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극장골' '침대축구'도 단어가 될 수 있을까?
신어는 그 시대 사회상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소중한 말글 자산이다. 다만 신어는 새로운 말일 뿐 아직 정식 단어가 아니다. 수많은 신조어 가운데 그 말에 대한 '사회적 신뢰성'이 높은 것만이 단어의 지위를 얻는다.

‘①상대 선수와 적극적으로 몸싸움을 한다. ②일단 부딪치면 넘어져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몸부림친다. ③드러누운 상태로 심판의 눈치를 살피며 편안히 기다린다. ④상대의 반칙을 얻어내지 못할 땐 즉각 일어나 공을 향해 돌진한다.’ 일명 ‘침대축구’의 공통적인 속성이다. 대개 자신의 팀이 이기고 있을 때 시간을 끌기 위해 쓰는 이기적 수법이다.

경기 재미 더하는 비공식 경기용어들

국제적 규모의 큰 대회나 행사는 신어도 함께 탄생시킨다. 러시아월드컵에서도 침대축구를 비롯해 극장골, 늪 축구 같은 말이 다시 한번 위력을 떨치며 보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침대축구’는 이번 대회에서 처음 나온 말은 아니다. 일상의 눈으로는 낯설지만, 우리 곁에 등장한 지 벌써 10여 년 된 말이다.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는 ‘축구에서, 자기 팀에 유리한 점수로 경기가 진행되고 있을 때, 상대 팀 선수와의 작은 몸싸움에도 고의적으로 넘어져 아픈 척하며 시간을 끄는 행위’로 올라 있다. 우리말샘은 어떤 말이 새로 쓰일 때 국민 누구나 참여해 올릴 수 있는 개방형 사전이다. 단어의 지위를 얻어 정식으로 국어사전에 오르기 전 단계인 셈이다.

침대축구가 경기를 지루하게 하는 요소라면 ‘극장골’은 축구의 묘미를 더해주는 말이다. ‘종료 직전 승부가 거의 확정된 상황에서 승부를 뒤집는 결정적인 골’(네이버 오픈사전)을 말한다. 막판에 극적 반전을 가져오는 게 영화 같다는 데서 생겨났다.

이 역시 정식 단어는 아니다. ‘우리말샘’에도 아직 오르지 않았다. 네이버 뉴스 검색으로는 2013년 3월 ‘극장골’이란 말이 처음 등장한다. ‘극장축구’란 말도 쓰인다. 이는 박진감 넘치는 공방과 반전 등 재미 요소를 갖춘 축구를 펼칠 때 쓴다.

이들은 축구라는 전문 분야에서 제한적으로 쓰이는 말이다. 이 말이 살아남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한때의 유행어로 끝날 수도 있고 지속적으로 쓰일 수도 있다. 이보다 좀 더 대중적으로 우리 일상에 파고든 신어는 ‘-스럽다’ 파생어다.

빈도수, 지속성 등 따져 정식 단어 돼

대표적인 게 ‘검사스럽다’이다. 이 말은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 탄생했다. 정부 출범 초 대통령과 검사들 간 대화를 보고 네티즌이 만들었다. ‘논리도 없이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며 윗사람에게 버릇없이 덤비는 행태’를 비꼰 말이다. 이 ‘-스럽다’ 조어는 생산력이 매우 커 그 뒤로도 ‘부시스럽다’ ‘놈현스럽다’ 등 많은 신어가 생겨났다. 특히 ‘놈현스럽다’(기대를 저버리고 실망감을 주는 데가 있다)는 2007년 청와대에서 “국가원수에 대한 모독”이라고 발끈한 데 이어 국정감사장에서 거론되는 등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켰던 말이다.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극장골' '침대축구'도 단어가 될 수 있을까?
신어는 그 시대 사회상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소중한 말글 자산이다. 다만 신어는 새로운 말일 뿐 아직 정식 단어가 아니다. 수많은 신조어 가운데 그 말에 대한 ‘사회적 신뢰성’이 높은 것만이 단어의 지위를 얻는다. 표준어가 된다는 뜻이다. 이때의 신뢰성이란 그 말의 사용 범위(지역별, 세대별, 계층별 등), 빈도수, 지속성, 품위 여부 등 엄격하고 다양한 잣대를 통과할 때 비로소 확보된다. 그만큼 어떤 말이 단어로 ‘등극’하기까지는 길고도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작업의 전반을 관장하는 기관은 국립국어원이다. 물론 이는 공인된 기구라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고, 내용적으로 어떤 말이 단어가 되느냐 아니냐는 전적으로 언중, 즉 우리말을 쓰는 국민에게 달려 있다. 국어원은 국민의 언어 사용 실태를 파악해 단어의 지위 부여 작업을 대행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