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한승희 현 서울지방국세청장(이하 한 후보자)이 제22대 국세청장 후보자로 지명됐다.


국세청의 인적쇄신을 노린, 파격적인 인사로 풀이되는 한 후보자의 지명으로 국세청은 크고 작은 변화를 맞게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국세행정의 기조는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세수 상황도 나쁘지 않은데다 정권에 대한 지지율이 높게 형성되어 있어 지금 당장 무언가 대단한 것을 내놓지 않아도 올해 초 국세청이 목표한 각종 세정목표치를 무난히 달성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눈총을 받을 '대형사고'만 터지지 않으면 된다는 이야기다.


국세청은 국가정보원, 검찰청, 경찰청 등과 함께 '4대 권력기관'으로 통칭된다.


그 가진 권한(세무조사권 등)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공직서열상 차관급에 불과한(?) 국세청장 인선 및 인선된 국세청장의 성향에 대한 안팎의 관심이 높게 형성된다. 국세청장이 어떤 성향을 가진 인물이고, 또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국세청 조직은 물론 나라 안팎이 흔들리는 상황될 수도 있다.




"정치권력 눈치보는 국세청장은 No!!"


1~2년, 또는 그 이상이 됐든 국세청장이 '성공한 국세청장'으로 기록되기 위해서는 정치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소신과 법이 정한 원칙에 따라 국세행정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 국세청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는 일관된 주장이다.


군인들이 판 치던 군사정권 시절은 그렇다 치더라도 민주주의가 확립되고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투명성이 확보된 현 시대에서 국세청장이 정치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하며 가진 권력을 남용했다가는 자신은 물론 국세청 조직, 나아가 국가 전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


특히 국세청장의 경우 검찰총장, 경찰청장 등 타 권력기관장들과는 달리 임기가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자칫 자신의 재임기간을 늘리거나 국세청장을 발판 삼아 더 높은 위치까지 올라가려는 성향을 보일 경우 정치권력에 휘둘릴 틈새를 제공할 여지가 충분하다.


이 때문에 국세청장 임기 보장이 능사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법적인 안전장치를 둔다는 의미에서 국세청장 임기제를 핵심으로 한 '국세청법' 도입 필요성이 정치권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꾸준히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한 후보자의 지명과 동시에 세간에서는 재벌 대기업 개혁이라는 현 정부의 정책기조에 따라 국세청이 대대적인 세무조사 강화에 나설 것이라는 등의 전망이 쏟아져 나왔다.


요약하면 한 후보자가 현 정부와 '코드'를 맞추기 위해 국세행정의 방향타를 재설정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이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세청은 이미 올해 세무조사 행정과 관련한 로드맵을 확정해 순차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여기서 방향을 바꾼다는 것은 경제계에 미치는 영향도 영향이지만 세수확보와 탈세 차단이라는 국세청 본연의 목적에 부합하는 세무조사 행정이 아닌 정권의 요구사항을 반영한 세무조사 행정을 펼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권력기관을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국민 약속과도 정면배치되는 부분이다.


세간의 이런 저런 전망과 달리 국세청 내부에서는 한 후보자가 국세청장으로서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상당히 '순탄'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외압에 굴하지도 외압이 들어올 여지 마저 차단하려는 대쪽 같은 성품을 지니고 있는 한 후보자의 성향과 문재인 대통령의 권력기관 독립 의지가 적절히 섞여 상당히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수 상황도 좋아 요란을 떨지 않아도 목표점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되어 있다는 점도 플러스 요인.


"'국세청장 흑역사(黑歷史)'를 기억하라"


2000년대 이전 재임한 국세청장 중 불명예스럽게 퇴진한 국세청장들의 공통분모는 '권력형 비리'에 연루됐다는 점이다.


역대 최단명 국세청장으로 남아 있는 6대 성용욱 전 청장(재임기간 1987년 5월27일~1988년 3월4일)은 13대 대선(1987년) 당시 불법선거자금을 거둔 혐의로 낙마, 실형을 선고받았다.


10대 임채주 전 청장(재임기간 1995년 12월21일~1998년 3월8일)도 1997년 사상 최대의 세무비리 사건이 세풍(稅風) 사건에 휘말려 구속됐다. 실질적으로 임 전 청장 본인이 사건의 몸통은 아니었지만 사건의 주범인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의 불법 선거 자금 모금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는 혐의는 피할 수 없었다.


2000년대 이후 수난을 겪은 국세청장들은 '개인비리'로 소위 '물'을 먹은 케이스들이다.


12대 안정남 전 청장(재임기간 1999년 5월26일~2001년 9월7일) 국세청 제2개청을 이끌어 내는 등 나름의 성과를 냈고 이후 건설교통부 장관으로 영전하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부동산 투기, 증여세 포탈 등 무수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건교부 장관 취임 20일만에 물러나는 수모를 당했다.


그의 낙마와 관련해 국세청장 재직 시절 요란을 떨며 진행한 언론사 세무조사의 여파가 컸다는 이야기들도 나온다.


안 전 청장 뒤를 이은 13대 손영래 전 청장(재임기간 2001년 9월10일~2003년 3월23일)도 썬앤문 그룹, SK그룹 등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인선된 15대 이주성 전 청장(재임기간 2005년 3월15일~2006년 6월29일), 16대 전군표 전 청장(재임기간 2006년 7월18일~2007년 11월7일)은 세무조사 청탁, 부하직원 인사청탁 등 명목으로 거액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가 밝혀지면서 내리 구속됐다.


특히 전 전 청장의 경우 현직 국세청장 신분으로 구속됐고 몇 년 후 국세청장 재직시절 있었던 또 다른 뇌물수수 혐의로 재차 구속, 국세청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17대 한상률 전 청장(재임기간 2007년 11월30일~2009년 1월19일)은 개인비리가 아닌 특정한 목적하에 정치권 로비를 벌인 사실이 밝혀지면서 불명예스럽게 퇴진했다.


한 전 청장 이후 재임한 국세청장들은(백용호, 이현동, 김덕중, 임환수) 아무런 탈이 나지 않았다는 측면을 볼 때 국세청의 흑역사는 국세공무원들에게 '사고 치면 끝장이다', 라는 확실한 '학습효과'를 준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한 후보자가 지역적 연고를 공유한 선후배 국세공무원들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는 등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세력형성을 철저히 차단하고, 서울국세청 조사4국장과 본청 조사국장으로 3~4년 일하면서 외부 입김 개연성을 완전히 차단하는 처신을 해온 것은 개인의 성향과 이러한 학습효과가 합쳐진 결과물 아니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조세일보 / 이희정 기자 hjlee@joseilbo.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