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 패키지 디자이너 고길영 대리(오른쪽)와 조용재 대리. 오리온 제공
오리온 패키지 디자이너 고길영 대리(오른쪽)와 조용재 대리. 오리온 제공
3초. 첫인상이 결정되는 시간이다. 제과회사에서도 이 3초 안에 승부를 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자 패키지(포장) 디자이너들이다. 이들에게 가장 어려운 임무는 장수 제품의 재단장. 전 국민이 다 아는 제품 브랜드의 ‘정체성’을 해치지 않는 동시에 대형마트 매대에서 수십여 가지 제품과 경쟁하며 소비자의 눈길을 끌어야 한다.

오리온의 8년 차 디자이너 고길영 대리(33)와 5년 차 디자이너 조용재 대리(32)는 올 상반기 이 어려운 과제를 성공적으로 해냈다. 이들은 봄 한정판으로 출시된 ‘후레쉬베리 체리쥬빌레’와 ‘초코파이 딸기’ 포장을 디자인해 완판(완전판매) 기록의 일등공신이 됐다. 초코파이는 1974년, 후레쉬베리는 1993년 출시된 오리온의 스테디셀러. 두 제품 모두 한정판이 출시된 건 올해가 처음이었다. 두 제품의 포장은 딸기와 체리의 상큼한 맛과 향을 표현하는 동시에 화사한 봄기운을 전달하는 디자인으로 인기를 끌었다.

고 대리는 봄 시즌 한정판 후레쉬베리의 패키지를 만들기 위해 ‘벚꽃 엔딩’ 등 봄에 어울리는 음악을 수십 번 반복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이번 한정판의 타깃층이 20대 여성이었던 만큼 그들의 취향과 관심사를 파악하기 위해 패션 잡지도 많이 보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오는 사진들도 눈여겨봤다”고 말했다. 조 대리는 “파이, 젤리, 칩 등 과자 종류가 달라지면 타깃층도 달라진다”며 “겨냥하는 소비층이 남성일 땐 영화나 만화책 등을 많이 보고, 여성일 때는 쇼핑몰 등을 주로 찾아다니며 영감을 얻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과자 패키지 디자이너가 갖춰야 할 최고의 덕목으로 ‘소통 능력’을 꼽았다. 한 제품에 제대로 된 옷을 입히려면 식품연구소의 개발 과정, 마케팅과 홍보팀의 전략, 영업팀의 의견까지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 대리는 “제품의 맛과 속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콘셉트로 첫인상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업병’도 있다고 했다. 조 대리는 “마트에 가면 늘 과자 매대에 들러 소비자들의 손이 어디에 머무는지 보게 된다”며 “소비자가 제품을 고를 때 하나의 제품에 시선이 머무르는 시간이 1초도 안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서 이 직업에 짜릿한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