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제품 골라주는 이베이…VR로 '뉴욕 5번가' 재현한 알리바바
신발을 사고 싶다고 말하자 발 치수와 원하는 굽 높이 등을 물어본다. 굽이 낮고 편한 신발이 좋다고 했더니 플랫슈즈와 옥스포드 슈즈 중 어떤 디자인이 괜찮냐고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더니 다른 신발을 계속 보여준다. e커머스 기업 이베이가 작년 10월 내놓은 인공지능(AI) 대화형 메신저인 ‘이베이 샵봇’ 서비스다. 페이스북 샵봇 페이지에 들어가서 채팅으로 말을 걸면 비서처럼 답변한다. 소비자 수요를 파악해 상품을 추천해주는 기능이다.

그동안 유통·소비재 기업들의 주된 목표는 좋은 물건을 싸게 파는 것이었다. 이젠 바뀌었다. 소비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 경쟁력으로 떠올랐다. 다니엘 장 알리바바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디지털 혁신이 기존 상거래 개념을 뿌리째 바꾸고 있다”며 “유통은 이제 물건이 아니라 경험을 파는 업종으로 변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상현실로 재탄생한 쇼핑거리

알리바바는 지난해 가상현실(VR) 쇼핑몰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소 조직인 ‘게놈매직랩’을 신설했다.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는 것 같은 기분을 안방에서도 느끼게 해주는 서비스를 내놓겠다는 목표다. 드라마와 콘서트를 보는 것도 가능하다. 시범 테스트 중인 VR 서비스 바이플러스에는 미국 뉴욕 5번가 등 쇼핑명소를 재현한 가상현실 공간이 구현됐다. 가상화면에서 상품을 터치하면 구매로 이어진다. 알리바바의 작년 4분기 매출은 532억위안(약 9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0% 이상 뛰었다. 시장 전망치를 크게 웃돈 수치다. 이 기간 영업이익 172억위안을 기록한 아마존을 훌쩍 뛰어넘었다.

오프라인 ‘유통 공룡’인 월마트도 후발주자로 합세했다. 2014년 아마존이 시가총액으로 월마트를 앞지르고, 작년 알리바바 거래액이 월마트 매출보다 커지면서 ‘월마트 위기설’까지 제기되자 보수적이었던 태도를 바꿨다. 비용을 최대한 낮춰 싸게 판다는 과거 전략을 수정하고 온라인사업을 확장한다고 발표했다. 경쟁사 아마존을 겨냥해 웹서비스도 강화했다. 이전까지 감소하던 매출이 작년 4분기에는 29% 올랐다. 올해 1분기에는 온라인 매출이 작년 대비 63% 뛰었다.

올해 초부터는 IBM과 협력해 인공지능 ‘왓슨’ 기반 물류 시스템인 ‘블록체인’을 도입했다. 블록체인은 물류 전 과정을 디지털화하는 시스템이다. 배추를 조달할 경우 배추 농장에서부터 월마트 매장에 이르기까지 어느 곳을 거쳤는지가 기록으로 남는다. 소비자가 배추를 먹고 배탈이 났을 때도 이 과정을 추적해 원인을 알아낼 수 있다.

콧대 낮추고 온라인 입는 명품

명품 패션업체들은 몇 년 전만 해도 브랜드 가치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온라인 진출에 주저했다. 이제는 다르다. 최근 들어 버버리, 타미힐피거 등이 중국 텐센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유통 채널인 ‘위챗 커머스’에 잇따라 참여하고 있다. 명품업계 ‘큰손’인 중국인이 위챗을 많이 사용하자 이들의 소비 행태에 맞췄다. 위챗의 월 이용자 수는 8억 명에 달한다. 에이버리 베이커 타미힐피거 브랜드최고관리자(CBO)는 “위챗은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채널 중 하나”라며 “우리는 위챗에서 브랜드 스토리텔링과 온라인 판매 등 다양한 시도를 지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빅데이터도 유용한 수단이다. 식품업체 네슬레는 어도비의 마케팅 클라우드인 ‘어도비 캠페인 솔루션’을 활용한다. 웹과 모바일, 오프라인 등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하나로 통합한 뒤 각 소비자가 언제 어느 채널에서 광고를 접해야 마케팅 효과가 극대화되는지 분석한다. 베티 바칼리 네슬레 고객관계관리 매니저는 “데이터를 활용해 소비자에게 의미 있는 경험을 제공하고, 그들의 마음을 훔칠 수 있어야 유통업체가 생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더그 맥밀런 월마트 최고경영자(CEO), 2017년 연차 주주총회에서

AI가 제품 골라주는 이베이…VR로 '뉴욕 5번가' 재현한 알리바바
“소비자들은 힘들게 번 돈을 쓸 때 그만한 가치를 원한다. 그리고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시간은 이제 돈과 같은 통화(通貨)다. 우리는 더 나은 쇼핑 경험을 창조해야만 한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