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사죄의 뜻을 전했다'와 '사죄했다'의 차이
'사의를 표하다'는 곧 '고맙다고 하다'이다. '사죄의 뜻을 전했다'라고 하지 말고 바로 '사죄했다'라고 쓰면 된다. 그것이 우리말다운,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정치·외교적으로 쓰이는 ‘유감(遺憾)’은 말에서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의미적 모호성이 특징인 이 말이 일상적 상황에까지 퍼져 다양한 기존 어휘 사용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현실언어에서 유감이 쓰이는 영역은 꽤 넓다. ‘아쉽다, 안타깝다, 안쓰럽다, 서운하다, 섭섭하다, 언짢다, 불만스럽다’ 등 섬세하게 구별해 써야 할 말들을 대신한다. 심지어 ‘미안하다, 사과하다, 사죄하다, 죄송하다, 송구하다’ 등 용서를 구하는 말을 써야 할 때도 ‘유감’이 자리를 차지한다.

유감·입장은 얼버무릴 때 쓰기 편한 말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사죄의 뜻을 전했다'와 '사죄했다'의 차이
우리는 이미 ‘입장(立場)’에서 비슷한 경험을 겪었다. 일본에서도 잘 쓰지 않는 이 말이 들어와 대체한 우리말이 꽤 많다. ‘처지, 견해, 의견, 태도, 형편, 생각, 주장, 방침, 상황…’ 등 문맥에 따라 달리 쓸 말 10여 가지를 ‘입장’이 대신한다. ‘당혹스러워하고 있다’라고 해야 할 때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식으로 써서 우리말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입장처럼 유감도 모호하게 쓰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모호함은 어휘적·통사적 양쪽으로 실현된다. 우선 어휘적 측면에서 ‘유감’은 지난호에서부터 살폈듯이 일반적 상황에서 사과의 의미로 써서는 안 될 말이다. 오히려 그 반대로 마음에 차지 않고 서운한 감정이 남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다른 하나는 통사적 차원의 문제다. 이 말은 ‘~에 대해 유감이다’ 꼴로 많이 쓰인다. 이는 (어떤) 실체를 모호하게 또는 완곡하게 비틀어 말하는 방식이다. 가령 ‘상처를 줘 미안하다(죄송하다)’라고 해야 할 것을 ‘상처를 준 데 대해 유감이다’ 식으로 치환한다. 당연히 표현이 어색하다. 사과할 때는 ‘~를 사과한다’라고 해야 분명해진다. 이를 ‘~에 대해 유감이다’라고 하면 의미 구조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대해(서)’를 쓰는 것은 자신의 행위를 객체화하는 언술 방식이다. 즉 자신을 주체로 드러내지 않고 대상화하는 기법인 것이다. ‘정부에 대해 ~을 말하다’가 아니라 ‘정부에 ~을 말하다’이다. ‘아무개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게 아니라 ‘아무개(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써야 정확한 표현이다.

‘~뜻을 표했다’는 의례적·권위적 말투

이 말은 또 ‘유감의 뜻을 전했다(표했다)’로도 곧잘 쓰인다. 이 역시 통사적 차원에서의 왜곡이다. 신문기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사죄의 뜻을 표했다’라는 문구가 다 비슷한 유형의 말투다. 문어체인 데다 의례적이고 형식적이다. 하물며 이를 마치 점잖은, 격식 있는 표현인 양 여기는 이들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문장을 억지로 비틀어 쓰는, 잘못된 글쓰기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행위자의 의도를 직접 표현하지 않고 완곡하게 돌려 말하는, 일종의 수사적 장치인 셈이다. 정치·외교적 언사, 고위층의 발언 등에서 접하기 쉽다는 데서 이런 말법이 권위적 표현의 잔재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유감이나 입장이나 모두 공급자 중심의 단어다. 말에서, 글에서 화자 또는 필자가 자신의 생각이나 태도를 명료하게 밝히지 않고 대충 얼버무리는 식으로 넘어갈 때 쓰기 좋은 표현인 셈이다. 고마운 것은 고맙다고 하고, 사죄할 것은 사죄한다고 말할 때 우리말도 건강해지고 투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