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전 외교통상부(현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26일 서울 수서동 사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새 정부가 추진 중인 통상부문의 외교부 이관 계획에 대해 “잘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현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26일 서울 수서동 사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새 정부가 추진 중인 통상부문의 외교부 이관 계획에 대해 “잘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새 정부가 정부조직 개편과 관련해 통상부문을 외교부로 다시 이관하기로 한 건 매우 잘한 결정입니다. 통상은 외교·안보와 따로 떼어놓고 볼 수 없는 분야입니다.”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65)의 대답은 상당히 의외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의 주역이었지만 국민으로부터 극심한 비난에 시달린 데다 19대 국회 때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이었음을 감안해 문재인 정부의 외교·통상 밑그림에 뭔가 날선 비판이 나오리란 예상은 빗나갔다. 그는 “정치적인 입장은 다르다 해도 잘한 건 잘했다고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며 “이 분야는 나라의 운명이 걸린 일인 만큼 언제나 초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본부장의 말투는 시원스러운 달변가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은발과 가느다란 눈, 큰 목소리에서 나오는 특유의 고압적인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는 “통상업무에 오래 종사한 외교관들은 아무래도 좀 터프한 편”이라며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는 외교관의 이미지와 많이 다르다”고 웃었다. 그래서일까. 인터뷰는 때론 유쾌하게, 때론 진지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통상부문이 다시 외교부로 옮겨지고, 통상교섭본부가 부활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아주 반가운 소식입니다. 24시간 동안 대외 통상에만 집중할 수 있는 부서가 다시 생기게 되는 것이니까요. 예전에 외교통상부 시절 통상부문은 우수한 인재가 많이 몰리는 곳이었습니다. 잘해봤자 칭찬도 제대로 못 받고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제일 먼저 화살을 맞는 곳이라 ‘빛은 안 나고 빚만 지는 곳’이란 푸념도 있었지만 개인의 역량을 창의적으로 펼칠 수 있는 데다 현장의 협상 경험을 풍부히 쌓을 수 있기 때문이었죠. 앞으로 외교부 내 많은 엘리트가 이 분야에 다시 도전하길 희망합니다.”

▷특히 어떤 부분에서 의미가 크다고 보십니까.

“미국을 예로 들어볼까요. 미국은 상무부와 에너지부,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모두 분리돼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미국의 이 세 부처를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다 맡고 있습니다. 산업부에서 통상부문이 그동안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는 ‘탈통’이란 말 들어봤다면 아실 겁니다. ‘통상 관련 부서는 탈출하고 싶다’는 뜻이죠. 산업부에선 통상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적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과연 산업부에서 USTR을 1년에 몇 번이나 접촉했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협상력은 현장에서 직접 뛰어 봐야 늘어요. 그건 책을 읽거나 이론에만 밝다고 되는 일이 아니거든요. 사람과 사람이 각 나라를 대표해 만나는 겁니다. 전쟁터나 다름없어요. 통상부문을 외교부로 다시 이전하고 힘을 실어주는 조치가 한국의 통상 협상력 제고에 도움이 될 거라고 봅니다.”

▷통상교섭본부장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하셨나요.

“욕 먹는 건 그냥 일상이라 생각하자고 각오를 단단히 다졌어요. 특히 한·미 FTA 협상 시절엔 조항 내용을 실질적으로 분석한 뒤 반대하는 사람들보단 반미주의적 성향 때문에 무조건 반대한 경우가 훨씬 많았거든요. 하지만 이건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국이 시장을 넓히고 대외지향적으로 가려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강조해온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일일이 여론에 해명이나 변명할 틈이 없었어요. 협상 테이블에선 고성이 오갈 때가 많았습니다. 특히 농업을 비롯해 우리가 양보하기 힘든 부문은 미국 측에 강력히 한국 측 의견을 밝혔죠. 그렇게 협상이 끝나고 나면 기다리는 건 휴식이 아니라 국내 국회의원들과 언론, 여론의 질타였습니다. 외로운 자리였어요. 함께 일한 사람들 모두 ‘이건 3D 업종’이라며 혀를 내둘렀어요.”
[월요인터뷰] 한·미 FTA 협상 주역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 "우린 국내 문제에 너무 매몰…국경 밖 보면 생각 달라질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FTA 재협상 관련 발언을 계속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좀 이상한 구석이 많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USTR 실무진 간에 소통이 별로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USTR이 내는 각종 보고서 가운데 각국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보고서는 매년 3월 나오는 무역장벽보고서입니다. USTR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무역 보고서죠. 그런데 지난 3월 USTR 무역장벽보고서를 보면 한·미 FTA에 대해 부정적인 언급을 한 부분이 별로 없었어요. 오히려 미국 서비스업부문 수출 증가를 비롯해 미국에 긍정적인 부분을 서술한 게 훨씬 많았습니다. 정말 한·미 FTA가 미국에 불리했다면 USTR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뭔가 공식 입장을 내놨을 텐데 현재로선 그런 것도 없습니다.”

