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들, 2000大 글로벌 상장사서 대거 탈락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2000대 글로벌 상장기업 중 한국 기업들이 대거 탈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중국 등 경쟁국 기업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 기업들의 숫자는 줄고 있다. 각종 규제와 반기업 정서에 막혀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글로벌 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해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 기업들, 2000大 글로벌 상장사서 대거 탈락
포브스가 최근 발표한 ‘2019 글로벌 2000대 상장사 순위’에 따르면 한국 기업 중 삼성전자만 작년보다 한 단계 오른 13위를 차지해 100위 내에 유일하게 진입했다. 200위 안에는 SK하이닉스(179위)가 이름을 올렸다. 2개 기업을 빼면 대부분의 한국 기업 순위가 하락했다. 현대자동차는 225위로, 지난해 147위에서 2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KB금융그룹 역시 작년 219위에서 올해 276위로 떨어졌다. 포스코(229위→323위), LG전자(411위→502위) 순위도 크게 하락했다. 대한항공 순위는 전년 1088위에서 올해 1446위로 추락했다.

약화되는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

한국 기업들, 2000大 글로벌 상장사서 대거 탈락
포브스는 매년 세계 주요 기업의 매출과 순이익, 자산, 시가총액 등을 종합 평가한 자료를 바탕으로 상위 2000대 기업 순위를 발표한다. 올해 발표된 리스트 중 상위 10대 기업은 미국 애플과 네덜란드 로열더치쉘을 제외하고는 모두 중국 및 미국의 금융기업으로 채워졌다. 중국공상은행이 1위에 올랐고, 미국 JP모간체이스가 2위를 차지했다. 중국건설은행, 중국농업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뒤를 이었다.

국가별로는 중국이 상위 10위권 내 5개를 싹쓸이했다. 전체 순위에서도 총 309개(2위)로, 1위 미국(575개)을 맹추격하는 등 전반적인 강세를 나타냈다. 미국과 중국 기업은 지난해 각각 560개, 291개에서 1년 만에 15개, 18개 늘었다.

반면 한국은 일본 영국과 더불어 리스트에 포함된 기업 숫자가 감소했다. 한국 기업은 지난해 67개보다 5개 줄어든 62개였다. 포브스는 2003년 처음 ‘글로벌 2000대 기업’을 발표했을 때와 비교해 기업의 국가별 분포가 크게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첫 발표 때는 미국 기업이 776개였으나 크게 위축됐고 중국과 홍콩 기업이 당시 43개에 불과했다가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정부 규제와 반기업 정서가 불러온 결과

여러 국제 기업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 기업들이 초라한 성적을 내고 있는 건 규제와 반기업 정서 때문이란 지적이 많다. 한국의 금융·노동·기업활동 규제 환경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하위권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규제와 기술 등 획기적인 혁신 없이는 앞으로 10년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1%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포브스의 이번 발표에선 한국전력의 하락세가 두드러졌다. 한국전력은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과 전기요금 관련 규제 등으로 최근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한전은 지난해(295위)보다 293계단 하락한 588위에 그치며 5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한전은 2016년 97위에 올라 처음으로 100위권에 진입하면서 삼성전자와 더불어 100위 안에 든 유일한 기업이란 사실로 주목됐다. 이후 2017년 138위, 2018년 295위를 기록하며 순위가 꾸준히 밀리고 있다.

현실 인식 못하고 논란만 키우는 정부

파격적인 규제개혁 정책이 해법이 될 것이란 지적이다. 한국에만 있는 규제라면 과감히 철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특히 신산업의 경우 규제 걱정 없이 일단 시도할 수 있도록 ‘사전허용 원칙’을 적용하는 등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노동개혁도 꼭 추진해야 할 과제다. 국내 근로기준법은 전 세계에서 가장 경직돼 있다는 평가가 많다. 한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국내법상 한 번 직원을 채용하면 경영상 사유나 근무평점을 이유로 해고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구조조정을 막아 놓으니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가 어려운 경제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맞춤 해법’이 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올 1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0.3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2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지만 정부는 현실을 낙관하고 있어서다.

■NIE 포인트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에는 무엇이 있는지 정리해보자. 과도한 정부 규제가 기업 활동을 어떻게 저해하는지 토론해보자. 기업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들이 필요한지 논의해보자.

정연일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