.

역대 국세청장 인사에서 시도(市道)가 동일한 인물을 연속으로 국세청장에 앉힌 전례가 없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안정남, 손영래, 이용섭 청장 등 전남 출신 청장 3명(안정남-영암, 손영래-보성, 이용섭-함평)이 연달아 배출된 경우 정도가 있을 뿐이다.

지역 등 모든 것을 떠나 기본기나 다름 없는 '국세행정 경험'이라는 한 가지 부분만 놓고 보면, 대국회 업무부터 시작 세원관리와 세무조사 등 국세행정 전 분야에 걸쳐 핵심 요직을 두루 섭렵한 화려한 이력서를 가지고 있는 김현준 후보자가 최적임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조직안정' 내부출신 국세청장 세운 이유


◆…"이용섭 발탁은 내 아이디어였다" = 지난 2011년 출간된 문재인 대통령의 저서 '문재인의 운명' 중 이용섭 국세청장 발탁 배경을 언급한 부분. 당시 노무현 정부 첫 국세청장 자리를 놓고 내부출신 유력 후보 2명이 과도한 경쟁을 벌이면서 탈락, 이용섭 청장을 자신의 아이디어로 발탁했다고 문 대통령은 술회했다. (사진
조세일보DB)

노무현 정부 첫 국세청장이었던 이용섭 청장 발탁 배경에는 정권 교체에 따른 '개혁' 명분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국세청 내부출신들의 '권력암투'였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의 저서(문재인의 운명, 2011년 출간)에도 적어놓은 '팩트'.

이용섭 청장이 2년 가량 재임하며 국세청 조직을 안정시키자 청장 인선 기류는 다시 내부출신으로 돌아섰다(이주성, 전군표, 한상률). 이명박 정부도 전 정부에서 임명됐던 한상률 청장을 유임시키면서 내부출신 국세청장 인선 기조를 이어갔다.

하지만 이 3명의 내부출신 국세청장은 모두 불명예 퇴진하면서 '실패한 인사'로 귀결됐다.

특히 한상률 청장이 물러난 이후 국세청 개혁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청와대는 6개월 가량 차장 직무대리 체제로 국세청을 운영하다 2009년 7월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당시 장관급인 공정거래위원장이었던 백용호 청장을 국세청장에 임명했다.

백용호 청장은 정확히 1년(재임 2009년 7월16일~2010년 7월16일) 후 청와대로 자리를 옮겼고 국세청장 인선 기조는 다시 내부출신으로 전환, 현재에 이르고 있다(이현동→김덕중→임환수→한승희).

이후 내부출신 국세청장들이 극도의 '절제'로 크고작은 사고에 연루되지 않은 측면도 있지만 과거와 달리 국세청이 권력기관 이미지가 상당부분 희석, '외부충격'을 가해 조직을 뒤엎는 시도가 불필요한 상황이 이어진 것이 내부출신 국세청장 인선 기조 유지의 원동력이 됐다는 분석이다.

즉 국세청이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조직이 극도의 히스테리 반응을 보이는 외부출신 청장을 앉혀 조직을 흔들 필요 자체가 없다는 것이 청와대가 내부출신 후보자를 지명한 배경으로 분석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대박 행보를 이어온 세수상황이 올해 들어 악화되는 분위기가 형성, 어느 때보다 국세청의 단단한 조직력이 필요하다는 판단도 깔렸을 것으로 보인다.

행시35회 선두주자, '정점'에 올라서다


◆…"막중한 책임감과 사명감 느낀다" = 지난 28일 국세청장 후보자 지명 발표 직후 김현준 후보자가 언론사에 배포한 국세청장 후보자 지명 소감. 김 후보자는 "국세청장 후보자로 지명된 것에 대하여 막중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국세청 행시 35회 출신은 5명.


한 기수 아래인 행시 36회 출신들이 숫적인 측면에서 월등히 많았고, 이들 중에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행시에 합격한 인원들이 많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35회 보다는 36회 출신들이 더 주목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실제 35회 출신들의 1급 승진 시점은 36회 출신들보다 뒤쳐졌다. 능력적인 측면에서 밀린 것이 아닌 연령 등 다른 요인들로 인해 후배 기수들에게 승진의 기회를 양보했고, 결과적으로 이는 '전화위복'이 됐다.
35회 출신 중 고위직 승진이 좌절되거나 중도 이탈(명예퇴직)한 2명을 제외한 3명이 고위공무원으로 올라섰고, 김현준 후보자와 이은항 국세청 차장이 1급 고위공무원 자리에 올랐다.
김현준 후보자는 사무관 서기관 시절부터 행시 동기들 중 가장 뛰어난 업무능력을 발휘하며 '선두주자'라는 평가를 받았었다. 업무 욕심이 많은 것이 흠이라면 흠일 뿐 업무 외적으로는 서글서글한 외모에 딱딱하지 않은 언변으로 친화력도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실제 그의 '국세공무원 이력서'는 화려하다. 특히 고위공무원 승진 이후 그가 거친 자리들이 압권. 비록 서울국세청 조사국장 경력을 이력서에 넣지 못했지만 중부국세청 조사1국장과 조사4국장(당시 중부국세청 조사4국장은 '인천지청장'으로 불렸다)을 지냈고 본청 핵심 국장 자리로 꼽히는 3자리(법무심사국장, 기획조정관, 조사국장)을 모두 섭렵했다.


조세일보 / 김진영 기자 jykim@jose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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