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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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우리말 부정어 생략 현상을 좀 더 살펴보자. “그 사람 엉터리야.” 이때의 ‘엉터리’도 ‘엉터리없다’에서 바뀌었다. ‘엉터리’는 본래 ‘사물이나 일의 대강의 윤곽’을 뜻하는 말이다. “1주일 만에 겨우 일의 엉터리가 잡혔다”처럼 썼다. 그래서 이를 부정해 ‘엉터리없다’라고 하면 ‘정도나 내용이 전혀 이치에 맞지 않다’는 뜻이 된다. ‘엉터리없는 수작’ ‘엉터리없는 생각’처럼 쓴다.

‘대강의 윤곽’을 뜻하던 말에서 의미 이동

그런데 이 ‘엉터리없다’에서 부정어가 생략되고 의미 이동이 이뤄지면서 지금은 ‘엉터리’란 말 자체가 ‘엉터리없다’란 뜻을 갖게 됐다. 따라서 “네 말은 순 엉터리야”라고 하든지, “네 말은 순 엉터리없어”라고 하든지 같은 뜻이다. 문법적으로도 모두 허용된다.

‘안절부절못하다’는 경우가 또 다르다. 흔히 “안절부절한 모습”이라고 한다. 또는 “안절부절하지 못한다”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틀린 말이다. 우리말에 ‘안절부절하다’란 말이 없기 때문이다. ‘안절부절’은 ‘초조하고 불안해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양’을 뜻한다. 이 말은 특이하게 부정어가 결합한 ‘안절부절못하다’가 하나의 단어다. 활용할 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 ‘안절부절못하고~’ 식으로 써야 한다.

전혀 합당하지 않을 때 “얼토당토않다”라고 한다. 이 말은 어원적으로 ‘옳+도+당(當)+하+도’로 분석된다. 이 역시 ‘얼토당토않다’가 한 단어라 부정어를 생략해서는 안 된다. 자칫 “그런 얼토당토한 얘기는 하지도 마라”처럼 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부정어와 어울려 쓰는 말은 이 외에도 ‘심상하다, 손색, 아랑곳’ 등 꽤 많다. ‘심상(尋常)하다’란 말은 대수롭지 않고 예사롭다는 뜻이다. ‘평범하다, 범상하다’가 비슷한 말이다. ‘심상치 않다’가 관용구처럼 굳어 활발하게 쓰인다. 이 말이 줄어 ‘심상찮다’가 됐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아직 단어로 처리하지 않았으나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선 단어로 올렸다.

‘심상치 않다’는 길이 단위에서 유래한 말

‘심상’은 일제강점기 때 학교 이름에서 볼 수 있다.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의 학력을 보면 가끔 ‘OO심상학교’란 용어가 나온다. 이 말이 보통학교, 국민학교를 거쳐 지금의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심상’을 일본 한자어로 오해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 말은 본래 중국 한자어다. ‘심(尋)’은 좌(左), 우(右)와 마디 촌(寸)이 결합해 만들어진 회의문자다. 좌우로 손을 벌린다는 뜻이며 한 발 정도의 길이를 일컫는다. 양손을 벌리면 쉽게 잴 수 있는 길이이기 때문에 ‘보통’의 뜻으로 쓰였다고 한다(네이버 한자사전). 참고로 이때의 ‘발’은 고유어로, 두 팔을 옆으로 펴서 벌렸을 때 한쪽 손끝에서 다른 쪽 손끝까지의 길이를 뜻한다. ‘심’은 8자(약 240㎝), ‘상(常)’은 그 2배 길이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니 ‘심상’은 불과 두세 평 정도의 작은 땅을 가리켰다.

“손색없다”란 말도 흔히 쓰는데 그 ‘손색’은 무엇일까? ‘손(遜)’은 ‘겸손하다, 뒤떨어지다’란 뜻으로, ‘손색(遜色)’은 ‘다른 것과 견주어 보아 못한 점’을 나타낸다. 그러니 ‘손색없다’라고 하면 ‘다른 것과 견주어 뒤지는 게 없다’란 뜻이다. ‘아랑곳하다’도 그 자체로는 잘 쓰이지 않고 주로 ‘아랑곳하지 않다/아랑곳이 없다’처럼 쓰인다. 그러다 아예 ‘아랑곳없다’가 단어가 됐다. 관용구로 ‘아랑곳 여기다’라고 하면 ‘관심 있게 생각하다’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