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와 개인은 누가 더 이기적

라인홀드 니부어
라인홀드 니부어
라인홀드 니부어의 명저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는 개인 윤리의 한계를 밝히고 사회 윤리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므로써 윤리학사에 큰 획을 그은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책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니부어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를 극명하게 대비하고 있다. 니부어가 이렇게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를 엄격하게 구별하고 있는 것은 사회 문제에 대한 개인 윤리적 입장을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여기서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 제목만 보고 ‘인간은 도덕적이고 사회는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다. 그가 인간을 ‘도덕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인간이란 어떤 행위를 할 때 비교적 집단적 사회보다는 타인을 배려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이익을 존중할 줄 안다는 점에서 ‘도덕적’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사회는 개인보다 훨씬 더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사회란 인종, 민족, 계급, 국가 등 개인을 넘어서는 일체의 집단을 뜻한다. 그리하여 개인이 일단 집단이 되면 집단의 이익을 위해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인 성향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니부어가 나중에 자신의 책 제목에 대해 말한 대로 ‘비도덕적 인간과 더욱 비도덕적인 사회(Immoral Man and Even More Immoral Society)’라고 붙이는 것이 책 제목으로서 더 적절하지 싶다.

개인 윤리와 정치 영역

개인과 집단의 도덕적-사회적 행위가 다르다는 니부어의 분석은 집단에는 개인적인 윤리로는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정치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니부어가 보기에 집단 관계는 윤리적 관계이기보다 힘의 역학 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정치적 관계다. 따라서 집단 사이에 작용하는 운동의 강제성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도덕성과 집단의 도덕성 간 기본적인 차이를 모르고 인간의 합리성을 고양하면 집단적 이기심을 충분히 견제할 수 있다는 당시 자유주의적 사회학자나 교육학자, 신학자들의 입장을 비판한다. 이들이 제시하는 문제 해결 방식은 ‘조정과 타협’이다. 그러나 니부어에 의하면 집단 간의 힘의 불균형 때문에 생겨난 문제는 그 힘의 불균형을 그대로 두고서는 해결할 수 없으며, 이때 조정과 타협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합리성이란 기득권층의 합리성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의 도덕성을 함양해 자선을 베풀게 함으로써 사회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개인 윤리와 사회 윤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허황된 낙관주의를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일제 강점기에 한 일본인 지주가 조선인 소작농의 굶주림을 보았다. 일본인 지주는 소작농을 불러다가 배불리 먹이고 약간의 곡식을 내주었다. 이로 인해 소작농은 일시적으로나마 최악의 상태를 모면할 수 있었고 지주의 행위에 한없는 고마움을 갖게 되었다. 여기서 일본인 지주의 자선 행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물론 개인 윤리 차원에서 일본인 지주의 자선 행위는 선행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 윤리 차원에서 보면 그것은 일반적 의미의 자선과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그 일본인 지주가 자선을 해야 할 만큼 조선 소작농의 빈곤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했다면, 그는 소작 농민의 처우 개선을 위한 가장 중요한 소작료 인하와 같은 방식을 통해 소작농의 빈곤 문제를 해결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인 지주 집단의 편에 서서 소작료 인하를 요구하는 조선 소작농들의 소작쟁의에 대해 조금도 양보하지 않으면서 개인적으로 자선 행위를 했다면, 그의 자선은 오히려 일제의 잔악한 수탈 행위에 대한 반감을 감소시킴으로써 일제 강점기의 잘못된 수탈 구조를 은폐하거나 호도하는 악행일 수 있다.
[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59)] 니부어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집단 간 투쟁과 강제력

집단 사이에는 집단적 이기주의로 인해 종교와 교육, 혹은 이성과 양심과 같은 개인 윤리적 접근으로는 갈등을 해결할 수 없으며, 사회 집단이 지닌 이와 같은 강력한 이기심을 꺾으려면 불가피하게 집단 간의 투쟁과 같은 강제력을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니부어는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강제적 수단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강제력 동원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사회 집단의 악을 견제하기 위해 강제력을 사용할 경우 당장은 폭력을 억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결과 다른 폭력이 나타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대항 세력이 형성되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당시 피억압 집단은 반드시 정치 권력을 소유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들을 억압하려는 집단에 힘으로 맞서야 한다는 것이 니부어가 제시하는 해법이다.

● 기억해주세요

[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59)] 니부어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니부어가 보기에 집단 관계는 윤리적 관계이기보다 힘의 역학 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정치적 관계다. 따라서 집단 사이에 작용하는 운동의 강제성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도덕성과 집단의 도덕성 간 기본적인 차이를 모르고 인간의 합리성을 고양하면 집단적 이기심을 충분히 견제할 수 있다는 당시 자유주의적 사회학자나 교육학자, 신학자들의 입장을 비판한다.

김홍일 < 서울국제고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