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보다 작은 크기의 나이키 농구화를 실제 크기의 1/10로 줄여놓았다. 펑퍼짐한 후드 티와 반쯤 내린 청바지도 크기만 작을 뿐 작은 단추 하나까지 똑같이 재현해 냈다. 덕후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피규어로 개성 강한 ‘힙스터’들을 사로잡은 남자가 있다. 쿨레인 스튜디오의 이찬우(46) 작가를 만났다.▲ 그림 못 그리는 `애니메이터`원래는 화학을 전공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았다. 성적에 맞춰 전공을 선택했고 안동에서 대학을 다녔다. 큰 불만은 없었다. 지금이야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세상 각지의 다양한 소식을 접하지만 그 때 까지만 해도 TV속 세상이 전부였다.25년 전 이 작가에겐 애니메이션이 그랬다. 당시 애니메이션이란 그저 어린이들이 보는 만화 영화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매력에 눈을 뜨게 된 건 대학교 축제에서였다."서울에서 온 학생들이 아키라(일본 애니메이션)를 틀어줬는데 기존에 보던 애니메이션이랑 완전히 다른 거예요. 너무 재밌는 걸 보면 시간이 짧게 느껴지잖아요. 2시간짜리 영화가 10분도 안 지난 것처럼 느껴졌어요."처음으로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걸 확인한 순간이다. 그 날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찼다. 하지만 어딜가서 배워야 할 지,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 지 알 수 없었다.그러다 90년대 후반이 되면서 애니메이션을 배울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나라에서도 애니메이션이 황금산업이 될 거라며 지원해주던 시기였다. 애니메이션 제작자를 꿈꾸며 서울로 상경했다. 문제는 이상과 현실 속 간극이 너무 컸다는 점이다."신림동에 있는 애니메이션 외주업체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6개월 만에 아키라 같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는 힘들다는 걸 깨달았어요. 당시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건 영화나 게임 예고편을 만드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거든요. 심지어 전 미술을 전공한 게 아니라 제 입지는 더 좁을 수밖에 없었죠."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한계가 명확히 보였지만 그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마침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쓰임새가 늘어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리지 않더라도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머릿속 그림을 구현해 낼 수 있는 무한 가능성의 시대가 열린 셈이었다."업계에서 살아남고 싶었어요. 디지털 제작부서로 옮겨와 일을 배우는데 머릿속 생각을 바로 3D 그래픽으로는 만들 수 있겠더라고요."▲ `힙`한 피규어 만드는 이유2D와 3D 애니메이션 작업을 해 가며 나름대로 전문성을 키웠지만 그의 가슴 한쪽엔 풀리지 않는 갈증이 남았다. 자신의 이름을 건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싶어 업계에 뛰어든 만큼 내 작품에 대한 열망이 컸다. 피규어는 이 작가의 창작욕을 해소하는 창구였다."처음엔 취미로 하나씩 만들기 시작했어요. 국내엔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없어서 외국책과 동영상을 보면서 독학했죠. 3년 동안 100개가 넘는 캐릭터를 습작하면서 만드는 과정을 손에 익혔습니다."이 작가는 자신이 만든 작품들을 하나 둘 주위 사람들에게 선보였다. 국내에도 수준급의 피규어 제작자가 있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져나갔다. 2007년 나이키 코리아에서 기념 전시에 쓸 신발 피규어를 만들어 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신발 100켤레와 옷 100여벌을 만들어 전시하면서 본격적인 피규어 디자이너로 데뷔했다.올해로 마흔 여섯. 아재(아저씨의 줄임말)로 불리기에 어색하지 않은 나이지만 젊은 사람들보다 유행에 민감하다. 농구화, 스케이트보드, 비보이 등 자신보다 20살은 어린 친구들이 좋아하는 문화와 소통한다. 피규어 구매자들의 취향을 이해하기 위해 연구하다 보니 얻어진 결과다."스트릿 문화에 원래부터 관심이 있던 건 아니었어요. 다만 제작 의뢰가 들어오는 사람들의 취향에 맞추다보니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거죠. 비보이를 작업할 땐 직접 춤을 추진 못하더라도 그들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춤을 추는지 눈으로 확인해야 좀 더 잘 만들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죠."▲ NBA가 반한 아재, 그의 꿈은 `ing`처음부터 큰 돈을 벌 수 있던 건 아니다. 생활이 어려워 몇 년 동안은 기존에 하던 애니메이터 일을 병행했다. 다만 꾸준히 새로운 작업을 계속해 나갔던 게 다양한 업체에서 제안이 들어오게 된 원동력이 됐다."농구하는 원숭이 캐릭터를 만들어 꾸준히 활동을 했어요. 그러다 NBA에서 그걸 보고 선수들을 캐릭터화 시켜줄 수 있겠냐는 연락이 왔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피규어를 소비하는 시장은 크지 않아요. 유명하다고 일거리가 많은 것도 아니에요. 다만 하나를 만들면 꼬리를 물 듯 다음 작업이 들어오기 때문에 게을러질 수 없죠."대한민국 1세대 피규어 아티스트로 알려져 있지만 어릴 적 그의 꿈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직업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피규어 아티스트라고 특정지어 소개하지 않는다. 대신 캐릭터 디자인과 제작, 그리고 전체적인 디렉팅을 책임지고 있다고 말한다."이제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더라도 짧은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왔어요. 저는 피규어를 통해 제가 하고 싶었던 애니메이션 작업의 기초를 다진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은 다른 업체들과 협업을 통해 어릴 적 제 꿈을 조금씩 현실화 시켜나고 있습니다."《`THE메이커스`는 기술을 활용해 스스로 만들어내는 창작자, 장인 등 메이커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유오성기자 osyou@wowtv.co.kr한국경제TV 핫뉴스ㆍ티몬, 초소형 전기차 `다니고` 100대 선착순 판매 개시ㆍ강성훈 박소현, 카메라 꺼진 줄 모르고 포옹하다…`들통?`ㆍ개리 아내, `아무도 몰랐다`…10살 연하 리쌍컴퍼니 직원?ㆍ손예진 나이?…"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ㆍ낸시랭 “올해 한국 떠날 것, 다른 나라서 인생 2막”ⓒ 한국경제TV,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