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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딤섬 전문점 '한남동 웨스턴차이나'
김보라 기자

김보라 기자

기억 속 최초의 ‘먹방’이 있습니다. 1995년 개봉한 홍콩 영화 음식남녀. 지금은 음식 영화나 먹는 방송 프로그램 등이 넘쳐나지만, 당시 이 영화는 충격이었습니다. 유명 호텔 셰프인 아버지 주사부가 육·해·공 식재료로 만들어내는 요리는 차라리 마술 같았습니다. 중식 조리 과정을 그렇게 적나라하게 본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홍콩 요리의 맛은 몰랐지만 “보기만 해도 입안에 군침이 돈다”는 말을 실감했던 것 같습니다. 홍콩 요리에 대한 환상도 그때 시작됐지요.

10년쯤 지나 홍콩을 처음 갔습니다. 운 좋게 현지인 친구가 있어 잔뜩 기대를 품고 있었죠. 떠나기 한 달 전부터 “맛집만 데려가면 된다”고 신신당부했습니다. 3박4일 일정이었으니 열 끼 정도 먹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는 “여행자들이 절대 모르는 진짜 현지인 맛집만 가겠다”고 하더군요.

딤섬 한입에…영화 음식남녀 속 '먹방의 추억'으로

대반전. 그는 ‘메추리 성애자’였습니다. 어쩌면 홍콩의 남녀노소가 메추리에 중독된 게 맞을 거라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3일 동안 가는 식당마다 손바닥만한 접시에 머리째 나오던 그 메추리인지 비둘기인지 때문에 식욕은 물론 유년 시절 갖고 있던 환상마저 산산조각 났죠. 어린아이와 어른들까지 엄지손가락만한 메추리 머리를 들고 잘근잘근 씹어대는 광경이란. 그 이후 한동안 닭도 못 먹었습니다.

트라우마에서 벗어난 건 몇 년 지나 홍콩을 다시 갔을 때입니다. 현지식이 아닌 관광객 맛집을 찾아 안전한 길을 택했습니다. 그중 오래되고 낡은 딤섬 집 하나를 잊을 수 없습니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딤섬 카트를 끌고 다니면 잠시 불러 세워 하나씩 골라 먹는 그 재미. 영화 음식남녀 속 할아버지가 손녀딸에게 만들어주던 작은 점심 도시락이 이런 맛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도 했습니다.

서울에 돌아와 여러 딤섬 집을 돌아다녔습니다. 그 홍콩의 맛을 찾기 위해. 쉽지 않았습니다. 유명한 집들은 어쩐지 정형화된 맛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죠. 그러다가 정착한 곳은 한남동 웨스턴차이나(사진)입니다. 이곳 딤섬 메뉴는 딱 14개. 그중 새우와 버섯을 다져넣은 새우 사오마이, 새우의 연분홍빛이 투명하게 비치는 하가우, 육즙으로 가득 찬 샤오룽바오, 탱글탱글한 속살에 바삭한 겉옷이 어우러진 새우완자튀김은 양손의 엄지를 다 들고 있어도 모자랄 맛입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모든 메뉴가 담백한 맛을 냅니다. 단골들만 시키는 메뉴도 있습니다. 인삼향이 은은하게 풍기는 인삼 찐빵. 20여 년 경력의 셰프가 반죽을 오래 숙성해 쫄깃하고 부드럽게 쪄내는 시그니처 디저트죠. 이곳 본점 외에 몇 개의 지점이 서울에 더 있지만 딤섬이 생각날 땐 한남동으로 차를 돌립니다. 1980년대 홍콩에 온 것 같은 오묘한 기분은 덤입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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