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 박사의 인문학 산책 - 소포클레스와 민주주의 (6) 용기
독일 화가 필리프 폰 폴츠(1805~1877)의 ‘페리클레스의 장례연설’(1852년작).

독일 화가 필리프 폰 폴츠(1805~1877)의 ‘페리클레스의 장례연설’(1852년작).

전쟁과 역병에 시달린 아테네인들이 원형 극장에 앉았다. 그들은 이 끝이 보이지 않고 바닥이 없는 구덩이에서 그들을 건져줄 영웅이 무대 위에 나타나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무대에 등장한 영웅은, 실망스럽게도 모든 것을 당장 해결해 주는 ‘임시응변(臨時應變)의 신’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가 아니었다.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 왕을 새로운 형태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소개한다. 오이디푸스 왕은 신화 속에 등장하는 과거의 인물이 아니다. 소포클레스는 그를 아테네 정신의 상징으로 부각시킨다.

용기

오이디푸스는 언행일치(言行一致)의 화신이다. 단지 자신에게 다가오는 운명을 알지 못할 뿐이다. 그는 신속하고 강력하게 일을 추진한다. 그는 정치가 페리클레스가 꿈꾸는 아테네 정신이다. 페리클레스가 펠레폰네소스 전쟁 전사자들을 위한 장례연설에서 아테네의 특징을 말한다. “아테네는 자신의 의지를 행동으로 옮기려는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입니다.” 오이디푸스는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고 말한 바를 반드시 실천한다. 그는 테베를 엄습한 역병의 원인을 찾기 위해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동원시켜 진실을 밝혀낸다. 테베는 완전 무장한 보병처럼 한 걸음 한 걸음 정진하며 도시를 마비시킨 오염의 원인을 추적한다.

오이디푸스는 용감하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 황금기가 그리스뿐만 아니라 인류문명의 정점인 이유는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부유 때문이 아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캄캄한 절망 가운데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발견할 수 있는 지혜와 그 지혜의 빛을 밝히는 용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는 뻔뻔할 정도로 자신만만하고 긍정적이다. 오이디푸스는 일을 미루지 않는다. 바로 결정하고 행동하며 주위의 조언을 들으려 끝없이 질문하고 대화한다.

영웅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의 특징을 이렇게 묘사한다. “우리는 고유하다. 가장 용감한 행동을 이성적인 토론과 결합시키기 때문이다.” 페리클레스는 조그만 도시에 불과한 아테네가 거대한 페르시아 제국을 이길 수 있는 힘은 군사력이나 군사력을 기반으로 한 행운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아테네인 한 명 한 명이 남들보다 깊이 숙고할 수 있는 지적인 능력이다. 오이디푸스는 네 발로 기어 다니며 자신의 이익에 눈이 멀어 쫓아가는 어린아이도 아니고, 자신이 아니라 지팡이에 의존하는 노인도 아니다. 자신의 두 발로 당당히 걷는 ‘인간’이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인들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아테네에 거주하는 개인은 다양한 행동들을 통해 융통성과 친절함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헤시오도스는 호메로스와 함께 기원전 8세기에 등장한 그리스 최초의 시인이다. 그는 인류가 시간이 지나면서 쇠퇴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의 저서 《일들과 날들》에서 인류 역사를 다섯 시대로 구분했다. 인간이 신들과 함께 살던 황금시대에서 시작해 은시대와 청동시대, 영웅시대를 거쳐 철기시대로 마친다. 철기시대는 인간이 부모를 무시하고 형제들과 싸우며, 손님을 대접하는 환대가 사라진 불행한 시대다. 소포클레스는 헤시오도스처럼 과거를 더 이상 자신들이 돌아가야 할 황금시대로 여기지 않았다. 과거는 찬란한 미래를 위한 발판이다. 오이디푸스는 과거의 원시적인 야만에서 벗어나 도시국가라는 문명을 견인할 영웅이다.

운명

크레온은 델피에서 신탁을 받아 왔다. 역병의 원인은 테베의 선왕인 라이오스를 죽인 살인자다. 오이디푸스는 이제 그 살인자 수색에 착수한다. 테이레시아스는 장님이지만 미래에 일어날 일을 선명하게 보는 자다. 소년에 이끌려 오이디푸스 앞에 온 예언자는 자신이 본 환시(幻視) 때문에 한탄으로 발설하기를 거절한다. 그가 살인자 예언하기를 거절하자, 오이디푸스는 그를 몰아붙인다. “예언자여, 나는 너무 화가 난다. 내가 남김없이 내 생각을 말하겠다. 내가 보기에는 그대가 이 범행을 함께 모의하고 실행했다.” 범인 누명을 뒤집어쓰게 된 예언자가 급기야는 진실을 말한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내가 말하겠습니다. 당신입니다. 그 범인은 당신입니다. 도시를 역병으로 괴롭힌 당사자는 바로 당신입니다. 오염은 당신입니다.”

이 상황은 고대 이스라엘의 다윗과 예언자 나단의 만남과 비슷하다. 다윗은 자신의 부하인 히타이트 용병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겁탈했다.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우리아를 전투가 가장 치열한 전선에 보내 전사하도록 일을 꾸몄다. 예언자 나단이 다윗 왕 앞에서 이 살인죄를 폭로하면서 “당신이 바로 그 살인자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다윗은 곧바로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회개한다. 그것이 고대 히브리인들의 덕목이다. 오이디푸스는 다윗 왕과 다르다. 그는 오히려 부인한다. “그따위 말을 하다니. 어쩌면 저토록 뻔뻔할 수 있는가?”(354행)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운명을 찾는 데 적극적이다. 자신에게 떨어진 복잡한 실타래를 풀기 위해 용감하게 나선다.

"오이디푸스는 아테네인들의 창조·지적 모험의 상징이죠…자기의 운명 알지 못해도 용기와 지혜로 헤쳐나가죠"

■기억해주세요

기원전 5세기 아테네 황금기가 그리스뿐만 아니라 인류문명의 정점인 이유는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부유 때문이 아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캄캄한 절망 가운데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발견할 수 있는 지혜와 그 지혜의 빛을 밝히는 용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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