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사와 미래창조과학부가 1일 공동 주최한 ‘스트롱코리아 포럼 2017’에서 참석자들이 기조연설을 듣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사회 각계에서 1000명이 넘는 인원이 참석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사와 미래창조과학부가 1일 공동 주최한 ‘스트롱코리아 포럼 2017’에서 참석자들이 기조연설을 듣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사회 각계에서 1000명이 넘는 인원이 참석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프랑스의 3D(3차원) 소프트웨어 기업인 다쏘시스템의 버나드 샬레 회장은 1일 서울 밀레니엄힐튼호텔에서 열린 ‘스트롱코리아 포럼 2017’ 기조연설에서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제조 공정을 단순히 디지털화하거나 새로운 공장을 짓는 게 아니라 소비자의 경험과 생산자의 전문성을 융합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샬레 회장은 1980년대부터 다쏘시스템의 혁신적 연구개발(R&D)을 주도했다. 일찍부터 R&D의 중요성을 간파한 그는 회사에 연구 전담 부서를 만들고 R&D 성과와 회사의 경영 전략을 접목했다. 1995년에는 세계 최초로 디지털 방식으로만 설계한 보잉777 항공기 제작을 주도하며 이름을 알렸다.

버나드 샬레 회장
버나드 샬레 회장
샬레 회장은 ‘경험의 시대, 과학과 산업’을 주제로 한 이날 강연에서 “4차 산업혁명은 이미 오래전 시작됐다”며 본질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30년간 자동차·생명공학 분야의 많은 기업이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서 제품 생산 방식을 바꾸고 학문 간 영역을 넘나들며 세계를 바꿔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을 ‘기업과 공장의 디지털화’로 단순히 정의하는 일은 지나치게 협의적 해석”이라며 “궁극적 목표를 인류 상상력의 산물인 세상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바꾸는 쪽으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샬레 회장은 “앞으로의 산업은 과거에는 발견되지 않았거나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현상을 연결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품 디자인과 생산, 판매에 사용되는 3D 모델링과 시뮬레이션 기술은 그 핵심에 있다. 이들 기술 덕분에 많은 과학자와 기업이 그간 보지 못했던 부분을 새롭게 발견할 기회를 얻고 있다. 보잉만 해도 1999년 철저히 디지털 공간에서만 설계되고 시험을 거친 항공기와 부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노벨상 수상자인 마틴 카플러스 미국 하버드대 교수도 분자가 세포에 들어갔을 때 나타나는 현상을 시뮬레이션을 통해 알아내 2013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14년 심장 질환을 진단하고 새로운 의료기기를 개발하기 위해 살아있는 심장과 똑같이 작동하는 가상의 심장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샬레 회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업이 생산한 제품만으로 경쟁력을 따질 수 없게 될 것”이라며 “얼마나 더 큰 가치와 풍부한 경험을 소비자에게 제공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전문가의 협업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규모가 큰 기업만이 이런 시험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한 예로 유럽에선 지역 학교와 중소기업이 함께 힘을 모아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일 무인자율주행차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샬레 회장은 “큰 조직보다 오히려 작은 규모가 모였을 때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며 “규모가 큰 기업들도 혁신 제품을 만들기 위해 작는 규모 실험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 전인 지난달 31일 젊은 디자이너를 지원하기 위해 이노디자인과 함께 문을 연 3D익스피어리언스랩도 그런 시도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그는 신기술 도입과 생산 공정이 바뀌면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생각은 ‘기우’라고 강조했다. 샬레 회장은 “신기술이 도입되면 일자리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숙련된 노동이 더 강조될 것”이라며 “공장 근로자들이 공학자처럼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면서 ‘블루 칼라’라는 말이 사라지고 ‘뉴칼라’라는 말이 생겨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산업과 과학에서 빅데이터와 데이터 과학이 막강한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막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보이지 않는 현상을 알아내고 해결책을 찾는 재료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 나라가 여전히 빅데이터 정책에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빅데이터 선진국인 싱가포르 역시 많은 공공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지만 처음에는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시민이 보유한 스마트 사진 자료까지 실시간 수집해 도시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샬레 회장은 “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가 여전히 많은 양의 빅데이터를 확보하고 있지만, 쌓아두고 사용하지 않은 ‘블랙데이터’인 경우가 많다”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벤처와 과학자가 사용할 수 있도록 길을 더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