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유통산업 <3> 유통사는 '수출 플랫폼'

유통사가 '키다리 아저씨' 역할
수출통관·대금결제·마케팅 등 중소기업 짐 덜고 수출 1조 이끌어
PN풍년 프라이팬 멕시코 돌풍 CJ오쇼핑 해외매출 83%가 중소기업제품

청우 계란과자·산들촌 치즈볼 베트남서 불티나게 팔려
이마트 노브랜드 상품 43억 수출
한 대학 교수가 전한 얘기다. 그는 2015년 여름 국내 중소기업 2세들과 인도네시아를 방문했다. 현지 도매상을 대상으로 제품 설명회를 하는 자리였다. 30대 초반의 한 문구업체 2세가 눈에 띄었다. 소개 자료를 잔뜩 들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밀었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저돌적이었다. 행사 후 그는 문구업체 2세에게 왜 그렇게 공격적이냐고 물었다. 그는 “절박해서다. 우리 같은 회사는 이런 때 아니면 해외에서 고객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수출길은 험난하다. 현지 사무소를 낼 능력이 있는 회사는 드물다. 이 역할을 국내 유통회사가 맡기 시작했다. 유통사는 중소기업의 판로를 개척해주는 ‘종합상사’ 역할을 하고 있다. 홈쇼핑과 대형마트, 면세점을 통한 중소기업 수출은 작년 1조원에 육박했다.
중소기업제품 '대박 무대'가 된 홈쇼핑…막막한 수출길 단숨에 뚫어줘

‘제2의 종합상사’ 된 홈쇼핑·대형마트

‘풍년 밥솥’으로 유명한 PN풍년은 2000년대 초반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전기밥솥 보급으로 압력밥솥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해외로 눈을 돌렸다. 2003년 해외시장을 겨냥해 프라이팬 수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PN풍년은 2013년 다시 해외로 나갔다. 이번에 CJ오쇼핑과 함께였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작년 PN풍년 압력밥솥과 프라이팬은 CJ오쇼핑 방송을 통해 멕시코에서 39억원어치가 팔렸다. 인도에서는 지금까지 80억원어치를 팔았다. 멕시코에서는 현지인이 좋아하는 초록색으로 세라믹 코팅을 한 프라이팬을 개발해 판매했다. 이 프라이팬은 작년 주방기구 매출 1위에 올랐다.

노브랜드 제품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울란바토르 ‘이마트 몽골 1호점’. 이마트 제공

노브랜드 제품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울란바토르 ‘이마트 몽골 1호점’. 이마트 제공

홈쇼핑, 대형마트 등과 함께 해외 진출에 성공한 회사는 PN풍년뿐이 아니다. CJ오쇼핑이 작년 해외에서 올린 매출 2297억원 중 83%(1907억원)는 국내 중소기업 제품 매출이었다. 부원생활가전의 도깨비방망이, 이넬화장품의 ‘IPKN 진동 파운데이션’ 등이 CJ오쇼핑 방송을 타고 동남아시아 시장으로 팔려나갔다.

GS홈쇼핑도 작년 한국 상품 700억원어치를 해외에 팔았다. 80%가 중소기업 제품이었다. 이마트는 중소기업이 생산한 자체상표(PB) 제품을 수출해 작년에 ‘2000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올해는 수출액을 540억원가량 늘리고, 수출국을 20개국으로 넓힐 계획이다.

이처럼 작년에 홈쇼핑과 대형마트 등 유통업계가 올린 수출액은 9417억원에 달했다. 작년 10월부터 수출로 인정받게 된 면세점 외국인 판매를 더하면 수출 규모는 1조7457억원가량으로 커진다.

이들 업체는 해외시장을 개척하면서 한국 중소기업 제품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현지 시장조사로 수요를 파악해 중소기업에 조언도 해준다. 복잡한 수출통관, 대금 결제, 현지 소비자 관리 등의 업무도 해결해준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무역협회는 작년 이마트에 이어 올해 GS홈쇼핑을 ‘전문 무역 상사’로 지정했다. 중소기업 해외 수출의 지원군이라는 얘기다. 이갑수 이마트 대표는 “유통기업은 해외 수출 네트워크와 마케팅 노하우를 보유한 수출 플랫폼”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서 한국 딸기·노브랜드 인기

베트남에서는 이마트와 롯데마트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베트남 호찌민에 있는 이마트 고밥점에서는 이마트 PB 제품인 노브랜드 계란과자와 치즈볼이 잘 팔린다. 모두 중소기업인 청우와 산들촌이 각각 생산하는 제품이다. 호찌민과 하노이에 있는 롯데마트 13곳에서는 한국산 딸기를 판다. 롯데마트는 국내 농가에서 재배한 딸기를 항공으로 베트남까지 운반해 판매한다. 롯데마트는 앞으로 베트남에서 연간 5000t 이상 농산물을 판매할 계획이다.

작년 이마트가 해외에서 올린 매출 320억원 중 45%는 중소기업 상품 매출이었다. 이마트는 특히 PB를 통해 중소기업 제품을 수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작년에는 중소기업이 생산한 노브랜드 상품 375가지를 중국 베트남 몽골 등 8개 국가에 43억원어치 수출했다.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 상품이 해외시장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이마트 수출액도 꾸준히 늘었다. 2013년 3억원 수준이던 이마트 수출액은 작년 100배 넘게 뛰었다. 이마트는 올해 수출액 중 중소기업 상품 매출 비중을 50% 이상으로 키울 계획이다. 수출액은 2018년까지 1000억원을 달성하겠다고 목표를 잡았다. 이마트는 올해 1월 필리핀, 3월 일본에 수출을 시작했고, 4월에는 영국 태국 대만 등에 수출하는 등 수출국도 확대하고 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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