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칠칠맞다"는 칭찬하는 말이에요~
지난 4월 치러진 삼성그룹 직무적성검사(GSAT)에서는 언어논리가 특히 어려웠다고 한다. 인터넷에는 ‘칠칠하다’ ‘서슴다’ 같은 생소한(?) 단어 앞에서 ‘멘붕’을 느꼈다는 후기가 잇따랐다. 이런 말은 낯설다기보다 우리말 용법의 허를 찌르는 사례라 할 만하다. 이들은 단독으로는 잘 쓰이지 않고 주로 ‘못하다/않다/없다’ 등 부정어와 어울려 쓰인다. 그러다 보니 본래 의미를 간과하게 된, 그러기 십상인 말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알차다’에서 ‘야무지다’로 의미 확대돼

흔히 쓰는 용법을 토대로 원래 형태의 의미를 추리하고 응용하는 능력을 파악하기에 적절한 사례들이다. SNS 등의 ‘일탈적 언어’ 사용에 익숙한 세대일수록 낯설게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신문언어 등 규범어를 꾸준히 접했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였다. 생글 코너를 통해서도 몇 차례 다룬 내용이었다.

‘칠칠하다, 서슴다, 탐탁하다, 심상하다, 아랑곳하다.’ 얼핏 보면 의미가 잘 안 떠오른다. 이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부정어와 함께 쓰는 말이라는 점이다. ‘칠칠하지 못하다, 서슴지 않다, 탐탁지 않다, 심상치 않다, 아랑곳없다.’ 이렇게 하고 보면 이들이 일상에서 흔히 쓰는, 아주 익숙한 말이라는 게 드러난다. 하지만 부정어를 떼어내고는 잘 쓰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그 의미가 퇴색해 기억에서 멀어진 것일 뿐이다.

‘칠칠하다’는 본래 나무나 풀, 머리털 따위가 잘 자라서 알차고 길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검고 칠칠한 머리’ 같은 표현에 이 말의 본래 쓰임새가 살아 있다. 물론 지금도 쓰는 말이다. 이 말이 의미가 확대돼 ‘단정하고 야무지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때는 주로 ‘못하다, 않다’ 등 부정어와 함께 쓰인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칠칠하지 못하다’느니, ‘칠칠치 않다’느니 하면 ‘단정치 못하고 주접스럽다’는 뜻을 나타낸다. 그 ‘칠칠하다’를 좀 더 일상적으로, 속되게 말한 게 ‘칠칠맞다’이다. 이 역시 부정어와 어울려 쓰는 것은 똑같다. 그러니 ‘칠칠맞다’는 칭찬하는 말이다.

‘못하다/않다/없다’ 등 부정어와 함께 써

그런데 실제로는 좀 달리 쓰이는 것 같다. 만약 여자친구에게 “너 참 칠칠맞다”라고 하면 한 방 얻어맞을지 모른다. 사실은 좋은 뜻으로 한 말인데…. 현실어법에서 이 말을 반대로, 즉 ‘칠칠맞지 못하다’의 뜻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행 규범상 틀린 표현이다. 탓하는 의미로 쓸 때는 반드시 부정어 ‘못하다/않다’를 붙여야 한다.

이런 부정어 생략 현상은 우리말에서 그 뿌리가 꽤 깊다. 지금도 일부 어휘에서는 진행 중이다. ‘주책없다-주책이다’가 대표적이다. ‘주책’은 <표준국어대사전> 어원정보에 따르면 한자어 ‘주착(主着)’에서 온 말이다. 본래 의미는 ‘일정하게 자리 잡힌 주장이나 판단력’이다. 그래서 ‘주책없다’라고 하면 ‘줏대 없이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전부터 같은 뜻으로 ‘주책이다’를 함께 썼다. “그 사람 참 주책이야” 식으로 말했다. 이에 따라 국립국어원은 2016년 ‘주책이다’ 역시 표준어법으로 인정했다.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서슴다’ 역시 주로 “서슴지 말고~” “서슴지 않는~” 식으로 부정어와 함께 쓰인다. 말이나 행동에 망설임이나 거침이 없을 때 이런 말을 한다. 그래서 ‘서슴다’를 설령 몰랐더라도 그 뜻이 ‘머뭇거리다, 망설이다’라는 것을 유추해낼 수 있다. 이 말이 단독으로는 잘 쓰이지 않고 주로 부정어와 어울려 쓰이다 보니 아예 ‘서슴없다’가 한 단어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