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주 52시간 근로제 논란] 근로자 휴식권 보장되지만 급여 줄어들 수밖에 없어 부담
공부를 많이 한다고 처벌받을 수 있을까. 엉뚱한 얘기 같지만 비슷한 내용의 법이 있다. 1주일에 정해진 시간을 넘겨서 일을 하면 안된다는 내용의 법이다. 이 법의 이름은 근로기준법. 지금은 1주일에 68시간 넘게 일하면 안 된다고 규정돼 있지만 오는 7월부터는 주 52시간 이상 일하면 안된다.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기준은 아니다. 우선은 직원이 300명 이상인 직장에 다니는 사람에게만 해당되지만 직원 수가 많은 곳부터 연차적으로 시행된다.

왜 이런 법이 생겼을까. 기업들이 직원의 휴식권을 보장하지 않고 무리하게 일을 시킬까 우려해서 만들어진 법이다. 역사를 보면 법이 정하는 근무시간은 계속 짧아졌다. 근로자들이 충분한 휴식을 취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요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데 근로시간 단축은 명암이 엇갈린다.
[Cover Story-주 52시간 근로제 논란] 근로자 휴식권 보장되지만 급여 줄어들 수밖에 없어 부담
근로자 개인 시간 늘지만 급여는 줄어

근무시간이 줄어들면 어떤 일이 생길까. 한국은 장시간 근무하는 관행이 있는 나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멕시코 다음으로 근로시간이 길다. “새벽 별을 보면서 출근하고 달을 보면서 퇴근한다” “집에서 9시뉴스를 보는 게 소원이다” 등 자조섞인 농담이 직장인 사이에선 유행이다. 대선주자가 ‘저녁이 있는 삶’이란 구호를 들고 나오자 직장인들이 환호했던 것도 같은 이유다.

근무시간을 선제적으로 단축한 기업에 다니는 직원 중 상당수는 변화에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대기업 직원은 “저녁시간을 활용해 자기계발을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근로시간을 줄여서 오후 3시에 퇴근하도록 했더니 처음에는 직원들끼리 회식만 잔뜩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니 제각기 취미를 갖기 시작했다. 일하는 시간은 줄었지만 근무시간 중 일에 더욱 집중할 수 있어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근로자들이 다 좋아하는 건 아니다. 우선 월급봉투 걱정이다. 정규 근로시간이 아닌 연장근로의 경우 시급을 더 높게 줘야 하기 때문에 근로시간이 주 68시간에서 주 52시간으로 바뀌면 임금이 꽤 줄어든다. 근로시간 단축제도가 시행되면 직장인 월급이 평균 37만원가량 줄어들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대부분의 기업은 울상이다. 한국 직장인의 근무시간이 긴 것은 사실이지만, 근무형태나 관행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하소연이다. 한 기업의 인사담당자는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근무시간이 길지만, 그만큼 밀도 있게 근무를 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며 “업무 생산성을 그대로 두고 시간만 줄이면 타격이 크다”고 우려했다. 갑자기 1주일에 일할 수 있는 시간을 16시간이나 줄이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Cover Story-주 52시간 근로제 논란] 근로자 휴식권 보장되지만 급여 줄어들 수밖에 없어 부담
“업무시간 맞나?”… 헷갈리는 근무기준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이 두 달도 남지 않은 상황인데 모호한 점이 많은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해외 출장 중에 이동하거나 대기하는 시간은 근로시간에 포함되는지, 부서 회식은 근무의 연장으로 봐야 하는지, 실제 근무하는 시간보다 대기하는 시간이 많은 임원 운전기사의 근무시간을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답이 뚜렷하지 않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임원은 근로기준법에 적용받는 근로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고, 임원이라 해도 실질적으로 하는 일이 직원과 비슷하면 주 52시간 이상 일해선 안 된다는 이도 있다. 업무상 알게 된 다른 회사 직원과의 저녁자리는 근무시간일까 아닐까. 업무에 필요한 자리라면 근무시간에 포함된다고 한다. 문제는 업무상 필요한 자리인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기준이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미국이나 유럽으로 출장을 가게 되면 어떨까. 매일 8시간씩 근무한 뒤 금요일 오후에 미국으로 출장을 떠나면 꼼짝없이 법을 어기게 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40시간을 일한 뒤, 미국으로 떠나는 시간이 근무시간에 포함돼서다. 공항에서 대기하는 시간, 미국 현지에서 추가로 이동하는 시간, 현지에서 일하는 시간 등도 근로시간이다. 해외출장을 가는 직원은 떠나기 직전 2~3일 동안 출근하지 말라는 것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나온다.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과 그 기업에 다니는 사람이 한목소리로 원하는 건 하나다. 정부에서 근무시간 단축을 법으로 정했다면, 어디까지가 근무시간이고 아닌지에 대해 빨리 결정해 달라는 것이다.

◆NIE 포인트

근로시간 단축제도의 내용을 정리해보자. 근무시간 단축으로 직장인이 받는 월급이 줄어든다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토론해보자. 근무시간 단축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려면 어떠한 조치들이 필요할지, 기업들의 임금 부담은 어떨지도 정리해보자.

도병욱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