▷혹시라도 한·미 FTA 재협상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개인적으로 재협상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봅니다. 한·미 FTA엔 재협상과 파기 관련 절차를 어떻게 진행할지 조항들이 다 담겨 있어요. 절차도 절차지만 일단 재협상의 가능 여부를 따지기 전에 재협상의 본질적 이유를 제대로 따져봐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건 통상 외교에서 옳지 않은 태도”란 인식을 먼저 심어줘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인상이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고집을 부린다면 우리 쪽에서 FTA 이행 현황 등 각종 자료를 내서 현 상황을 우리 쪽으로 도리어 유리하게 역전시키도록 설득하는 게 관건이겠죠.”

▷협상의 현장에서 느꼈던 국제사회의 모습은 어땠습니까.

“냉엄하기 그지없습니다. 각국 모두 자국의 이익만을 챙겨요.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도와준다’는 인도주의는 외교와 통상에선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동맹이라 해도 일말의 희망을 가져선 안 됩니다. 적도, 아군도 없는 게 현실입니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뒤 더욱 위세를 부리고 있고, 중국은 과거와 달리 미국과 거의 대등한 위치에 서 있죠.”

▷국내에선 외교통상 업무가 후순위로 밀려나 있는 것 같습니다.

“참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아무래도 국내 문제에 너무 매몰되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노 전 대통령이 ‘개방 안 해서 성공한 나라는 한 곳도 없다’는 말을 했어요. 그만큼 바깥 세상에 대해 열린 자세를 지니는 게 중요하단 뜻이죠. 하루 한 번만 국경 밖을 바라봐도 인식이 달라질 거라 생각합니다. 국경 밖은 우리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소국인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인데,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작은 나라라 해도 협상 테이블에선 대등한 자격의 파트너입니다. 강대국을 설득할 수 있는 전략과 대응법을 마련해야 합니다. 중요한 건 합리성과 일관성입니다. 임기응변식으로 나가면 상대의 신뢰를 얻지 못합니다.”

■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김종훈 전 외교통상부(현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산증인이다. 협상에서부터 타결, 국회비준 통과에 이르기까지 5년10개월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인물이다. ‘협상의 검투사’로 불릴 정도로 통상부문의 베테랑으로 꼽힌다.

1952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74년 제8회 외무고시에 합격했다. 국제경제국, 주제네바한국대표부 공사, 지역통상국 등 통상 분야에서 주로 근무했다. 2006년 한·미 FTA 한국 측 수석대표로 임명돼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과 함께 한·미 FTA 협상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광우병 파동’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그는 “이때 평생 먹을 욕을 다 먹어도 모자랄 정도로 욕을 많이 먹었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19대 국회의원(새누리당·서울 강남구을)을 지냈고 연세대 경영대 특임교수로 활동 중이다. 모터바이크와 산악자전거가 취미다.

△1952년 대구 출생
△경북대사범대부설고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1974년 제8회 외무고시 합격
△1985년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파견
△1993년 주미대사관 참사관
△1997년 국제경제국 심의관
△1998년 주제네바대표부 공사
△2000~2002년 지역통상국 국장
△2006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한국 측 수석대표
△2007~2011년 통상교섭본부장(장관급)
△제19대 국회의원
△(현)연세대 경영대 특임교수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