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인 등록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등 '회계법인 대형화'를 유도하는 정부 정책 시행이 코앞에 다가왔지만 회계법인들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하다.


회계법인들이 그나마 여유를 찾을 수 있는 4월이 되면 본격적인 '합종연횡'이 시작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지만, 합병을 공개적으로 선포한 이후 실무적인 진행과정에서 어그러지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어 상황을 낙관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 20일 기준 공인회계사회에 따르면 20일 현재 지난해 말부터 성사된 회계법인 합병은 총 3곳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한길회계법인이 회계법인 2곳과 합병을 한 결과다.


지난해 11월1일 한길회계법인은 회계법인 두레와 합병해 기존 명칭인 한길회계법인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이어 12월31일에도 성신회계법인과 합병, 좀 더 몸집을 키웠다. 명칭만으로 보면 한길회계법인이 두레와 성신회계법인을 흡수·합병한 모양새.


올해는 지난 1월15일 회계법인 상지원과 대안회계법인이 회계법인 상지원·대안으로 합친 것이 처음이자 끝이다.


법인등기 등 법적절차를 마무리하지는 않았지만 언론 등을 통해 회계법인 합병을 공표한 회계법인은 이외에도 몇 군데 있다. 대표적으로 성도회계법인은 이현회계법인과 합병을 추진, BDO성도이현회계법인으로 이미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아울러 신승회계법인은 유진회계법인, 지성회계법인은 회계법인예교, 진일회계법인은 인덕회계법인과 각각 합병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당초 합병 취지와 달리 품질관리실장 선임 문제, 내부 자금관리 문제 등에 봉착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당장 봇물처럼 터질 것만(?) 같았던 회계법인 합병이 생각보다 활기차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우선 3월까지는 회계법인들의 업무가 몰려있는 시기라 합병 논의가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우리나라 기업은 결산월이 12월에 집중되어 있고, 사업보고서 제출 및 법인세 신고납부 기한이 사업 기간 종료 후 3개월이기 때문에 최소 3월말까지는 회계법인들이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때문에 합병 소식만 전하고 이와 관련한 법적절차를 마무리하지 못한 회계법인들은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이는 내달부터 실질적인 합병을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아울러 소속 공인회계사 40명 이상만 상장사 외부감사를 수임할 수 있도록 한 감사인 등록제 접수가 5월1일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이에 관심 있는 회계법인들은 4월 한 달 내 합병을 마무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합병에 관심 있는' 회계법인들에 국한된 이야기다.


감사인 등록제는 결국 상장사를 감사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인데, 중소회계법인은 애초에 상장사 감사와 관련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회계법인의 상당수가 상장사 감사에 대해 관심이 없다"면서 "회계법인에서 관심이 있다고 해도 내부 회계사들의 전체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 힘들다. 예를 들어 회계사가 20명 있고 그 중 1~2명이 상장사 감사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그냥 나가서 따로 하라는 식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장사 감사를 해봐야 머리만 아프고 IFRS 등 회계기준도 제대로 알지 못하며 금감원 관리 대상이 되는 것도 부담스러워 하는 중소회계법인들이 많다. 중소회계법인 회원은 4000명 정도 되지만 절반 이상은 아마 무관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도 당장의 합병을 이끌어 내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기업이 감사인을 6년간 자유 선임한 뒤 3년 동안은 금융당국으로부터 지정을 받는 것으로, 금융위는 올해 10월부터 매년 약 220곳의 감사인을 지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감사인이 지정되는 220곳은 빅4 회계법인(삼일·삼정·안진·한영)을 비롯한 대형회계법인에 대부분 배정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는 게 중소회계법인들의 입장.


금융위는 일부 기업에 제한적으로 적용됐던 감사인 지정제가 전면 확대되면서 회계법인을 가~마 등급으로 구분했다. 주사무소 등록회계사수 600명 이상, 감사부문 매출액 500억원 이상 등의 기준을 충족한 곳을 가군으로 분류했는데, 사실상 빅4 회계법인 이외에는 해당되는 곳이 없다.


특히 금융위는 기업이 지정감사인 등급 기준 중에서 상위등급 감사인군에 속하는 회계법인 지정 요청을 허용하기로 했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시행되더라도 대기업 대부분은 지금처럼 빅4 회계법인에 감사를 맡길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한 중소회계법인 관계자는 "어차피 빅4에게 우선적으로 감사 업무가 다 갈 것"이라며 "그러니 나머지 회계법인들은 급할 것이 없다. 주기적 감사인 등록제가 합병의 이유가 되려면 적어도 내후년 이후가 될 것이다. 소속 회계사 100명 이하인 회계법인은 올해 감사 업무를 못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괜히 품질관리 유지한다고 돈을 투자해 봐야 빈손인데 합병을 할 필요가 없다는 손익계산이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최소한 나군(소속 회계사 120명 이상)은 되어야 희망이 있는데 현실적으로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조세일보 / 이현재 기자 rozzhj@jose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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