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전기자동차(EV)용 전지를 축전용으로 재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유럽에서 확산하고 있다. 일본 닛산(日産)자동차와 독일 다임러사 등은 성능이 나빠진 EV용 전지를 전력공급망을 안정시키기 위한 축전시스쳄에 재활용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열화해 성능이 나빠지지만 축전용으로 쓰는 데는 문제가 없는 EV전지 재활용 사업은 일본에서도 시작됐다. EV용과 축전용 전지 공용화가 이뤄지면 비용억제가 가능해 전기차 보급 확대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3일 전했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축구경기장 '요한 크라이프 아레나'에서는 올여름 대규모 축전 시스템이 가동을 시작했다. 아레나 간부는 "자동차에 탑재돼 있던 걸 옮겨 왔다"면서 "지속가능한 경기장이라는 목적에 딱 들어 맞는다"고 말했다. 이 경기장의 축전 시스템은 닛산자동차 전기차인 '리프'에서 사용이 끝난 전지 148대분을 이용하고 있다. 출력 3메가와트로 상업시설용 축전시설로는 유럽 최대다. 수천 가구가 쓸 수 있는 전력을 저장할 수 있다. 행사가 있을 때 비상용 전원으로 쓰며 보통 때는 인근 지역의 전력공급망 안정용으로 활용한다.

다임러사는 독일 서쪽 에르페링센에 소형차 '스마트'의 EV에서 쓰던 전지를 재활용해 출력 9메가와트 짜리 축전지 시스템을 가동했다. 3월에 폐쇄된 석탄화력발전소 부지내에 설치해 발전소 대신 전력이 부족할 때 보관한 전기를 공급한다.

EV전지는 세월이 지나면 열화해 항속거리가 짧아지지만 출력은 크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고정된 장소에 놓아두는 축전지로 쓰는 데는 문제가 없다. 암스테르담 아레나의 경우 전지가 고장 나더라도 닛산이 10년간 교환을 보증한다. 기업은 신품을 사용할 때 보다 초기투자를 30% 정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다임러와 닛산은 충전소와 축전 시스템 사업을 하는 신생기업인 독일 모빌리티 하우스의 기술을 이용하고 있다. 독일 BMW도 자사 공장 등에서 EV용 전지를 재활용하고 있다. 스웨덴 전력회사인 바텐폴(Vattenfall AB)은 영국 풍력발전소에 사용이 끝난 EV전지를 재활용한 축전시스템을 병설해 발전량 변화가 큰 풍력발전의 전력 조정용으로 쓰고 있다.

축전시스템을 EV전지 재활용에 도입한 것은 의미가 크다. 국제재생가능에너지기구(IRENA)에 따르면 세계 축전지 용량은 전력망용만도 2016년 1기가와트 미만에서 2030년에는 250기가와트로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자동차 업체에도 메리트가 크다. 폐차 시 전지는 자동차메이커가 회수해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지를 재활용해 코발트 등의 희소자원을 뽑아내는 기술은 유력 비철금속 업체들이 확보하고 있지만 자동차메이커가 직접 이용하기에는 아직 비용이 많이 든다.

전기차 선구자격인 닛산의 리프는 발매 8년만에 세계적으로 34만대 이상이 판매됐다. 자동차는 15년 정도면 폐차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전지 재활용 체제 마련이 업계의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일본 국내에서도 스미토모(住友)상사가 나가노(長野)현에서 닛산 전기차 리프의 중고전지를 태양광 발전 전기 축전용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스미토모는 공장용으로 활용하는 신사업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도요타자동차와 닛산 등 자동차 메이커들도 10월부터 폐차에서 리튬이온전지를 공동으로 회수해 처리하는 시스템을 가동한다. 메이커가 전지를 같이 운송하거나 모아서 한꺼번에 재활용처리업자에게 처리를 의뢰하는 방법으로 효율을 높여 비용을 절감한다는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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