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스스로 불법현수막 내거는 구청
지난 17일 서울시 도시빛정책과 소속 불법 현수막 단속반과 현장 동행취재에 나섰다. 중랑구에 있는 사가정역 사거리 부근에 도착하자 대로변을 가득 메운 현수막들이 눈에 들어왔다. 중랑구청에서 여는 ‘행복농장 행사’ 안내부터 서울시가 주관하는 ‘서울도시농업문화여행’ 등 정부 행사를 홍보하는 내용이지만 모두 지정된 게시 위치를 벗어난 불법 현수막이다. 단속팀은 “불법 현수막의 상당수가 공공기관에서 내건 것”이라고 혀를 찼다. 이날 단속반이 수거한 불법 현수막 10개 중 6개가 행정기관에서 붙인 것이었다.

서울시와 각 구청이 지난달 적발한 불법 현수막 현황을 보면 철거한 909개 중 399개가 행정기관에서 설치한 것이다. 전체의 3분의 1이 넘는다. 관할지역 내에서 불법 현수막을 단속할 권한과 책임이 있는 구청이 오히려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데 앞장선 셈이다. 현장에 함께 나선 시청 단속반도 “구청의 불법 현수막을 수거하는 게 주된 일”이라며 “구청이 불법인 걸 뻔히 알면서도 붙이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옥외광고물관리법은 신고하지 않고 현수막을 설치하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과태료를 부과할 권한이 각 구청에 있다 보니 구청이 내건 불법 현수막은 사실상 단속되지 않는 실정이다. 보다 못한 서울시는 2016년부터 자체 불법 현수막 단속반을 가동해 이를 철거하고 있다. 하지만 10여 명 남짓한 인원으로 서울 시내 25개 구를 샅샅이 단속하긴 버겁다는 게 단속반의 설명이다.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다. 구청은 민간인이 붙인 상업용 현수막은 법대로 처리하면서 자신들이 설치한 불법 현수막은 어물쩍 넘어가는 일이 잦다. 구청은 공익적 목적을 감안해야 한다고 항변한다. 한 구청 관계자는 “구청이 붙이는 현수막 중에는 공공 캠페인이나 주민에게 필요한 행정을 안내하는 내용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스로 불법 현수막을 내거는 구청이 단속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지난해 서울시가 수거한 불법 현수막은 51만 개에 육박한다. 서울에 불법 현수막이 넘쳐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