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의 카드뉴스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6선·경기 의정부갑)은 세 번의 진보정권 탄생과 진화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산증인이다. 1기(김대중 정부)와 2기(노무현 정부)에서 각각 청와대 정무수석과 비서실장을 지냈다. 3기(문재인 정부)에서는 보수정권에서 악화된 한·일관계 복원을 위해 최근 대통령 특사로 일본을 다녀왔다. 문 의원은 노무현 정부 시절 열린우리당 의장(대표)을 지냈다. 유력한 후반기 국회의장 후보다.

문 의원은 지난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개혁은 전광석화처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과거 정부의 모든 것을 뒤집으려 서두르면 실패할 수 있다”며 “전 정권 것을 버릴 것은 버리되 인적 청산과 정치 보복으로 비쳐지면 국민 동의를 얻지 못해 개혁의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고 새 정부에 조언도 잊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한 달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성적이 A- 정도는 된다고 봅니다. 초반에 조심스러웠고 걱정스러운 측면도 있었지만 놀랄 정도로 잘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국민의 힘으로 변혁을 이룬 게 4·19 혁명과 5·18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 등 세 번 있었지만 세 번 모두 역주행으로 끝났습니다. 4·19는 5·16 쿠데타를 낳았고, 5·18은 군부정권, 6·10은 노태우 정부로 이어졌습니다. 이번에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 탄핵에 성공한 뒤 또 역주행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한 게 사실입니다.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해 불안했으나 지금까지는 아주 성공적입니다. 이런 분위기면 역주행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진보정권 1기와 2기의 경험을 토대로 3기 정부의 성공을 위해 꼭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을 것 같은데요.

“1, 2기의 성공담과 실패담을 많이 들려주려 합니다. 보수정부 10년이 워낙 엉망이었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는 국민 기대가 커 출발부터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습니다. 특히 보수정권은 통일, 외교, 국방이 엉망이었습니다. 남북관계는 6·25 이후 최악입니다.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놓치니 ‘코리아 패싱’(한국의 안보 현안 논의에서 한국이 배제되는 것)이 생긴 것 아니겠습니까. 미국 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도 실패했습니다. 트럼프는 인게이지먼트(개입 정책)로 전환하는 등 우리의 햇볕정책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채찍과 당근이 햇볕정책의 본질입니다. 외교·안보 전략은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잘한 분야로 그 모델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한국과 미국 모두 새 정부가 들어서서 과거의 정책 방향으로 돌아가는 상황입니다. 물론 경계할 것도 있습니다. 개혁·혁신 정부라고 과거 정부의 작은 것까지 다 버리려 해선 안 됩니다.”

▷새 정부가 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일자리 문제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정교하게 추진해야 할 과제들을 너무 서두른다는 지적이 있습니다.“개혁 작업은 취임 후 100일과 1년이 중요합니다. 계획은 100일 안에, 시행은 1년 안에 해야 합니다.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것은 100일 안에 담대하게 추진해야 합니다. 타이밍을 놓치면 안 됩니다. 취임 후 100일 개혁에 성공한 게 김영삼 정부입니다. 담대하고 과감했으며 시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역사 바로세우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도입 등을 전광석화처럼 해냈습니다. 개혁 작업은 주춤주춤해서는 안 됩니다. 정교하게 하려고 시간을 끌다가는 동력을 잃을 수 있는 만큼 국민 공감대가 있을 때 전광석화처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폐기는 잘한 조치입니다. 국민이 속이 시원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국민이 원하는 개혁을 속도감 있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꺼번에 모든 걸 하려고 욕심 부리고 서둘러서는 안 됩니다. 개혁의 이름으로 추진해도 국민 눈높이와 맞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전 정부 인적 청산과 제도 개혁을 서두르다 실패할 수 있습니다. 차분하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전 정권의 버릴 것은 버리되 인적 청산과 정치 보복으로 비쳐지면 국민 동의를 얻지 못해 동력을 상실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주변에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조기에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듯합니다.“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바로 추진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국민적 공감대가 과거와 같지 않습니다. 과거엔 우리 국민뿐 아니라 세계가 동의했지만 지금은 대북 제재에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끝까지 신뢰를 쌓기 위해 기다리며 민간교류를 확대하고 조건 없이 쌀 비료 등 인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신뢰가 회복돼 임기 마지막 해에 정상회담을 하게 된 것입니다. 신뢰를 쌓으면서 하나씩 풀어가야 합니다. 5·24 조치(전면적 대북 제재 조치)를 당장 폐기하면 유엔 결의 위반이 될 수 있습니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서두르면 안 됩니다. 먼저 인도적 지원과 민간교류 확대를 통해 물꼬를 트고 북한이 핵을 동결하는 등 진전된 조치를 내놓아 국민적 합의가 있을 때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자리 문제와 관련해 기업을 압박하는 것은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정부 주도 일자리보다 기업 중심의 일자리가 자본주의의 기본입니다. 지금까지 그게 안 돼 온 게 문제입니다. 오죽하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일자리가 복지입니다. 일자리 문제를 풀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거죠. 잡음이 있겠지만 일정한 성과가 나올 것입니다. 과감하게 규제를 푸는 등 기업에 인센티브도 줘야 합니다.”

