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여신 '디케'가 눈을 가리고 있는 까닭은 특권 없이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뜻이죠
법치란 사람이 아니라 ‘법에 의한 지배’를 원리로 하는 통치로서 지역이나 종교, 인종, 민족과 상관없이 법에 따라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를 차별 없이 보호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그래서 법에 의한 통치가 정의롭고, ‘법이 곧 정의이며, 정의가 곧 법’이라는 말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법과 관련된 영어 표현에서는 ‘Ministry of Justice’, ‘Court of Justice’ 등 ‘법’이라는 단어 대신 ‘정의’라는 단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법치와 정의의 개념

개인이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라는 권리도 타인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즉, 법치 안에서라야 정의롭게 보호되고 유지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법치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반드시 선행돼야 할 기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찍부터 민주주의를 확립한 영국은 “국왕이라도 신과 법 밑에 있다”는 헌정 원칙에 따라 법치가 잘 자리 잡은 나라로 유명하다. 다음의 이야기는 영국 사람들의 준법의식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내준다.

영국 수상에게 교통티켓 발부

어느 날, 영국의 수상이 타고 있는 차가 교통신호를 위반해 교통경찰관에게 적발되었다. 경찰관이 차를 정지시키고 다가오자 수상의 운전사가 차창을 내리고 이렇게 말했다.

“수상이 타고 계신 차요. 지금 회의시간이 늦었으니 어서 보내 주시오.”

하지만 경찰관은 운전사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수상 각하는 결코 법을 어기실 분이 아닙니다. 설혹 수상 각하라 하더라도 교통신호를 위반했으면 딱지를 떼야지 예외는 있을 수 없습니다.”

경찰관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신호 위반 스티커를 발부했다. 차 안에 있던 수상은 순간 겸연쩍긴 했지만, 흔들림 없는 경찰관의 충직한 태도에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바로 그날, 바쁜 일정을 마친 수상은 교통경찰관을 치하하고자 런던 경시청장을 불렀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한 뒤 그 교통경찰관을 특진시키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경시청장은 수상의 지시를 단호히 거절했다.

“교통법규를 위반한 사람에게 스티커를 발부하는 것은 교통경찰이 해야 할 마땅한 임무일 뿐 그런 이유로 특진시킬 수 있는 조항은 없습니다.” 경시청장의 말에 수상은 또 한 번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수상으로서 자존심이 상하거나 불쾌한 기분이 들기보다는 도리어 말할 수 없는 뿌듯함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윈스턴 처칠의 경험

한 나라의 수상이라도 법을 어기는 경우에 절대로 봐주는 일이 없는 경찰들이나 그러한 경찰들의 태도에 괘씸해하기는커녕 오히려 감동하는 수상의 모습은 그야말로 한편의 훈훈한 드라마 속 이야기 같다. 이 이야기는 윈스턴 처칠이 영국 수상으로 있던 당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로, 영국이 왜 모범적인 법치국가인가에 대해 충분한 답변이 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디케는 질서와 율법의 여신인 테미스와 신들의 왕인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디케는 왼손엔 저울을, 오른손엔 칼을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저울은 공평하고 엄정한 법의 기준을 상징하고, 칼은 법 집행의 엄격함과 강력한 권위를 상징한다.

그런데 디케에겐 저울과 칼을 들고 있다는 점 외에도 독특한 특징이 한 가지 더 있다. 눈이 안대로 가려져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정의의 여신이 어떠한 편견이나 사사로움 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한 태도로 정의를 실현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그래서 정의의 여신의 이름인 디케는 그리스어로 ‘법’과 ‘정의’를 뜻한다. 그리스 신화의 영향을 받은 로마 신화에서는 유스티치아가 정의의 여신으로 등장하는데, 이 역시 로마어로 ‘정의’를 의미한다. 영어에서 ‘정의’를 뜻하는 ‘Justice’가 바로 유스티치아에서 비롯된 말이다.

법 앞에 평등의 의미

정의의 여신인 ‘디케’의 이름으로부터 법과 정의라는 말이 유래된 것처럼 서구문화에서 법과 정의는 서로 밀접한 관련을 가진 개념으로 인식되어 왔다.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법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정의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말은 모든 사람이 법 앞에 동일한 권리를 보장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법 앞에서는 누구라도 어떠한 특권이나 특혜를 받을 수 없으며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오직 법에 의해, 법대로만 처벌받아야 한다.

최승노 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choi3639@gmail.com
최승노 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choi3639@gmail.com
■기억해주세요

개인이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라는 권리도 타인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즉, 법치 안에서라야 정의롭게 보호되고 유지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법치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반드시 선행돼야 할 기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