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11일 한국경제신문 특별대담에서 201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리처드 세일러 교수(오른쪽)가 현오석 당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한경DB
2009년 9월11일 한국경제신문 특별대담에서 201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리처드 세일러 교수(오른쪽)가 현오석 당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한경DB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바탕에는 주어진 정보를 이용해 언제나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이콘(econ·경제적 인간)’이 깔려 있다. 인간의 선택은 늘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가정 아래 논리를 전개한다. 반면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제한된 합리성과 제한된 시간 등의 영향으로 인간의 선택 및 결정이 심리 상태나 특정한 행동양식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행동경제학은 이론적 토대가 세워진 지 40년 안팎인 비주류 경제학이지만 신고전학파 주류 경제학을 보완하며 경제이론의 영역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간의 ‘제한된 합리성’에 방점

행동경제학의 주창자는 허버트 사이먼이다. 미국의 사회과학자이자 경영학자, 심리학자인 그는 인간이 완전히 합리적일 수 없다는 ‘제한된 합리성’이란 개념으로 선택의 원리 등을 설명한다. 인간의 모든 것이 합리적이라는 ‘최적화’보다 ‘만족화’의 원리를 중요시하는 ‘절차적 합리성’도 주장했다. 그는 또 의사결정에서 주류 경제학이 의미를 크게 두지 않은 감정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인지심리학이 행동경제학의 주요 도구가 되고, 행동경제학이 기존 경제학에 심리학을 접목했다고 평가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사이먼은 이런 연구의 공로를 인정받아 197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주류 경제학은 ‘기대효용이론’을 중시한다. 행동이나 선택의 결과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경제주체는 결과에 대한 효용기대치에 근거해 최적화된 합리적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인간의 합리와 이성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다. 주류 경제학은 이런 과정에서 인간의 심리나 감정은 배제한다. 반면 행동경제학자들은 인간이 반드시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지만은 않으며 심리상태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건강할 때는 건강에 가치를 적게 부여하지만 병에 걸리면 가치가 달라지는 게 한 예다. 심리학자 조너선 라이트는 “감정이 머리고, 합리성은 꼬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인간의 선택에 심리나 감정이 크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다.

“넛지(nudge)의 힘이 규제보다 강해”

행동경제학의 대표 학자로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리처드 세일러 교수 역시 주류 경제학이 전제하는 ‘합리적 인간’이 아니라 제한된 상황, 제한된 시간 안에 선택해야 하는 ‘현실 속 인간’을 전제로 경제학 논리를 전개한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행동경제학적 관점으로 해석한다. 비이성적인 인간의 과잉확신으로 위기가 발생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자신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현상’을 과잉 확신으로 정의한다. 특정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어느 정도 성적이 나올 것이냐’고 질문하면 90% 이상이 “중간 이상은 갈 것”이라고 답하는 게 대표적 사례다. 그는 미국 금융회사 임직원이나 일반인이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등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나는 괜찮아’ ‘나만 수익을 내고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과잉 확신이 금융위기를 초래했다고 분석한다.

그는 2009년 9월 한국경제신문사 주관으로 현오석 당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특별대담에서 2008년 한국을 휩쓴 ‘광우병 사태’도 이런 과잉 확신이 깔려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에선 광우병으로 죽은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한국에서 촛불시위가 발생한 것은 정책 결정을 표현하는 정치 언어가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또 “정책 결정자는 루머를 예방하는 ‘정치 언어’를 구사하고 효율적인 넛지(nudge)를 활용한 정책 집행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일러의 베스트셀러 《넛지(nudge)》는 그의 행동경제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팔꿈치를 슬쩍 찌르다’ ‘넌지시 암시하다’는 의미의 넛지는 규제나 강압보다 효율적인 힌트나 설계로 자율적 선택의 폭을 넓혀준다는 게 골자다. 예컨대 ‘화장실을 깨끗하게 사용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기보다 남자 화장실 소변기 중앙에 파리나 축구 골대를 그려 넣어 소변기 밖으로 뛰는 소변량을 자연스럽게 줄이도록 유도하는 게 넛지의 단적인 사례다. 인간이 항상 이성적이지만은 않으니 규제나 억압보다 다양한 선택지를 던져줘 합리적 선택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NIE 포인트

‘합리적 인간’과 ‘현실 속 인간’의 다양한 사례를 친구들과 토론해보자.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넛지(nudge)가 활용될 수 있는 사례들도 생각해보자.

신동열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