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기차가 한국 시장을 서서히 잠식하고 있다. 전기버스 시장은 40% 가까이 가져갔고 이제 승용차까지 넘보고 있다.

압도적 가격경쟁력은 중국 전기차의 가장 큰 무기다. 거대 내수시장에서 비축한 자금을 재투자해 품질도 나날이 향상되고 있다. 작년 말 중국 니오(NIO)가 공개한 신차 'ES6'는 현존 기술을 망라한 20종의 안전사양이 탑재됐다. 그런데도 가격은 미국이나 유럽 전기차의 절반 정도인 3천800만 원으로 책정됐다.

시장조사업체 EV세일즈에 따르면 지난해 전기차 판매량 상위 10개 기업 중 절반을 중국이 차지했다. 1위 미국 테슬라(24만5천240대)와 2위 중국 BYD(22만9천338대)의 격차는 1만5천여 대에 불과했다. 현대기아차(9만860대)는 8위를 기록했다.'

◇전기버스 잘 나가니 전기승용차도 욕심
지난해 국내 전기버스 시장에서 중국산 비중은 40%에 육박했다. 현재 BYD, 중퉁자동차, 하이거, 둥펑자동차 등이 진출해 있는 가운데 중국 4대 업체인 베이징자동차그룹(BAIC)도 최근 환경부 인증을 통과했다.

국산 대형 전기버스는 대당 4억 원이 넘는다. 하지만 중국 업체들은 최대 1억 원가량 낮은 3억 원 초중반 대에 동급의 제품을 내놓고 있다. 환경부와 국토교통부,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을 다 받으면 실제 구매가는 3천만~4천만 원대로 뚝 떨어진다.

'선롱 사태'로 생겨난 중국 버스에 대한 불신도 많이 누그러진 상황이다. 2013년 한국에 진출한 선롱버스는 잦은 결함으로 리콜을 되풀이하다가, 2016년 사후지원 대책 없이 갑자기 철수해버렸다. 하지만 최근의 중국 업체들은 버스를 구입한 운수회사에 정비인력을 상주시키고, 배터리와 구동부품은 폐차 때까지 보증하며, 충전소 설치비도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승용차와 달리 자주 충전할 수 있는 버스 특성상 낮은 배터리 성능도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국 시장은 중국 업체들이 탐낼만한 규모가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 한국 진출에 적극적인 이유는 내연기관차 기술력이 높고 지리적으로 가까우며 자동차 시장이 성숙한 한국이 테스트베드(시험대)로 제격이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중국 기업들은 전기승용차 시장의 문도 두드리고 있다. 둥펑자동차는 최근 정비업체 114곳을 선정해 교육을 마쳤고, 연내 전기SUV 출시 계획도 밝혔다. 장안자동차도 최소 20년 이상 함께할 한국 협력사를 물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무늬만 '메이드 인 코리아' 전기차 나온다
국내 초소형 전기차 시장은 지난해 2천여 대에서 올해 6천여 대로 세 배가 될 전망이다. 공공기관의 수요가 크게 늘어서다. 그런데 대부분 차량의 알맹이가 중국산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2019 서울모터쇼'에 참여한 국내 초소형 전기차 업체 5곳의 차량 10종은 플랫폼(차량 뼈대)이 전부 중국산이다. 두 업체를 제외하면 배터리도 중국산이고 생산도 중국 공장이다. 사실상 무늬만 '메이드 인 코리아'(한국산)인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초소형 전기차 회사는 거의 중소기업"이라며 "기술이 부족하고 자금이 넉넉지 않아 중국산을 외면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밝혔다.

중국 전기차 업계는 이제 한국 공장 확보에도 나섰다. 최근 한국GM 군산공장을 인수한 MS컨소시엄에는 '중국의 테슬라'로 불리는 퓨처모빌리티가 참여했다. MS컨소시엄은 중견 부품업체 MS오토텍 등 국내 부품사들이 주도했지만, 자금의 상당 부분을 퓨처모빌리티가 댄 것으로 알려졌다. 군산공장은 전기차 생산기지로 변모해 2021년 5만 대를 시작으로 2025년 14만 대 양산 규모를 갖출 예정이다.

또한 쑹궈모터스는 국내 SNK모터스와 합작해 새만금에 연 10만 대 규모의 전기차 생산기지를 구축할 계획이다. 체리자동차도 한국 나노스와 손잡고 새만금에 연 5만 대를 제조할 수 있는 전기차 공장을 세울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산 부품을 들여와 한국에서 조립만 하면 낮은 관세로 인한 가격경쟁력과 '한국산'이라는 신뢰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며 "국내 부품사들에 돌아갈 이득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영대 기자 Lonafr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