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기중앙회 찾아간 국정위 > 김연명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사회분과위원장(왼쪽 두 번째)이  8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중소기업인 간담회’에서 박성택 중기중앙회장(세 번째)의 발언을 듣고 있다. 왼쪽부터 한정애 국정기획위 사회분과위원, 김 위원장, 박 회장, 한무경 한국여성경제인협회장. 중기중앙회 제공
< 중기중앙회 찾아간 국정위 > 김연명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사회분과위원장(왼쪽 두 번째)이 8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중소기업인 간담회’에서 박성택 중기중앙회장(세 번째)의 발언을 듣고 있다. 왼쪽부터 한정애 국정기획위 사회분과위원, 김 위원장, 박 회장, 한무경 한국여성경제인협회장. 중기중앙회 제공
중소기업중앙회 여성경제인연합회 등 중소기업계가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노동정책에 대해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속도 조절’ 등을 건의했다가 오히려 면박을 당했다.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처럼 말하지 말라”는 질책도 나왔다. 경제단체 등을 향한 새 정부의 일방통행식 소통이 재연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정위 "경총처럼 말하지 말라"…중소기업 업계 '면박'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8일 중소기업중앙회를 방문, ‘국정기획자문위(사회분과) 중소기업인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만남은 새 정부가 일자리위원회를 통해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을 문재인 대통령 공약대로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중소기업계와의 첫 만남으로 주목받았다. 간담회에는 김연명 국정기획위 사회분과위원장과 한정애 분과위원(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 오태규 자문위원과 중소기업계에서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 성명기 이노비즈협회장, 한무경 한국여성경제인협회장 등 10여 명이 참석했다.

오전 10시에 시작된 간담회는 애초 예정된 40분을 훌쩍 넘겨 한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박 회장은 “새 정부 최우선 과제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에 대한 정확한 실태 파악과 현장 의견 수렴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며 “(최저임금 인상은) 기업의 지급 능력 범위에서 단계적으로 시행하면서 고용유연성 확보 등도 같이 추진해 기업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정위 "경총처럼 말하지 말라"…중소기업 업계 '면박'
2020년까지 시간당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단계적으로 인상하고 △근로시간을 현행 최장 주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새 정부 방침에 대해 속도와 강약 조절을 주문하고 나선 것이다.

다른 중소기업인도 새 정부가 내세운 일자리·노동 정책으로 기업들이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며 보완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했다. 박순황 한국금형협동조합 이사장, 신정기 한국표면처리공업협동조합 이사장, 주보원 한국금속열처리공업협동조합 이사장 등은 근로시간 단축이 뿌리산업을 와해시킬 수 있다고 하소연했다.

박 이사장은 “금형 등 뿌리산업은 국내가 아니라 세계와 경쟁하고 있다”며 “일괄적인 근로시간 단축은 산업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근로시간을 단축할 경우 인력난과 준비기간 등을 감안해 300인 미만 사업장은 시행 시기를 늦추고, 법정근로시간 단축 시에도 노사합의로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해달라고 요구했다.

◆“중소기업들 다 죽는다”

최저임금 인상안에 대한 반발도 쏟아졌다. 권순배 한국자동차컬러범퍼공업협동조합 이사장과 김문식 한국주유소협회 회장은 최저임금 인상폭이 영세한 자영업자가 감당하기에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은 노동시장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급격한 인상”이라며 “노·사·정 사회적 합의를 통해 단계적으로 인상하고 상여금·식대 등 각종 수당과 현물급여를 포함하는 식으로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국정기획위 관계자들은 “중소기업계가 새 정부의 국정목표인 일자리 창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노동문제의 어려움만 호소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김연명 국정기획위 사회분과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나온 얘기는 사실 좀 실망스럽다”며 “문재인 정부는 과거 어느 정부보다 중소기업에 관심을 기울이는 정부가 되고자 하는데 기업들도 비합리적인 부분을 개선하는 쪽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계 대표들은 예상치 못한 김 위원장의 답변에 순간 당황했다. 한 참석자는 “대통령의 정책 의지나 기존 공약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며 “다시 얘기하지만 현실을 고려해야지 안 그러면 중소기업은 다 죽는다”고 하소연했다.

◆“당신들 위한 정부다. 협조해라”

그러나 국정기획위원들은 질책 수위를 더 높였다. 대화 내용이 바깥에까지 들릴 정도로 목소리가 커졌다. 오태규 자문위원은 “문재인 정부가 중소벤처기업부를 신설하기로 하는 등 중소기업을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며 “이런 평가를 해주지 않고 마치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처럼 얘기해 당혹스럽다”고 지적했다.

한정애 분과위원은 “새 정부의 노동정책은 대통령이 오랜 시간을 들여 대화하고 얻은 생각이 담겨 있기 때문에 바뀌기 어렵다”며 “경영계도 정책 현안과 더불어 노동자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간담회 이후 중소기업중앙회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일자리 창출방안을 고심하겠지만 너무 일방적이라는 불만도 나왔다. 한 참석자는 “업계 애로사항을 듣는다고 와놓고 선물 보따리를 내놓으라는 격이었다”며 “결론을 이미 정해 놓고 하는 일방통행식으로 할 거면 간담회는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문 대통령이 경총을 직접 지목해 ‘반성과 성찰’을 촉구한 분위기가 경제단체들의 정책 간담회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민하 기자 mina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