▷노무현 정부 때 겪어본 문 대통령은 어떤 스타일이라고 기억합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문재인은 민정수석 예정자’라고 말씀하길래 제가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는 너무 선한 눈망울을 가진 착한 사람입니다. 권력 의지가 있는 사람도 아니고 싸움꾼도 아닙니다. 그런 성품을 가진 사람은 민정수석이 될 수 없다’고 얘기했죠. 그러자 노 전 대통령은 ‘최고 적임자다.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차분하고 균형 감각이 탁월하다는 논리였죠. 같이 일해 보니 왜 그렇게 얘기했는지 알겠더군요. 문 대통령은 문제를 합리적으로 꿰뚫어 보는 능력이 있습니다. 과감하지도 않고 담대하지도 않고 권력 의지도 없는 민정수석이었지만 업무를 훌륭히 수행했습니다. 다만 검찰개혁에는 실패했습니다. 아쉬움이 커서 이번에 검찰개혁은 반드시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은 둘 다 머리형이 아니라 가슴형 인간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가슴이 뜨거워 매사에 격정적이었던 반면 문 대통령은 뜨겁지 않고 따뜻한 휴머니스트라는 온도 차가 있습니다.”

▷새 정부의 조각을 놓고 논란이 적지 않습니다.

“인수위가 생략된 데서 오는 혼란입니다. 인수위가 있었다면 위장전입을 부동산 투기로 한정한다든지 하는 세칙을 마련했을 것입니다. 일단 구체적인 청와대 내부 검증 기준을 마련하는 게 우선입니다. 그리고 그 기준을 적용해야 합니다. 기준을 마련한 뒤 야당과 협의하는 게 순서입니다.”

▷올바른 당·청 관계 정립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노무현 정부 모델이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고위당정협의회를 정례화하고 실무 정책협의회를 운영했습니다. 현 정부도 다양한 루트로 당·정·청 협력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이낙연 총리에게 고위당정협의회를 정례화하고 여야정협의체를 구성하는 등 다양한 틀로 정치권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협치는 이 정부의 숙명입니다. 장기적으로는 통합이나 연정도 검토해야 합니다. 이것은 대의명분과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대표 한두 사람을 (장관으로) 뽑아오는 식으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반발을 사 소탐대실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정책 협의로 상대 당에 명분을 주고 참여시켜야 합니다.”

▷대통령 특사로 일본을 다녀왔는데 한·일관계는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서로 자극하지 않으면서 자주 만나야 합니다. 우리는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자는 얘기를 자제하고 일본은 소녀상 철거를 얘기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노 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마련한 정상 셔틀외교를 복원해야 합니다. 조만간 진전된 내용이 나올 것입니다.”

■ 문희상 의원은

△1945년 경기 의정부 출생 △경복고, 서울대 법대 졸업 △14, 16, 17, 18, 19, 20대 국회의원(6선) △대통령 정무수석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민주당 최고위원 △대통령 비서실장 △한일의원연맹 회장 △열린우리당 의장 △국회 부의장

이재창 정치선임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