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나진항은 대초도, 소초도 등 방파제 역할을 하는 두 개의 섬을 끼고 있는 천혜의 부동항이다. 연간 화물처리능력은 총 680만t에 달한다. 관계자 외 출입을 엄금하는 표지판 너머로 석탄 더미가 야적장에 쌓여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제공(지난달 초 촬영)
북한 나진항은 대초도, 소초도 등 방파제 역할을 하는 두 개의 섬을 끼고 있는 천혜의 부동항이다. 연간 화물처리능력은 총 680만t에 달한다. 관계자 외 출입을 엄금하는 표지판 너머로 석탄 더미가 야적장에 쌓여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제공(지난달 초 촬영)
중국 훈춘시에서 자동차로 40여 분을 달리면 ‘일안망삼국(一眼望三國)’의 명소로 꼽히는 팡촨(防川)이 나온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경수비대가 삼엄하게 지키던 이곳은 러시아·중국·북한 3국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관광지로 변신하고 있다. 중국의 관심은 국경 너머로도 뻗어 있다. 옌볜자치주는 올 4월부터 훈춘~팡촨 2차선 도로 확장 공사에 들어갔다. 나진특별시 등 북한 접경도시와 이어지는 도로다. 북한 나진항을 빌려 동해로 나가려는 중국의 차항출해(借港出海) 전략이 본격 가동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나진항 개발 장악한 중국

한반도 북방 대륙은 지구상 마지막 남은 냉전의 현장이다. 이곳에선 최근 치열한 ‘물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삼엄했던 국경의 경계를 넘어 길이 열리고, 사람과 물자의 흐름이 거세지고 있다. ‘북방경제’라는 거대한 경제권역의 탄생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한국으로선 1990년 ‘북방외교’ 이후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처음 맞는 기회다.

북방경제권은 중국의 동북3성, 연해주를 포함한 러시아 극동 일대와 한반도를 아우른다. 바다로 눈을 돌려 환동해권에 이르면 그 영역은 일본으로까지 닿는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육로이자 유라시아를 아메리카 대륙까지 이어줄 북극항로의 출발점이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짐 로저스가 북방경제권을 최대 투자처로 꼽는 이유다.

지난 4월 ‘판문점 선언’을 시작으로 6월의 미·북 정상회담 등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물꼬가 트이자 중국은 동해를 향한 진군을 서두르고 있다. 가장 낙후한 지역인 동북3성을 태평양과 연결해 중국 중심의 육·해상 ‘신(新)실크로드’로 불리는 ‘일대일로’ 전략을 완성하기 위해서다. 중국이 가장 주목하는 곳은 나진항이다. 자루비노 등 러시아 극동 항구들은 겨울이면 얼음으로 변한다.

한반도 북부의 부동항을 손에 넣기 위해 중국은 2016년 250억원가량을 들여 신두만강대교를 건설했다. 취한허(圈河)세관에서 나진항까지 약 54㎞를 연결하는 ‘국경 인프라’다. 둥먼(冬門)과 나진항을 연결하는 철로도 중국 자본으로 보수 중이다. 중국이 최종적으로 원하는 건 나진항까지 고속도로와 고속철을 놓는 것이다.

러시아 석탄 운송을 위해 개발된 3부두를 제외하면 나진항은 중국의 ‘관할권’에 있다는 게 중론이다. 안국산 옌볜대 조선반도연구원 경제연구소장은 “1·2호 부두는 중국 촹리그룹에 임대됐고 4·5·6호 부두도 중국 정부가 건설권과 사용권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한반도 북부 부동항을 확보하라"… 中·러, 나진港 진출 '속도전'
◆나진은 남·북·러 합작사업의 관문

극동개발을 통해 경제부흥을 꾀하는 러시아도 북방경제 패권을 쥐기 위한 주도권 경쟁에 뛰어들었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핵심 발판이다. 석탄을 비롯해 시베리아에서 캐낸 에너지와 자원을 나진항을 통해 바닷길로 한국 등에 수출하는 사업에 러시아는 3억달러를 투자했다. 정작 수요자인 한국이 발을 빼면서 러시아는 거금을 날릴 판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러 3각 협력 사업을 강조하는 등 상황이 바뀌자 러시아 정부는 나진에 상주 직원을 파견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나진항을 통한 러시아 석탄의 환적 수출을 재개한 것이다. 러시아 하산역에서 나진항으로 이어지는 총연장 54㎞의 철도가 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안드레이 타라센코 극동 연해주 주지사 권한대행은 “(나진항) 부두 시설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밝힌 대북 제재 대상이 아니다”고 발표했다.

나진항 개발은 한국으로서도 매우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신의주만 해도 중국 단둥경제권의 ‘우산’ 아래 있어 한국의 역할이 제한적이다. 나진항은 한국의 대륙 진출을 위한 유일한 ‘물류 루트’인 셈이다. 성원용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부 교수는 “남·북·러 합작사업의 시작이 나진항”이라며 “환적항으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주변 배후 단지를 개발해 제조공장 등을 들일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고, 무엇보다 관광자원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옌지·훈춘·블라디보스토크=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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