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기업들의 경영 애로사항을 청취할 때마다 '기(氣)'를 살려주겠다고 호언장담 한다.


지난해 10월 세계은행이 세계 190개 국가를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2018년 기업환경평가 결과'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뉴질랜드(1위), 싱가폴(2위), 덴마크(3위), 홍콩(4위)에 이어 가장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가진 나라로 평가됐다(5위).


하지만 현실적 측면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기업들의 '기'를 팍팍 살려주는 정책들을 만들고 규제를 푸는 등 우호적인 경영환경을 만들어 제공하고 있는 것일까. 대한민국이 세계은행의 조사결과처럼 세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기업친화적 환경을 가진 나라일까.


자꾸 고개를 가로젖게 만드는 이유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평균 수명이 그리 길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100년 이상 장수하는 기업은 고작 8개. 200년을 기준으로 하면 단 한 개도 없다.


경기침체와 변화하는 경제환경에 능동적인 대응에 실패, 기업들이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도 많지만 최근 기업들은 가혹하다는 표현이 정확하게 들어맞을 정도의 상속세 문제가 기업의 장수를 가로막고 있는 요인이라는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는 기업들의 원활한 승계 지원을 위해 일정 규모 이하 기업에 대해서는 고율의 상속세를 피해 나갈 수 있는 '가업상속공제'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장수기업'을 만들어 기업들이 오랜 기간 존속하며 일자리 창출 등 경제전반에 순기능을 하도록 지원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도.


일본과 독일 등 주요국가들도 유사한 공제제도를 도입해 운용하고 있다.


다만 제도의 취지는 같지만 운영방식에선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후관리(공제적용 요건)가 타국 제도에 비해 유난히 까다롭고 엄격하다 보니 활용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이로 인해 중견기업 78% 이상이 '가업승계 계획이 없다'는 조사 결과가 이를 대변해 주고 있다.


장수기업이 많은 독일, 일본은 지나친 요구가 붙지 않는다.


단순히 개인의 부를 이전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사업 확대와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에 무게를 둔다. 국가별 경제환경이 다를 수밖에 없지만, 일본 3만3069개·미국 1만2780개·독일 1만73개 등 100년 이상 장수기업 숫자를 보고 있자면, 대한민국의 현실이 민망할 정도다.



장수기업 많은 나라, '가업상속공제' 어떻게 활용하나


애초 한국의 가업상속공제는 독일 제도를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의 경우 적용대상에 특별한 제한이 없다. 피상속인의 10년 이상 가업영위나 상속인의 가업종사 등은 요건에 해당되지 않으며, 피상속인 지분율도 우리나라의 50%(상장기업 30%)에 비해 독일은 25%로 크게 낮은 형태다.


가업상속공제를 받은 이후에도 5년 내지 7년 정도만 가업이나 가업 재산을 유지하면 된다. 한국의 10년에 비해 짧다. 고용유지 요건도 '급여총액'을 기준해 5년 400% 또는 7년 700% 유지가 요건이다. '고용'을 기준으로 10년 평균 100%(중견기업 120%) 유지를 요건으로 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제도보다 기간, 비율 측면에서 엄격하지 않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지난 2014년 "가업상속공제제도는 단순한 부(富)의 이전이 아니라 기업 존속과 일자리 유지라는 사회적 이익의 실현을 목적으로 한다"고 판시했다.


한국의 제도가 '부자감세'라는 시기 질투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독일의 관점을 들이대지 못할 이유는 없다. 세제혜택을 받는 '반대급부'를 명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독일은 일자리 유지라는 목적을 달성하고자 급여총액 요건을 유지시켰다. 해당 기업이 경제상황에 따라 더 생산적이고 고임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도 있다는 '고용신축성'을 갖도록 지원하기 위한 차원이다.


이에 한국도 정규직에 한정되어 있는 '일자리 수' 유지보다는 급여총액 유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목소리가 나온다. 이러한 요건 전환이 기업경영에 저해되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한국경제연구원)도 있다.


일본은 세계적인 '장수기업의 천국'로 꼽힌다. 창업한 지 1000년 이상 된 회사가 7개고 500년 이상은 32개, 200년 이상이 3937개에 달한다. 일본의 가업상속공제 요건 중 지분 유지기간, 대표이사로 재직해야 하는 기간인 5년으로 한국(10년)보다 짧다.


한국은 주요국에 비해 공제규모(최대 500억원)는 높은 수준.


하지만 제대로 받아야 혜택이지 그게 아니면 말짱 꽝이다.


과세형평성 문제가 끝까지 걸린다면 합리적인 수준의 '우회책' 검토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일본은 상속(또는 증여)받은 비상장주식의 3분의 2를 한도로 납부유예를 해주고 있는데, 이 경우처럼 상속세 납부유예 제도를 확대적용해 주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다.


가업상속공제에 대한 완화·확대하는 세법개정안은 해마다 국회에 제출되고 있다. 올해만 하더라도 연 매출액 기준을 1조5000억원까지 올린 법안도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여전히 답보상태다. 한 조세전문가는 "가업상속제도의 입법목적이 국가 경제성장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라면 공제대상 범위를 한정하는 것보다 확대하는 것이 규모 면에서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반(反)기업 정서 담은 용어부터 바꿔야


전문가들은 기업 불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전환하기 위해선 '가업승계'라는 용어를 바꾸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가업승계가 단순한 부의 대물림이 아닌 사회적 가치가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차원에서다.


사실 부정적인 어감이 기업들의 경영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대표적으로 세법상 용어인 '접대비'다.


기업들의 정상적인 영업활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성격의 비용임에도, 유흥과 오락위주의 부정적 접대 이미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접대비 용어의 이미지를 묻는 질문에 부정적(35.7%)이라는 응답이 긍정적(14.0%)에 비해 높았다.


김용민 연세대 법무대학원 교수는 "지금은 가업상속공제가 요건이 너무 엄격한데, 이는 용어로 인해 불거진 측면도 크다"면서 "용어부터 바꾸고 원활한 기업상속 지원이 필요하다는 시각으로 접근하면 좋은 제도의 보완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종성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도 "가업상속공제를 운영하는 취지가 국가경제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가업뿐만 아니라 기업도 상속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며 "이런 측면에서 여러 전문가들이 가업상속공제 대신 '기업상속공제'로 명칭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 주장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조세일보 / 강상엽 기자 yubyoup@jose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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